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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선재(빌립보서 2:6)
최세창
- 1501
- 2018-12-25 01:22:18
이 구절은 그리스도의 선재를 지시하는 것이다(골 1:15-17, 요 1:1). 바울은 선재하신 그리스도에 관해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엡 1:4)라고 하였다. 헨리(M. Henry)나 블레이키(W. G. Blaikie)는 “창세 전이란 말은 세상 기초가 놓이기 전 곧 영원을 의미하는 것이다.”①라고 하였다. 그렇다고 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영원부터 존재하시고 역사하신 것이다. 이에 대해 “정통주의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듣는 아다나시우스는 ‘아들은 아버지께로부터 분리될 수 없고, 아버지는 아들에게서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자는 성부와 동등한 영원성이 인정되어야 한다”(J. L. Neve)②.라고 하여, 부자의 관계성 속에서 아들의 영원성을 주장하였다. 메이첸(J. G. Machen)은 “하늘의 구속자가 그의 지상 생애 이전에 존재하셨다.”③라고 하여 선재하신 그리스도의 위치와 업적과 영원성을 동시에 암시해 주고 있다.
“근본……시나”는 휘파르콘(ὑπάρχων)으로서 “단순히 ‘있는 것’(being)이 아니라 ‘본질 그대로 있는 것’ 곧 ‘변화될 수 없는 것’, 즉 인간이 양도할 수 없는 선천적이고 불변적이며 영구적인 특질과 능력을 표하는 말이다”(W. Barclay). 또한, “이 말은 근원적인 본질을 지시하는 철학적 용어로 쓰이기도 하였다”(E. F. Scott).
바울은 “이 말(현재 분사)을 사용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본질적으로, 또한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본체이심을 변증하고 있다”(이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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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에는 저자의 이름만 밝혔고, 같은 견해를 가진 학자들이 네 명 이하일 경우에는 본문의 괄호 속에 이름만 밝혔음.
1) M. Henry, p. 687. W. G. Blaikie, “Ephesians” in The Pulpit Commentary, Vol. 20(Michigan: Eerdmans, 1962, 4th Rep.), p. 2.
2) J. L. Neve, 기독교 교리사, 서남동 역(서울: 기독교서회, 1974), pp. 190-191.
3) J. G. Machen, op. cit., p.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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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체” 또는 형체란 모르페(μορφῇ)로서 “헬라 철학에서는 한 존재가 자신이 의존하는 다른 존재의 탁월한 본성을 지님으로써 영원히 그 본성과 동일시되는 것을 의미한다”(M. R. Vincent). 또한, “고대 작가들은 이 말을 신들이 인간들에게 보여질 때의 그들의 국면 또는 외모를 지시하는 데 사용하였다”(A. Barnes).
70인역(LXX)에서는 ‘모양’, ‘외모’, ‘유사함’, ‘형상’(욥 4:16, 겔 10:8, 43:11, 단 5:6), ‘광휘’, ‘위엄’, ‘영광’(고후 4:4, 골 1:15, 시 8:5, 5. J. Calvin, “Crellius, Grotius”④), ‘본질적 속성’, ‘본질’, ‘존재’,⑤ “영구적 본질”(W. Hendriksen), “신의 실질적 속성”(B. C. Caffin) 등과 “그와 일치되는 외형”(H. A. Kent, p. 66) 또는 “영구적 표현”(R. H. Mounce) 등을 의미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란 성육하시기 이전의 그리스도, 즉 선재하신 그리스도께서는 “하님의 본질적 본성과 속성과 일치하며, 또한 그것들을 드러내는 존재의 표현임”(M. R. Vincent)을 의미하는 것이다. 예수님 자신도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 10:30)라고 말씀하셨다.
바울은 선재하신 그리스도의 겸비에 대해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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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in A. Barnes.
5) J. B. Lightfoot, M. R. Vincent, A. Barnes, “Schleusner, Sturt, Doddridge”(in A. Barnes), “Mackintosh”(in J. H. Michael), B. C. Caffin, G. Barlow, p. 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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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라고 설명하였다.
