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입장 표명이나 감리회 정책과 관계되지 않은 내용 등 "감리회 소식"과 거리가 먼 내용은 바로 삭제됩니다.
#54 서울남연회 사태수습은 낙관적이기만 할까?
장광호
- 2331
- 2019-01-11 18:56:32
지금 생각있는 감리교도들에게는
최고의 관심사이지만
무풍지대인 분도 있다.
단순한 셈법의 사람들은 섣불리 낙관적인 결말을 기대한다.
혹자는 이처럼 명확한 사건이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냐며
분개한다.
총심위와 총특재에 대해
이번 만큼은 다를 것이라며 희망을 걸어본다.
여전히 회의적인 불신의 벽이 크고 높은 쪽에서는
이번 역시 유야무야될 것이라며 비관적이다.
머리좋은 그와 함께 하는 세력들의 힘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동안 살아왔던 그들의 행보를 아는 이들은 이런 것을 해결하는데 달인이라는 근거를 댄다.
어떤 면에서는 동의가 된다.
악은 스스로 그 자리를 물려준 적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기득권 역시 스스로 그 권리를 포기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역사가 증명하고 성경이 증명한다.
지금은 우리가 당연한 것처럼
느끼며 누리고 있는 권리들 하나 하나가 그냥 그저 주어진 것이
없지 않는가?
누군가의 피와 땀과 눈물,
그리고 협력된 힘에 의해 얻어낸 것들 아닌가?
아닌 것 있으면 증거를 보여라!
바로가 쉽게 항복했던가?
10가지 재앙을 당하면서도 버티고
마지막 남은 군사들을 다 잃을 때까지 하지 않았다.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앗수르와 바벨론에 망하기 전까지도 하나님의 말씀에 항복하지 않았다.
바벨론성 역시 수없는 경고를 받았으나 마지막까지 무시하다가 홀연히 무너졌다.
왜 성경은 악과 피흘리기
까지 싸우라고 했을까?
사단은 왜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두루 찾아다닌다고 했을까?
신앙생활이 결코 나이브한 것이
아님을 알려준다.
지금의 목숨을 걸어야 새 목숨을 얻는 것임을 알려준다.
요한계시록에서
새하늘과 새땅은 싸워 이긴자에게
주어진 것이 아닌가?
.....
선이 목숨을 걸고 싸울때
악도 목숨을 걸고 싸운다.
그 처절함은 똑같지만
그 결과물은 엄연히 다르다.
하나는 생명이고 하나는 죽음이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적은
자신의 죄이다.
이 죄와 마주 서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평생을 따라 다니며 괴롭힌다.
그 죄와 싸워 이길 단 한 번의 용기가 필요하다.
이 놈과 맞서 싸워 이긴 사람은
세상에서 더 강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이긴 자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긴다는 응답을 미리 주시지만
싸워 얻는 것은 내 몫이다.
.....
어떻게든 조만간 결말은 나게 된다.
연초부터 각계 각층에서 성관련 문제로 부는 바람이 이미 태풍으로 변했다.
우리가 공정한 결과로 자정능력이 회복된다면 그나마 교회로서의 체면이 유지될 수 있겠지만
금권에 의해 사회정의와 신앙양심에 반하는 심의와 재판 결과를 발표하는 순간
세상과 역사의 손에 끌려 나가 쓰나미 속에서 난도질 당하게 될 것이다.
.....
이 사태 해결 방안에 대해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사람 한 명만 바꾸고 끝낼 것인가?
한 명 바꾼다고 될 문제인가?
이번만큼은 한꺼번에 해결해야 한다. 등등.
보는 관점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해법도 달리 보이는 게 맞다.
하루 사이에 쌓인 적폐가 개입되어 만들어진 사태가 아니지 않는가?
한국감리교회가 생긴 이래로
쌓여온 총체적인 적폐가
오늘의 사태를 만든 장본인이라면
수습방안이 어찌 간단하겠는가?
그 전체적인 방향은
감리교도 전체 구성원들의 가슴
속에 개혁에 대한 갈증과 갈망이
넘쳐나지 않는 한 어렵다.
이제 겨우 몇 명이
침묵의 카르텔에 의한 압력에 굴하지 않고
게시판의 불을 지피고 있을 뿐이다.
누군가는 그 불을 끄려하고
누군가는 불구경한다.
내 집이 타고 있는데도.
불이 한참 더 붙어야만 그제서야 가능해질 것이다.
우리는 지금 내가 고치느냐
남들이 와서 부수든지, 고쳐주든지 해야 하는 그 기로에 서 있다.
또 우리 감리교회의 올바른 사태 수습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교회의 명운도 함께 걸려있는
중요한 과제라는 점을 명심해야한다.
한국교회사의 한 페이지로 기록될 것이다.
제대로 잘 판단해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