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해가 갈라진 이적의 이중성(삼일절 설교)

최세창
  • 1981
  • 2019-02-25 21:57:11
1. 시작하는 말

일본도 흉악범과 여러 사람을 죽인 연쇄 살인범을 희대의 살인마라고 끔찍해하며 몸서리칩니다. 그런 그들이 어떻게 대량 살상과 고문과 겁탈과 파괴와 약탈과 노예화와 생체 실험을 하는 등 대량 만행을 저지르면서 여러 국가를 통째로 삼켰는지 참으로 기이한 일입니다. 그런 병적인 이중성 때문에 여태껏 명확한 사과 한 번 제대로 안 하는 것입니다. 그 후손들이라도 깊이 깨닫고 심성과 이성과 영성을 바로잡아 가야 할 것입니다.
닷새 후는 일본에 대해 선조들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해방과 자유 독립을 위한 비폭력 무저항 운동을 벌인 획기적인 사건을 기념하는 삼일절입니다. 계제에 노예근성과 자유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2. 하나님께서 가르신 홍해의 이중성

하나님의 기적의 권능으로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가나안을 향해 가는 이스라엘이, 비하히롯 곁 해변에 장막을 치고 있을 때였습니다. 애굽의 바로 곧 왕이 이끄는 전차 부대와 기마 부대가 눈앞까지 돌진해 왔습니다. 이스라엘은 심히 두려워하여 하나님께 부르짖고, 모세를 향해 원망을 했습니다.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는 겁니다. 어째서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죽게 하느냐는 겁니다. 애굽에서 살 때에 애굽 사람을 섬기게 내버려두라고 하지 않았느냐는 겁니다.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구구절절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해방되게 해 달라고 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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짖어 간구하던 일은 왜 생각을 못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더 기막힌 것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애굽에 열 번이나 기적의 재앙을 내려 해방되게 하신 일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는 것입니다.
현실 파악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의 막강한 군대가 바짝 돌진해 오긴 했지만, 그들의 칼과 창과 화살에 맞아 중상을 입거나 죽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지 않습니까? 게다가 부국강병의 애굽이, 모세의 전언을 어길 때마다 전언대로 애굽의 모든 장자의 죽음을 비롯한 재앙을 열 번이나 내린 하나님께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시지 않습니까? 사람이 평정을 잃고 두려움에 사로잡히거나, 뭔가에 쏠려 버리면 생각할 것을 생각 못하고, 들을 것을 듣지 못하고, 볼 것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더 심해지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스라엘의 안타까운 현상의 근본은 바로 노예근성입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은 기도는 그들의 마음과 생각의 변두리이고, 근본과 중심은 노예근성입니다. 하나님의 기적의 권능을 무수히 보고 듣고 겪었으면서도 하나님 타령이 아니라, 애굽을 섬기는 종살이 타령을 하지 않습니까? 그들의 몸은 애굽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워졌지만, 여전히 노예근성을 못 버리는 것입니다. 수백 년이 넘는 장구한 세월을 대를 이어 노예 노릇을 한 심각한 후유증입니다. 사람이 육적‧지적‧영적 실력을 배양하지 않거나, 국가가 군사력과 경제력과 정치력과 외교력 등을 배양하지 않으면 유사시에 망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노예 노릇을 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같은 위기였지만, 유모가 된, 믿는 어머니 품에서 인격 형성에 중요한 때인 어린 시절을 보냈고, 애굽 공주의 양자로 왕족 생활을 한 모세는 전혀 달랐습니다. 출애굽기 14:13 이하를 보면,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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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예근성을 가진 이스라엘이 아니라, 자유 정신을 가진 모세를 통해 계시하시며 역사하셨습니다. 홍해를 향해 나가라는 말도 안 되는, 하나님의 명령을 백성들이 복종하고, 모세가 지팡이를 들고 홍해를 향해 손을 내밀매 하나님께서 큰 동풍으로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셔서 한가운데 길을 내셨습니다.
사람들은 자유가 주어지면 노예근성이 없는 자유인이 되는 줄 아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자유인이 되기 위한 노력과 수고, 모험과 투쟁을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술이나 마약, 쾌락이나 죄악에 탐닉하거나, 물욕이나 출세욕에 끌려가거나, 잘못된 교리나 이념에 길들여지거나, 유력한 사람이나 집단에 의존하면 노예근성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8:32을 보면,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8:36에는,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죄의 종이 되어 마귀에게 멸망으로 끌려가는 인류의 대속주가 되시는 주님을 믿고 따름으로써, 자유를 얻고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신 기적은 구원과 멸망이라는 이중성이 있습니다. 홍해를 향해 나가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을 믿고 복종한 이스라엘에게는 구원이나, 마귀에게 미혹되어 온갖 우상을 숭배하며 신으로 자처하는 바로의 명령을 따라 홍해의 길로 들어간 애굽군에게는 멸망입니다. 믿는 사람에게는 구원의 반석이나, 안 믿는 사람에게는 거치는 돌인 주님의 십자가의 모형입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을 심판하셨다기보다는 애굽이 멸망을 자초했다는 것이 정확한 이해일 것입니다. 벌써 깨달았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얼마나 많고 엄청난 하나님의 권능에 의한 재앙을 당했습니까? 애굽의 신들이 헛것임을 깨달을 기회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몇 차례 맞서던 애굽의 무당과 박수와 술사들조차도, 하나님의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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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이기 때문에 당할 수 없으니 이스라엘을 내보내 주어야 한다고 진언하지 않았습니까? 말해 무엇합니까? 방금 전에도, 애굽군은 하나님의 사자가 애굽군 앞에 버텨 서고, 구름 기둥이 막는 바람에 돌격할 수 없는 놀랍고 두려운 기적을 보지 않았습니까? 무수한 회개와 믿음의 기회를 다 묵살해 버리고, 홍해 속으로 달려든 것입니다. 그것도 하룻밤 사이에 홍해가 갈라진 길을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색다른 노예근성을 보게 됩니다. 통치자로서의 체통이나 위신의 노예근성, 강한 힘과 지식과 유무형의 소유에 의존하는 노예근성입니다. 거역하다가 장자까지 죽게 했으면서도 버리지 못한 신념의 노예근성, 증오와 원한의 감정의 노예근성입니다.
피지배층인 이스라엘의 노예근성과 지배층인 애굽의 노예근성은 속성과 양상이 다르지만, 둘 다 멸망에 이르는 죄를 짓게 하는 마귀의 노예 노릇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8을 보면,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라고 했습니다. 근본적인 죄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흔히들 말하는 것처럼, 홍해의 기적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은 사랑하시고, 애굽은 미워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랑과 공의로 역사하시는 분이지, 편애와 불의로 역사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죽는 순간까지 회개하지 않고, 대적하는 애굽에 대한 심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의 때에, 애굽에서 대접받으며 살던 이스라엘이 애굽의 우상 숭배와 죄악을 좇을 때에 노예 신세가 되도록 내버려두셨습니다. 또, 나중에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하시면서도, 가나안 족속들의 우상 숭배와 죄악 생활을 따르면 그들처럼 멸망당할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편애가 아닙니다.
믿고 순종하는 사람과 민족에게는 구원의 은혜이고, 불신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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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순종하는 사람과 민족에게는 멸망인 홍해 사건의 근본적 의미는 양쪽 모두를 구원하시려는 교육과 훈련과 시험입니다. 구름 기둥으로 애굽군의 추격을 막으시는 것과, 홍해가 갈라지고 길이 생긴 것을 애굽군도 볼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애굽군은 깨닫고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기는커녕, 사백 년이 넘게 노예로 부려먹은 이스라엘을 진멸하려고 홍해 한가운데로 달려든 것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그런 애굽군에게 또 회개하고 믿을 기회를 주셨습니다. 홍해 속에 달려 든 애굽군을 어지럽히시고, 병거 바퀴를 망가뜨리셨습니다. 왜 안 죽이시고, 그냥 어지럽게만 하시고, 병거만 못 가도록 고장나게 하셨겠습니까? 죽기 전에 회개하고 믿어 영생 구원을 얻을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불행히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세가 손을 내밀어 기도할 때, 홍해가 다시 합쳐지는 바람에 애굽군은 모조리 수장되고 말았습니다. 그 와중에 회개하고 믿은 애굽 군인은 구원받았을 것입니다.

