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리회 향연(饗宴)

함창석
  • 1339
  • 2019-01-31 04:44:53
향연(饗宴)

산돌 함창석 장로

향연은 특별히 융숭한 대접으로 손님을 청하여 먹으며 즐기는 잔치다. 주인이 손님을 접대하는 방식이 보통 이상이면 그것은 잔치라고 일컬어진다. 잔치란 생일이나 혼사를 빌미로, 취임이나 승진, 환영이나 축하를 계기로 음식을 마련해서 손님을 불러 여러 사람이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며 흥겹게 노는 일련의 과정을 가리킨다. 그 과정에는 손님의 품위나 격에 맞추어 초청하고 맞이하는 준비가 있다.

잔치에는 앉을 자리의 배정, 손님맞이의 의물과 의상, 음식마련과 상차림, 환영의 의식만이 아니라 잔치를 베푸는 때와 장소의 결정, 선물교환, 작별의식 등 엄숙한 형식에 곁들여 즐거운 놀이의 난장이 있다. 그것은 위로는 하늘과 신성을 대상으로 하면서 임금과 신하, 주인과 머슴에 이르는 인간의 사회적 상하관계가 상징체계로 어우러진다. 엄격한 형식의 질서에서 상하가 없는 무질서의 하나가 된다.

잔치의 두 가지 모습인 형식과 난장은 질서와 무질서를 말하는 것이다. 잔치를 통해서 사람들은 격의 없이 하나가 된다. 잔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벽을 허문다. 원래 잔치란 구조적으로 주인과 손님의 대인관계를 상징적으로 체계화하는 것이다. 나아가 하늘과 신성에 대한 인간의 관계를 풀어내는 의식이기도 하였다. 잔치는 단순히 먹고 마시고 노는 것만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정립하고 풀어내는 것이다.

그 가운데 주인과 손님, 하늘과 사람,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이 어우러져서 ‘잔치’라는 행사 가운데 맨 처음 하늘이 열리고 인간사회가 이룩되던 무렵의 천지창조가 숨 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지금 우리가 행하는 잔치는 그런 거창한 구조까지 따지고 들 것이 없지만, 그것이 사람이 사는 사회적·종교적 기구와 제도이며 신화적·예술적 차원까지 따질 수 있을 정도로 유래가 깊다는 사실은 인식해야 할 것이다.

잔치는 교환의 원칙에 입각한 인간 공동체의 의례이다. 그 과정에 곤드레의 난장판이 벌어져 사람과 사람의 관계, 주객의 관계, 인간과 신의 관계가 함몰되어버리는 사태로 발전한다. 주인이 손님에게 베푸는 대접은 손님으로서 갚아야 하는 부채가 된다. 그런 원리가 기도의 대전제가 되는 것이다. 손님으로, 어른으로, 신성의 존재로 향연을 받았으면 주인의, 아랫사람의, 세속적인 인간의 소망을 들어주어야 한다.

주인이 아랫것들을 배불리 먹이고 흥겹게 놀게 하는 풋굿, 호미씻이 잔치는 아랫것들이 손님인 경우이다. 손님은 주인의 소청을 들어주어야 하기 때문에 주인의 잔치는 그냥 먹이는 것이 아니라 신령의 영험을, 아랫것들의 노동력을 반대급부로 받아내어야 하는 것이다. 생일잔치나 혼인잔치에는 금반지·옷가지 등의 부조(扶助)가 들어간다. 먹고 마신 대가가 지불되기 때문에 여기에 교환의 원리가 작용한다.

그러나 우리는 잔치를 일컬어 흥겨움의 자리로 풀이한다. 흥겹지 않은 잔치란 존재할 수 없다. 흥겹기 때문에 잔치는 축제·여흥·놀이·난장판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무질서한 열광의 잔치라고 하지만 우리는 잔치가 베풀어지는 일정한 시간과 공간의 약속 때문에, 그리고 잔치가 진행되는 의식의 절차 때문에 열광·도취와 정반대되는 형식성·장엄미·질서를 무시할 수가 없다. 잔치는 그런 구실을 한다.

따라서 잔치가 가지는 양면성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 또한, 잔치가 베풀어지는 시간과 장소를 따져야 하고, 주인과 손님이라는 인간관계를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잔치의 제수(祭需)도 따져야 한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잔치가 공적인 차원인가, 사적인 것인가? 그 기원은 어디에 있는가를 따지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따져나가려면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찾아내기란 그리 쉽지 않다.

‘굿’이 없는 잔치는 존재할 수 없다. 그 굿을 제의라고 하든 의식절차라고 하든 먼저 신성의 존재인 하늘이나, 신령이나, 조상에게 드리는 경건한 제사 다음에는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는 과정이 있어서 엄숙한 제의는 즐거운 축제로 마무리된다. 사람들은 언제나 진지하게 일만 하면서 살 수가 없다. 힘든 일로 쇠잔해가던 활력은 한 번씩 축제나 잔치를 통해서, 놀이나 난장판을 통해서 회복된다.

성경에는 유월절 등 각종 절기 때, 아이가 젖을 떼는 날, 생일, 결혼, 화해나 재회, 포도 수확 때, 양털 깎는 날, 반가운 친구를 만나거나 특별한 손님이 찾아왔을 때, 국가적으로 큰 기쁨이 있을 때, 그 외에 장례를 치르는 때에도 향연을 베풀기도 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축제 같은 기쁨을 ‘천국 잔치’에, 종말의 때에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신부 된 성도의 만남을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비유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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