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리회 만세2(萬歲)

함창석
  • 1274
  • 2019-02-26 21:44:41
만세(萬歲)

산돌 함창석 장로

기독교대한감리회 원주지방 감리사 모리스(模理是) 선교사는 독립운동에 대하여 간략히 보고하였다. "본 지방은 금년 춘기 이래 특별한 사정으로 인하여 계삭회와 지방회를 열지 못하였다“고 보고했다.(조선연회록, 1919. p78.) 강릉지방의 이익모(李益模) 감리사는 독립운동에 대하여 아무 보고가 없다.

감리교회 뿐 만 아니라 장로교, 성결교 등 교회가 있는 전 지역에서 독립운동이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교회지도자들의 검거로 투옥되어 교회지도력이 사실상 마비되고 교회가 파괴되거나 불태워졌어도 교인 스스로가 교회를 지키며, 혹독한 시련과 환난 속에서도 신앙이 더욱 돈독해졌음을 알 수 있다.

일본군이 주둔하던 원주지만 목사나 전도사 뿐 아니라 교회임원과 교인들도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감옥에 갇히거나 피살되거나 도피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고난을 통해 더욱 체험적 신앙을 가지고 구휼금으로 고난에 동참하며, 민족구국과 동포사랑, 형제사랑을 갖게 되었음도 알 수 있다.

실제로 독립운동 과정에 있어서 기독교는 지역에 타종교나 사회단체가 있으면 연합하여 거사하였고, 없을 때에는 기독교 단독으로 주민들과 함께 거사하였다. 이때 여선교회들은 태극기를 그리고, 학생 청년들은 연락책을 맡으며, 교회지도자들은 지도자 되어 만세운동을 전국 방방곡곡에서 일으켰다.

원주는 대한제국 말에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으로 을사늑약과 한일합병이라는 치욕 속에서도 의병활동이 맹렬하게 지속되던 시기에 일본군대는 강원감영이 있는 중심지역에 주둔하여 탄압을 계속하였고 일부 선교사들도 협조하는 상황에서 천주교나 불교 등 여타종교는 활동이 위축되어 있었다.

미국이 일본과 서로 제국주의적인 담합으로 미국은 필리핀 및 동남아시아로 일본은 조선과 중국, 러시아로 진출하는 것에 묵시적으로 동의하는 상황이었다. 일본은 교황청이 있는 바티칸 이탈리아와 긴밀하게 협조하는 상황이었으며 풍수원, 원동성당 등이 있어 천주교는 3.1운동에 미온적이었다.

불교나 유교 등 여타종교도 그 세력과 활동이 미약하여 뚜렷한 활동이 없었고 서울과 가까운 지역이라 유학생들이 자기 향토지역과 연통되어 부론, 노림, 소초 등 면 이하 지역에 산발적으로 3.1운동 만세활동을 이어간 것이다. 원주 중심지역에서는 일본군대의 막강한 세력으로 활동을 할 수 없었다.

당시 조선감리회는 원주지방(원주, 횡성, 충주, 평창, 제천, 영월 등)은 강원도 영서 남부에 걸쳐 있었다. 영서북부인 춘천(춘천, 홍천, 화천, 양구, 인제, 철원 등)과 영동인 강릉(강릉, 삼척, 양양, 고성, 속초 등)으로 조직되어 있었다. 철원, 횡성, 양양 등 주변지역에서 활발하게 전개되었다고 한다.

근현대사의 변혁 속에서 청산하지 못한 친일민족반역자들로 인하여 전쟁의 참상을 채 치료하기도 전에 반공을 덧씌운 프레임(freim)은 독립운동가는 물론 민주의 열망까지 핍박했고, 반역의 잔재를 솜털하나 치우지 못하고 3.1절 행사는 국민의식을 눈속임하기 위한 형식에만 치우쳐 왔다고 생각한다.

3.1절은 제2의 독립운동으로 일제 잔재를 청산해야 한다. 제100주년 3.1절 기념행사가 원주를 비롯한 주요도시에서 개최한다. 아울러 전국 3.1 만세운동 주요 지역 100곳을 잇는 '독립의 횃불' 전국 릴레이가 개최되는데, 3월 5일 춘천 강원도청 앞 광장과 3월 6일 고성군 통일전망대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강원감영이 있는 앞거리 가로수와 광장에는 태극기로 장식이 되었다. 기념예술제가 3.1운동 100주년 행사를 빛내게 된다. 감리교회 뿐 만 아니라 원주 시민들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참여로 치열하게 전개되는 한반도 주변정세 속에서도 평화로 하나 되어 자유와 행복이 넘치는 한민족을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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