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감리교회는 과연 미래가 있는가?

장광호
  • 1808
  • 2019-01-30 02:30:02
내가 몸 담은 감리교회는
과연 미래가 있는가?


서울남연회 사태 수습과정을 보면서
깊이 자문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 번 만들어진 조직이 계속 생명력을 유지한 채 앞으로 나아가려면 그 구성원들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틀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

그런데 구성원들이 생각하기에 그 기존의 틀이 지금은 너무나도 낡았고 어설프기 짝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살기 위해서 그 틀을 깨든지
아니면 그 틀을 버리고 탈출하려 할 것이다.

살기 위해서
우리는 이 틀을 깨야 할까?
아니면 버리고 나가야할까?
그 기로에 서있는 것 같다.

단언컨대
그 틀을 깨고 새 틀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미래가 생기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미래는 없다.

......

왜 그런지 따져보자.

누군가가 그 조직의 구성원이 되려는 것은 이미 만들어진 틀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기존의 구성원들은
다른 이가 다가올 때 조금 비껴주는 것이다.
때로는 다른 이에게 내 자리를 내어 주어야 한다.

먼저 자리잡은 자가 넓혀주는 것이 맞지 않는가?

뒤늦게 참여한 이들은 그 자리를 넓혀주고 나눠준 이에게 감사해야 하는 것이고.

새로 들어온 이는 자신의 주장을 잠시 접어두고 나눠준 이의 전통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조직이라야 살맛나지 않을까?

이런 차원에서
오늘의 감리교회를 생각해본다.

처음 들어오는 이들은 이 조직의 경직성에 숨이 막힌다.

어느 정도 생활한 이들도 질식할 정도로 답답하다.

기득권을 차지한 이들은 오직 그들의 이익을 탐하는 것 외에는 이런 것들을 개선하려는데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오히려 기득권을 강화하려는데만
정신이 팔린 것 같다.

나 혼자의 생각이기에
동의하든 안 하든 상관없다.

이번 서울남연회 사태를 겪는 동안
다른 연회는 몰라도 서울남연회의 목회자와 장로들의 행동을 지켜보면서는 이런 분석에 대해 더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종교의 생명인 윤리와 도덕적 삶 그리고 영적 삶과는 상관없는 약육강식의 <생존 본능>에만 충실한 종교인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그래놓고 은혜 은혜 한다.
.....

내일 서울남연회 연회실행부회의에서 직무대행 선출 등이 논의된다고 한다.

현직 감리사, 단체장 등 4-50명의 실행부위원들이 있는가 보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생각이 든다.

엄밀하게 말하면 이들은 이 사태가 더 빨리 끝나지 못하고 오늘 여기까지 오는데 가장 많은 책임을 져야할 당사자들이 대부분 아닌가?

다른 연회의 수많은 목회자들이, 연회의 일부 지방 목사들만이 성명서를 통해서
연회의 행정적인 책임자들인 감리사와 연회 기관들의 책임자들에게 사태를 빨리 바로 잡아달라고 요구했을 때

일부 감리사들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자기 보신에만 힘썼던 자들이 아닌가?

단체장 등 주요 직분의 장로들은 오히려 전00목사를 옹호하면서 쉴드를 치던 사람들이 대부분 아닌가?

아직도 아무런 반성이나 사과 의사 표명 하나도 없는 이들이 어떻게 직무대행을 선출한다는 것인가?

너무나도 뻔뻔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물론 직책과 직분 때문에 어쩔 수없이 참여할 수밖에 없는 동참이라 하더라도
많은 연회원들과 감리교도들을 위해서 그 의사 표현은 먼저 해야 되지 않을까?

어쩔 수 없어서 직무대행 선출과정에 나서고 뽑히게 될 직무대행은 지금의 이 사태에 대해 나는 책임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고 결코 말할 수 없지 않겠는가?

오늘의 사태가 수십년간 이어져온 연회내의 적폐로 인해 나타난 문제라면, 실행부회의에 참석할 정도의 인물들은 그 누구라도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되지 않을까?

오랜동안 연회정치에 참여해왔던 실질적인 핵심인물들이기에,
최소한 자기반성과 사과 정도는 하면서 부끄러운 마음으로 자세를 더더욱 낮춰야되는 게 맞지 않겠는가?


내 책임은 외면한 채
여전히 기득권만을 주장하는 연회실행부위원들이 건재한 회의를 통해 그들이 만든 결과에 과연 감리교회의 미래를 맡길 수 있을까?

감리교회의 미래와 직결될 서울남연회 실행부회의를
두눈 부릅뜨고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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