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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서 돌아보는 삶을 살자
최세창
- 1510
- 2019-01-14 20:56:16
오늘 밤에 죽는다면 오늘 어떻게 살까 하는 생각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 생각은 얼마 남지 않은 마지막 시간을 가장 값지게 살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죽음을 망각한 채, 살아가기에만 급급합니다. 살기가 힘들고 어려운 요즘 같아서는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살기가 어렵고 힘들기 때문에 더욱 생사화복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마음에 들어야 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죽음을 의식해야만 하고, 더 나아가 죽음을 향해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죽음에서 돌아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어차피 죽음은 모든 사람을 찾아오게 마련입니다. 살아 있는 신으로 자처하고, 숭배를 받던 애굽의 왕도 죽었습니다.
2. 죽은 애굽 왕이 한 일과 새 왕과 이스라엘의 기도
애굽 왕의 죽음에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그의 장엄한 장례식이 아니라, 그의 왕으로서의 삶입니다. 왕자로 태어나서 왕이라는 특권까지 누린 그가, 어떤 삶의 족적을 남겼는가 하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남들보다 더 출세하고, 남들보다 더 많이 성공하고, 더 크게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바람직한 생각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전부여서는 안 됩니다. 이런 것은 죽음의 때에 하나님의 관심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때의 하나님의 관심사는 그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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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결실로 어떻게 살았는가, 남들보다 더 출세하고 성공해서 얼마나 사랑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죽은 애굽 왕은 불행히도 살았을 때, 통치자로서 꼭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을 몰랐습니다. 애굽이 부국강병이 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요셉과 요셉과 함께하시면서 형통케 하신 하나님과 애굽에 사는 이스라엘의 번성의 원인을 모른 것입니다. 꼭 알아야 할 인재나 지식이나 정보를 모르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모르면 아주 모르는 것입니다. 뭘 모르는지도 모르고, 모르는 것이 얼마나 막중한 것인지도 모르고, 모르기 때문에 얼마나 큰 유익을 놓치는지도 모르고, 모르기 때문에 얼마나 많고 큰 피해를 보는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의 중요성도 모릅니다.
“몰라도 돼. 닥치면 다 하게 되어 있어.”라고들 하는데, 준비도 실력도 없이 닥쳐서 하는 일이 오죽하겠습니까? 사람은 나서 죽을 때까지 공부해야 하는 것입니다.
죽은 애굽 왕은 꼭 알아야 할 것을 모르는 통치자들이, 빠지는 자기 신격화에 빠졌습니다. 신으로 자처하고, 백성들의 숭배를 받으면서 영원히 살 것처럼 기고만장했습니다. 애굽에서 번성하여 온 땅에 가득 찰 만큼 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 끔찍한 결단을 내렸습니다. 그들을 강제로 동원해서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는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혔습니다. 백성의 안녕과 복지 향상, 자유와 인권 신장 등의 국태민안을 위해 맡겨진 권세로, 평화롭게 공존하던 이스라엘을 노예로 삼아 버렸습니다. 적이 쳐들어올 때에 적과 내응하면 큰일이라는 기우 때문에 행한 악정이었습니다.
악정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식하고 창성하는 이스라엘에 대해 근심한 나머지, 온갖 머리를 다 짜내어 이스라엘을 더 심하게 핍박하며 괴롭혔습니다. 더 나아가, 이스라엘의 씨를 말리려고 남아가 출생하면 하수에 던져 버리라는 명령까지 했습니다. 이것이 한때 엄청난 권세와 기득권과 특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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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졌던 애굽 왕의 삶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우상 숭배는 물론, 신으로 자처하는 오만 불손과 엄청난 죄악의 삶이었습니다. 그는 탁월하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자리에 있었지만, 탁월하게 하나님을 모독했고, 하나님의 선민을 학대했습니다. 그러던 그는 여러 해 후에 죽고 말았습니다. 그는 살았을 때, 자신도 죽을 줄 알았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죽음에서 돌아보는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악행을 하다가 죽은 그 애굽 왕의 죽음과 멸망은, 그에게서 끝난 게 아니었습니다. 왕의 악행을 어릴 때부터 보고 배운 새 왕은 선왕보다 한술 더 떴습니다. 선왕의 학대를 받으면 받을수록 더욱 번식하고 창성하는 이스라엘을 통해 하나님을 알 기회를 날렸고, 지위 여하를 막론하고 악행자의 결과가 어떻다는 것을 알 기회를 날렸습니다. 새 왕은 왕이 되는 교육을 받았고, 신적 권위를 내세웠지만,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믿음과 지혜라는 면에서는 낙제였습니다. 한마디로, 어리석고 오만한 왕이었습니다. 왕으로서의 권세와 특권과 지식과 교양은, 그를 더 어리석게 만들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한 그의 미련한 압정은 급기야 그들로 하여금 탄식하며 하나님께 부르짖게 만들었고, 그들의 부르짖는 기도는 하나님께 상달됐습니다. 고통 소리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축복의 약속을 기억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돌보아 생각해 주셨습니다.
