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과 주 예수님의 치료(눅 6:6-11)

최세창
  • 1638
  • 2019-02-12 07:35:18
앞(6:1-5)의 안식일과 다른 안식일에, 예수님이 오른손 마른 사람을 고치신 일 때문에 바리새인들의 적대감이 증대되어 예수님을 처리할 궁리를 한 사건 역시 공관복음서에 다 기록되어 있다(막 3:1-6, 마 12: 9-14).
누가는 이 부분을 【6】“또 다른 안식일에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사 가르치실 새 거기 오른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로 시작한다.
“또 다른 ‘안식일’(4:16의 주석을 보라.)에”는 앞(6:1-5)의 안식일과 다른 안식일인데, 꼭 그 다음 안식일이라고 볼 필요는 없다.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사 가르치실 새”의 “회당”(τὴν συναγωγὴν: 4:15의 주석을 보라.)에 정관사가 있는 것을 보아 예수님이 자주 가시던 가버나움 회당이 아닌가 싶다.
“오른손 마른 사람”이라고 밝힌 것은 누가뿐이다. {외경인 히브리 복음서(Hieronymus, Hebrerevangelium)에는, 이 병자가 예수님께 “저는 미장이였습니다. (내) 손으로 생계를 마련했지요. 예수님, 부디 수치스럽게 먹을 것을 구걸하지 않도록 제 건강을 회복시켜 주십시오.”라고 애원했다고 하였다.}(막 3:1의 주석).
그 회당 안에는 예수님의 도움을 구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적들인 유대 지도자들이 있었다. 이 사실에 대해, 누가는 【7】“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송사할 빙거를 찾으려 하여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가 엿보니”라고 하였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5:17의 “바리새인과 교법사들”의 주석을 보라.
이들은 예배나 율법에는 별 관심이 없고, 예수님을 고발하기 위해 일을 해서는 안 되는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가 엿보”는 데 열심이었다. 실상, 그들은 예수님의 이적을 알고 있었고, 또 그 환자를 고쳐 주실 것을 확신하였다.
여기에 충격적인 사실이 있다. 유대교 지도자들인 그들은 예수님이 분명히 그 환자를 고쳐 주실 것이라고 확신하면서도, 그들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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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환자의 필요를 빌미 삼아 사랑의 예수님을 옭아매려고 하는 것이다. 그들이야말로 문자주의, 의식주의, 형식주의에 얽매여 영성과 도덕성과 지성을 잃어버린 종교인의 전형이다. 그들에게 이런 것들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었다면, 자기들이 못하는 사랑을 남이 할 때에 감사할 수 있었을 것이다.
{山口 昇은 “랍비의 전승에 의하면, 안식일이라 해도 인간의 목숨이 위태로운 경우에는 고치는 일이 허용되었다(‘미쉬나’ 샤바도 18:13, 요마 8:6).”라고 하였다.}(막 3:2의 주석). 그러나 이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으므로 그 환자를 고치는 것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는 문제가 될 수 있었다.
그들은 환자에 대한 사랑 때문에 예수님이 그를 고쳐 주시기를 바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넘어뜨리기 위해서 예수님이 그를 고쳐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 지도자들의 은밀하고 간교한 속셈을 간파하신 예수님에 대해, 누가는 【8】“예수께서 저희 생각을 아시고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한가운데 서라 하시니 저가 일어나 서거늘”이라고 하였다.
예수님은 적들의 은밀한 흉계와 비열한 궤계에 맞서 공개적으로 그를 고치시려는 뜻과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그에 대한 동정심을 불러일으키시려는 뜻을 드러내신 것이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에게 진리를 깨우치시려는 의지를 드러내신 것이다.
그 환자는 율법의 규정을 어기고,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회중 한가운데 일어나 섰다.
이어서 예수님은 적들의 의도에 대해 병행적인 구조가 주목되는 이중적인 질문으로 반박하신다. 이 점에 대해, 누가는 【9】“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묻노니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멸하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며”라고 하였다.
“내가 너희에게 묻노니”는 본서에만 있는 표현으로, 적들에 대한 예수님의 정정당당한 태도를 나타내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목숨이 위태로울 경우를 제외하고는 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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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물론,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안식일이 몸을 쉬면서 생명의 창조주시며 선하신 하나님을 경배하고 기쁘시게 하는 등의 영적 교통을 해야 하는 특별한 날이라고 하면, 오히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을 행하고 생명을 구하는 일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예수님은 적들에게 이중의 질문을 하신 것이다.
“선을 행하는 것(아가토포이에사이, ἀγαθοποιήσαι)과 악을 행하는 것”(카코포이에사이, κακοποιήσαι)은 옳고 그름, 또는 유익과 피해라는 뜻에서 한 말이다. 환자를 고치는 것은 선을 행하는 것이고, 그 선을 행하려는 것을 막고, 더 나아가 선행자를 죽이려고 하는 것은 악을 행하는 것이다. 여기서 예수님은 선을 알고도 행치 않는 것을 악행으로 여기신다. 야고보서 4:17에 보면,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라고 하였다.
“생명을 구하는 것과 멸하는 것”이라는 표현은, {예수님이 적들이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것을 아신 데서 나온 것이다(J. Calvin, J. Wesley, W. Barclay). 적들은 안식일이라도 생명이 위태로울 경우에는 치료가 허용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또한 “안식일에 도움을 받지 못하는 짐승을 구하는 것을 선행으로 여겼다. 만일에 그 짐승을 구해 주지 않고 내버려둔다면, 죽게 하는 원인이 될 것이다. 이는 분명히 악행이다”(R. A. Cole).}(막 3:4의 주석).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며”의 “옳으냐”는 엑세스틴(ἔξεστιν)으로서 ‘합법적이냐’, ‘율법에 합당하냐’를 의미한다.
유대교 지도자들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율법주의적인 오만과 편견과 아집 때문에 정당한 이유에 대해 굴복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직접적인 저항을 할 수도 없어서 침묵할 뿐이었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점은 사단의 역사는 안식일에도 예외 없이 작용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영적 무장을 해제하거나, 일방적인 휴전 상태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
적들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침묵의 의미를 아신 예수님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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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누가는 【10】“무리를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저가 그리하매 그 손이 회복된지라”라고 하였다.
“무리를 둘러보시고”는 예수께서 도전적으로 모든 사람을 둘러보셨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보고 믿게 하려는 선교적 동기도 있었을 것이다.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란 창조적이며 권위 있는 신적 명령이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을 행함에 있어서 율법(안식일)도 적들의 음모도 자신의 위험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저가 그리하매 그 손이 회복된지라”는 그의 예수께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 순종의 결과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의 믿음은 율법의 의식적 규례와 유대 지도층의 비난과 정죄 그리고 불치병이라는 자신의 인식 등을 뛰어넘은 것이다.
아무튼,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신 것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는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이것은 바리새적 전통과 율법주의적 권위를 여지없이 깨뜨린 것이었다. 예수님은 종교적 규례와 규칙이 아니라, 종교의 참 뜻으로서의 사랑을 내세우셨다.
메시아로서의 예수님의 안식일 치료를 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깨닫기는커녕, 악감을 더욱 심화시켰다. 사랑과 선행이 모든 사람에게 감사와 감격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반응에 대해, 누가는 【11】“저희는 분기가 가득하여 예수를 어떻게 처치할 것을 서로 의논하니라”라고 하였다.
마가는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헤롯당과 함께 예수님을 죽일 의논을 했다고 하나, 누가는 단순히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서로 의논했다고 하였다.

출처: 최세창, 누가복음(서울: 글벗사, 2003, 1판 1쇄), pp. 279-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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