“동등 됨”(τὸ εἶναι ἴσα)은 ‘동등하게 존재하는 것’, ‘동등한 양식으로 존재하는 것’(M. R. Vincent, W. Hendriksen)을 의미한다. 따라서, “하나님과 동등 됨”이란 하나님과 동등한 것(J. B. Lightfoot)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등하게 또는 하나님과 동등한 양식으로 존재하는 것⑥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영광스런 상태인 하나님과의 동등한 관계를 언급하는 것이다(J. A. Knight, 이상근, “Rees”⑦). 이 점은 신성의 동등을 가리키는 남성 형용사인 이손(ἴσον) 대신에, 중성인 이사(ἴσα, 동등하게)를 사용한 것을 보아 알 수 있다⑧.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중대한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본질과 속성에 있어서 성부와 성자가 같다면, 그 동등한 관계란 두 실체로서 동등한 관계인지, 혹은 한 실체로서 동등한 관계인지 분명하지 않다. 우리는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삼위일체의 교리를 완성한 고대 교회의 두 신학자의 주장을 고찰하는 게 좋을 것이다.
“다메섹의 요한은 하나님을 한 실체인 동시에 성부, 성자, 성령의 세 격체라고 설명하였다.…이 세 격체는 출생되지 아니한 자, 출생된 자, 나온 자로 구별된다”(J. L. Neve).⑨라고 함으로써, 성부를 존재의 근원으로 보는 잘못을 범하였다. 즉, 또 하나의 종속설에 불과한 것이다. “어거스틴은 삼위일체란 한 하나님이시다. 실체, 본질, 능력, 의지에 있어서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그 안에 양적, 질적 구별이 없는 세 인격이 있는데, 이 세 인격 사이에는 상호 의존의 관계가 있다”(J. L. Neve).⑩라고 하였다. 그러나 상호 의존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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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H. A. W. Meyer, Weiss, De Wette, Klöppe”(in M. R. Vincent), M. R. Vincent, A. Barry.
7) in J. A. Knight.
8) 참조: A. T. Robertson, C. R. Erdman, E. F. Scott, 박윤선, 이상근.
9) J. L. Neve, op. cit., p. 195.
10) Ibid., p. 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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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 불완전성을 드러내 주는 것이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성부, 성자, 성령의 동등성이란 영원한 세 격을 가진 한 실체로서이다. 따라서 성부, 성자, 성령은 한 실체로서 영원한 관계성을 내포하고 있다. 영원한 관계성은 상호 의존적이거나 종속적인 관계가 아니다. 영원이란 절대자요 완전자인 하나님의 영역이며, 또한 본래성을 내포하는 것이므로 성부, 성자, 성령의 영원한 관계성은 본래적이며 절대적으로 완전한 것이다.
결국 바울에 의하면 선재하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동등하게, 또는 동등한 존재 양식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한 실체로서 본래적이며 절대적인 영원한 관계성을 가진 관계 존재로서 존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의 “취할 것”은 하르파그몬(ἁρπαγμὸν)으로서 “맹수가 먹이를, 또는 강도가 물건을 강탈하는 것, 전쟁의 전리품을 상으로 받는 것”(이상근), “어떤 것을 잡아서 그대로 보류하는 것”(C. R. Erdman), “움켜쥐는 것”(J. A. Knight) 등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표현에 대해 (1)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동등되는 길(선재의 영광의 상태)을 강탈해서 계시려는 그 방법을 취하지 않았다는 설(“H. A. W. Meyer, Hofmann”,⑪ 이상근), (2) 그리스도께서 이 동등의 길을 상급으로 받으려 하시지 않았다는 설,⑫ (3) 과거의 지위를 보존하려는 것이 아니고, 미래의 영광스러운 지위를 억지로 얻으려 하시지 않았다는 설(Kennedy,⑬ J. H. Michael) 등이 있다.
‘보류하다’ 또는 ‘움켜쥐다’의 의미를 취해 하나님과 동등한 양식으로 존재하는 것, 즉 한 실체로서 본래적이며 절대적인 영원한 관계성을 가진 관계 존재로서 존재하는 상태를 보류할 것으로 여기지 않은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렇게 이해해야 다음 구절과도 잘 연결될 수 있다.
출처: 최세창,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서울: 글벗사, 1999, 2판 1쇄), pp. 118-121.
필자의 newrema.com의 저서들: 신약 전체 주석/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설교집 26권/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다수의 논문들 HP 010 6889-30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