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연회 31절행사 부존재 감독회장은 유감을 갖지 말라.

민관기
  • 1824
  • 2019-02-26 11:20:33
부존재하니 가질 일도 없지만 무슨 대대적으로 31행사를 한다기에 하는 말이며
기획준비주최주관과는 애초에 상관도 없엇다.

2019년 2월 25일 오후 2시. 장소는 제암교회.
김학중 감독이 인사말씀 시작. 자신은 감독출마 이전부터 31절 100주년 행사를 어떻게 해야할까를
기도하며 목회자들이나 평신도들에게 자문을 구하거나 상의해왓다햇으며, 공약집에도 넣어 의자를
분명히 하엿고 당선후 준비위를 조직. 곽일석목사에게 위임 준비토록하엿음에 오늘의 행사가 잇게
되엇으며, 이미 우리 연회는 30 여년전부터 완전히 독자적인 31절 예배를 하여 왓기에 이를 확대
강화하여 하나님과 교회에 영광이 유익이 잇기를 소망하여 왓다고..

고로, 기감 본부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음을 천명한 것이다.

이어, 곽일석준비위원장의 초청 말씀 그리고 강인태목사(케노시스 영성원 원장)의 세계 혁명사의 신기원이란
간략한 기조발제가 잇엇다.

본 심포는 1 2 3강으로 나뉘어 각 서영석, 홍승표, 성백걸 교수가 담당하엿고 전문가답게 성실히 잘 준비하고
발표하엿다.



다 한후. 질의 토론이 되어 내가 질의를 햇다.
먼저, 이번 심포의 주체 명시하엿다. 이 심포는 기감본부와 전혀 상관없이 이루어지는 것이다라고 하엿다.
(약간 어리둥절하는 이들 잇엇음)

다음으로 나의 31혁명에 대한 정의 :
*. 왜적의 대한병탄은 인류역사 최대의 하나님 능멸사건임과 31혁명은 인류최고최대의 하나님 회복사건이라 하고.
*. 프혁, 러혁, 쿠혁, 미혁, 베혁 등과 비교할 수도 없는 인류역사에 전무후무한 최대최초혁명임을 주장하엿다.
(웬지 공감하는듯)

다음, 유 불 천주교는 어찌 31독립선언에 불참하엿는가? 질의(홍승표 답변)
1) 천주교는 교황청의 명령으로 참여가 전무(아무튼 말도 잘 들어)하엿다 하여, 나는 해서 그 징조가 이등박문 처단한
안중근의사를 살인죄로 제명한 것인가하니 그렇다하여 나는 천주교는 애초에 본원적 매국종교엿군요 햇다.
2) 불교 : 극히 소수의 불교도 참여하엿는데 그들은 본디 산중종교이고 개인의 무엇만을 추구하는 이들이기에 그렇가 하엿다 답.
3) 유교 : 나라를 잃게한 책임이 막중한 유교는 무능무력하엿고 머리깍고 양복입은 자들과 어찌 국사를 논하느냐는
폐쇄적 수구성으로 미참하엿다 햇다고 답.

다음. 31혁명시 운동정보 알고 잇던 20 여만이 어찌 단 한명도 왜적에게 밀고하지 않은 이유 무엇이라 보는가? 질의.
홍승표 교수 무어라 답햇는지 내가 기억이 안난다. 기억나면 부가하겟다.


이 외에도 질의 거리가 잇엇으나 하지는 않앗다.
제목만 나열하면 1. 만세시위와 독립선언의 차이는 무엇인가?
2. 어느 교수는 혁명이 개인적 결단에 의한 비조직적이라햇고 어느 교수는 조직적이라햇는데 입장 차이의 이유는?
(쌈 붙이는거 같아서 안햇다)
3. 혁명에 어찌 기독 여성들의 참여자와 구속자가 거의 다인지와 어린 여학생들의 참여 이유는 무어라 보는가?
(여성 발표자가 잇엇으면 꼭 듣고 싶엇다)
4. 언어 생활과 문자 생활의 다름과 동일할시의 차이는 무엇인가?

혼자만 너무 마니 질문하면 좀 그래서 다른이에게..
2분이 더 질의와 답변이 잇엇으며, 이번 답변은 성백걸교수가 햇다.

마지막 권무정목사의 축도로 마쳣다.
끝나니 5시 반.
강인태목사님이 주신 서적 20 여권을 집에 가져다 놓고 노덕호목사 부친 장례식장에 다녀왓다.

이제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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