애굽의 새 왕이 머리를 짜내어 이스라엘에게 행한 악정은 그와 애굽 백성들에게 유익은커녕, 불행과 멸망을 재촉하는 우매한 짓이었습니다.
권세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하나님을 모독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박해하다 비참한 말로를 보낸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헤롯 아그립바 1세가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않으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은 역사적 배경이 있습니다. 로마의 식민지였던 두로와 시돈은 헤롯 아그립바 1세의 왕국에서 나는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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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을 수입해 먹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자 헤롯 아그립바 1세는 식량 수출을 막았습니다. 식량 무기화 정책을 감행한 것입니다. 심히 곤군해진 두로와 시돈 사람들은, 일심으로 왕의 침소를 맡은 신하이자 최측근인 블라스도를 통해서 헤롯 아그립바 1세에게 평화 조약을 맺자고 청했습니다.
헤롯 아그립바 1세는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위에 앉아, 두로와 시돈의 사절단이 포함된 백성들에게 열변을 토했습니다. 백성들은 헤롯 아그립바 1세의 왕으로서의 외적 권위와 외양과 연설에 압도되거나, 권력자에 대한 아부와 아첨으로 신의 소리이고,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앞으로는 왕이 아니라 신으로 모실 테니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했습니다. 이 망언을 받아들인 헤롯 아그립바 1세의 자기 신격화는 교만의 극치이며, 하나님의 지위를 탈취하는 신성 모독이었습니다.
자기 신격화로 인한 신성 모독에다 야고보 사도를 죽이고, 베드로를 죽이려고 한 것 등 교회를 박해한 죄악을 범했기 때문에 주의 사자가 치는 바람에 충에 먹혀 죽었습니다.
이 헤롯 아그립바 1세의 죽음에 대해, 역사가 요세푸스는 “이때 이 불경한 아첨에 대해 저들을 책망하지도 거부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때 그의 머리 위에 있는 그물에 올빼미 한 마리가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즉각적으로 그것이 흉보의 사자임을 깨닫고 가장 큰 슬픔에 빠졌다. 그때 심한 복통이 일어났다. 그는 친구들을 바라보고 ‘너희들이 신이라 부른 나는 곧 이 생명에서 떠나라는 명을 받았고,…불멸이라고 한 나는 즉시 죽음으로 달리게 되었다.’…그 후 닷새를 복통으로 완전히 지친 끝에 죽고 말았다”라고 기록했습니다. 외경(II Macc. 9:5-9)에도 주의 사자가 그를 쳤고, 그는 벌레에게 먹혀 죽었는데, 몸에서 나는 악취가 그의 모든 군사들의 코를 찔렀다고 했습니다.
렌스키(R. C. H. Lenski)는 “그의 죽음의 모양은 하나님의 표징적이며 눈에 보이는 심판이라는 특징을 드러내는 것이다. 수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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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구더기 떼가 희생물인 인간 괴물에게 몰려와서, 악취 나는 몸을 이미 송장이 된 것처럼 파먹음으로써 끔찍하게 죽는 것과 같은 죽음이 많이 있다고 보고되었다.”라고 했습니다. 그 예로, 헤롯 대왕과 유대인들을 지독하게 박해한 적그리스도의 현저한 유형인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와 잔인성으로 악명 높은 키레네의 여왕으로서 산 채로 벌레 떼에게 먹혀서 죽은 페레티마와 기독교인들을 잔인하게 핍박한 갑바도기아의 로마 총독인 헤르미니아누스와 교회를 박해한 로마의 마지막 황제인 갈레리우스를 들었습니다. 역사가인 니버는 스페인의 필립 2세도 잔인성과 박해로 악명 높았는데, 그런 죽음을 당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최후 심판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그들이 권세를 누리며 영원히 살 것 같은 착각을 하지 않고, 죽음에서 돌아보는 삶을 살았더라면 값지게 살았을 것이고, 영원한 운명은 물론, 그들과 관련된 역사도 아름답게 바뀌었을 것입니다.
3. 맺음말
사람들은 죽음을 망각한 채, 살아가는 데에만 급급하다가 갑자기 죽음을 맞게 되어 영생을 얻지 못합니다. 권세가 등등하여 하나님을 모독하고, 사람들을 억압하고 핍박하고 대량 살상을 하던 권세자들도 모두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죽음에서 돌아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인류 구원을 위한 십자가의 죽음을 위해 강림하셨던 주님의 삶이란, 대속 죽음에서 돌아보는 사랑의 삶이었습니다. 그 영생의 주님을 믿는 우리는 주님 안에서 영적으로 거듭난 새사람인 줄 알고, 죽음에서 돌아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죽음은 인간을 한없이 겸허하게 만들고, 모든 헛된 것들에 대한 어리석은 욕망과 미련한 집착에서 자유롭게 해 주고, 값진 삶을 살게 하고, 영원한 생명의 길을 찾게 해 주는 길잡이입니다.
(설교의 성경 본문: 출애굽기 2:23-25, 사도행전 12:23)
23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한지라 24하나님이 그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사 25이스라엘 자손을 권념하셨더라
23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는 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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