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 서울남연회 신년하례에 대한 유감

장광호
  • 3388
  • 2019-01-07 02:33:23
위 사진은 1.3 로고스교회에서 열린 서울남연회 신년하례때 기도한 모습이라며 서울남연회 홈페이지에 실린 것이다.

통성기도 "감리회와 서울남연회를 위해" 이종수 장로(남선교회연합회장) 라고 사진 밑에 소개되어 있다.

.........


참석자가 예년에 비해 절반에도 못 미친 것 같긴 하다는데

그날 함께 한 그들은
과연 무엇을 위해 기도했을까?

당일날 같은 시각에 강서동지방
좋은샘교회에서 이번 사태의 조속한 해결을 위해 갈멜산에서의 엘리야 심정으로 기도한 사람의 입장에서 굉장히 궁금해진다.
* 우리의 기도 내용은 '강서동지방 기도회(5차) 동정'에 게재되어 있다.


그날 하나님의 심정은
참으로 답답하셨을 것 같다.

누구의 기도에 응답해야 할까 하고.


하나님께서 이 사태를 그냥 덮고 넘어가주시도록 위해서 기도한 것일까?

이 사태를 하나님께 고발하는 이들에 대해서 자비와 은총을 내려달라는 기도를 했을까?

아니면 벌해 달라고 기도했을까?

위대한 지도자에게 덤볐으니
고라자손처럼 되게 해달라고 기도 했을까?

총심위, 총특재 등에 대해
옳은 판단을 해 달라고 기도한 것일까?

굽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일까?

......

그 사람의 기도/말은 단순한 것이 아니다.

사람의 값은 철저히
그 사람의 말의 값에 비례한다.

옳은 대통령의 말 값이 제일 비싸지 않는가?
유명인사의 말 값을 보면 알 수 있지 않는가?

그 사람의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이고, 
그 사람의 말은 그 사람의 영성이다.

그렇기에 사람의 말은 권위로 직결된다.

그 사람을 높이실 때는 
그 사람의 말에 권위를 더 하신다.

말의 권위는 말한 그대로 이루어지는 결과물을 통해서 완성된다.

반면,
말의 권위는 거짓말의 횟수만큼 떨어지게 된다.

한번 권위를 잃어버린 이가 내리는
지시에는 더 이상 '영'이 서지 않는다.

베드로와 바울의 권위가 언제부터 세워졌을까를 보면 안다.

성령이 함께 하신 뒤부터 말하는 대로 그 열매가 나타났을 때부터가 아닌가?

그들은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리스도인의 말은 권위가
서야만 되는 것이 맞다.


그런데도 
단지 부와 권력, 경력으로 
스스로 권위자인 것처럼 드러내면서
말의 권위를 내세우려는 이들이 많다. 

그의 겉옷일 뿐인데도.

잠시나마 그 겉옷으로 권위를 삼으려 하나 맞지 않는 겉옷은 오히려 비웃음을 살 뿐이다.

옳음, 바름, 행함으로 짜여 진 속과 똑같은 겉옷만이 권위자로 인정받게한다.

옳지도, 바르지도 않으며, 행하지도 않은 화려한 겉옷은 추한 옷일 뿐이다.

권위주의자의 옷을 입은 것이다.
철저히 벌거벗은 옷이다.

추한 자신의 알몸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은 알지 못하는 옷이다.

아첨꾼이 만들어 입힌 옷이다. 

내 이익을 위해 속인 자들이 만들어준 옷을 입고 마냥 히죽거리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다.


오늘 나는 과연 어떤 옷을 입고
입고 있는 것일까?

권위의 날개일까?
권위주의자의 허울일까?

.......

서울남연회 장로들과 남선교회에 대해 벌써 두달 전 부터
선한 길로 돌이켜 응답하라고
간절하게 요청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응답은 커녕 불의한 자리에 함께 어울려
억울한 자를 더 억울하게 하고 있다.

여선교회와 계속해서 대척하겠다는 뜻일게다.

전국 각지의 수십 곳에서 던지는
정의로운 방향으로의 전환 권유를 뿌리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미 권위를 잃었다.
제 할일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주위에서 권유를 해도
듣지 않는 것 같다.

귀가 막힌 것이 분명하지 않을까?

우리의 간절한 기도가
더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있은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1:27-29)


그래도 희망이 보이는 건
흔들리던 감리사들의 참여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는 것.

아직도 한참 멀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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