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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글은 길이 되고
장광호
- 1697
- 2019-02-18 19:26:20
글은 아무나 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막상 써보면 쉽지 않습니다.
생각이 나야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들을 무조건 조합한다고 해서 글이 되는 것만도 아닙니다.
지식의 단순한 나열도 글이 아니고요.
생각들을 묶고 엮어서
일관된 하나의 틀을 만들어야만 됩니다.
썼다 고치는 과정을 수없이 거치는 글쓰기는 생각과 삶의 모습들을 재수정하는 과정인 것이지요.
과정이란 틀과 내용을 일치시키는 시간입니다.
틀과 내용물이 완전히 하나되지 않으면 언젠가는 탈이 납니다.
그 과정이 너무나도 힘들기에 많은 사람들은 이를 생략한 채 결과물만을 얻고 싶어합니다.
마이너리그를 거치지 않은 채 손쉽게 메이저리그에만 안착하려고 한다고 해서 그게 과연 가당키나 할까요?
가능하지도 않겠지만
갔다 하더라도 허접한 실력이 금방 들통나고 맙니다.
결국 좋은 글이란 그 과정에도 충실했다는 말이 됩니다.
....
썼다 할지라도 용기를 내지 않으면 내놓을 수 없는 것이 글입니다.
글에는 그 사람의 모든 것이 다 들어있습니다.
자신의 성격과 성품뿐 아니라 현재까지 다듬어진 인격의 실체와 현주소가 다 드러납니다.
삶의 자리에서 얻은 지식과 지혜도 묻어나고, 희노애락애오욕의 흔적도 여과없이 묻어납니다.
아무리 애써 숨기면서 쓴다 해도
지문처럼 찍혀 속일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글을 나눈다는 행위는
발가벗은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는 모험 자체인 겁니다.
....
특별히 목사라면
하나님과 신앙에 관련된 글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내 신앙의 모습과 색깔 향기가 그대로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냥 말로 하면 실수를 해도 다음에 아니라고 잡아떼거나 우기면 어찌 할 수가 없지만, 내 손을 떠나간 글이란 그렇지가 않지요.
그 글에 대해 책임을 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책임지는 행위가 수반되는 것이라
여러가지 책임까지도 지게 합니다.
결국 글쓰기는 나로 하여금 책임지는 자가 되게 하는 하나님의 인도로도 볼 수 있을 겁니다.
.....
글에는 호응이 있고 반박도 있게 마련입니다.
호응을 기대하지만 반박 댓글도 만만찮습니다.
다양한 사고방식의 삶 때문에요.
싫든 좋든 기대하는 만큼의 답글은 언제나 적습니다.
이유는 댓글 달기조차 힘들어하기 때문입니다.
답글 역시 글을 쓰는 것이기에 어렵고,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는 것이라서
힘듭니다.
결국
글 내용에 특별한 관심이 없거나,
글내용과 관련된 지식이 없거나,
답글 달 용기가 없거나,
아끼는 마음이 없거나,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잘 달 수 없는 게 댓글입니다.
어떤 댓글이든간에 글쓰는 이에게는 더욱더 좋은 글쓰기를 독려하는 촉진제가 되고, 글을 다듬게 하는 연마제 역할도 합니다.
무슨 글과 어떻게 써야하는 지를 늘 생각하게 하며 공부하게 하는 자극제가 됩니다.
...
처음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나이지만 그 뒤부터는 글이 나를 끌고갑니다.
글이 나로 하여금
미처 나도 알지도 못하는 새로운 길로 안내하게 됩니다.
내 삶의 모습을 다듬어가면서 깊이를 더해 가고 높이를 더해 갑니다.
내가 깨닫고 쓴 한 줄의 글이
남이 쓴 명심보감, 홍길동전보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차원에서
감게에 글을 올리기 전
4가지 측면에서 자기 검열을 하고 있습니다.
1. 이 글은 먼저 내게 유익한가?
2. 이 글은 읽는 상대에게 궁극적으로 유익이 되는가?
3. 이 글은 감리교회에 유익이 되는가?
4. 이 글은 한국교회에 유익이 되는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언젠가는 내 자녀가 다시 읽고 내 손주들도 읽게 될 것이기에 대비하는 차원입니다.
십년이 되고 이십년 뒤가 될지 모르지만 그 때 가서 지금 내가 쓴 글을 읽으며 혹여라도 상처받으면 안되기 때문이지요.
뒷날 역사적 평가 때문이기도 합니다.
글은 아무나 쓸 수 있는 것이지만
함부로 써서는 안됩니다.
특별히 감정적으로 쓰면 안됩니다.
공적으로 잘못한 행위에 대해 비판할 순 있겠지만 그의 인격 자체를 모독해서는 안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 글이 길을 만들어가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