3. 맺음말

애굽에서 해방된 이스라엘은 참된 자유인, 참된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 많은 교육과 훈련과 투쟁과 시험이 필요했습니다. 갖가지 속박에서 해방되었다고 자유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무엇 또는 누구인가를 위해 살고, 무엇 또는 누구인가에 의해 살고, 무엇 또는 누구인가를 믿고 의지해 산다는 점에서 볼 때, 모든 인간은 자유인이 아니라 무엇 또는 누구인가를 섬기는 노예의 삶을 사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눈에는 하나님을 떠나 온갖 형태의 우상숭배를 하는 사람과 국가는 진정한 의미의 자유인도 아니고, 진정한 의미의 독립 국가도 아닙니다.
우리 모두 주 하나님을 믿고 순종함으로써 자유인의 삶을 살며, 진정한 독립 국가를 이루는 역군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설교의 성경 본문: 출애굽기 14:10-12, 24-31)

10바로가 가까워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 뒤에 미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11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이같이 우리에게 하느뇨 12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고한 말이 이것이 아니뇨 이르기를 우리를 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뇨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24새벽에 여호와께서 불 구름 기둥 가운데서 애굽 군대를 보시고 그 군대를 어지럽게 하시며 25그 병거 바퀴를 벗겨서 달리기에 극난하게 하시니 애굽 사람들이 가로되 이스라엘 앞에서 우리가 도망하자 여호와가 그들을 위하여 싸워 애굽 사람들을 치는도다 26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물이 애굽 사람들과 그 병거들과 마병들 위에 다시 흐르게 하라 하시니 27모세가 곧 손을 바다 위로 내밀매 새벽에 미쳐 바다의 그 세력이 회복된지라 애굽 사람들이 물을 거스려 도망하나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을 바다 가운데 엎으시니 28물이 다시 흘러 병거들과 기병들을 덮되 그들의 뒤를 쫓아 바다에 들어간 바로의 군대를 다 덮고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더라 29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였고 물이 좌우에 벽이 되었었더라 30그 날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스라엘을 애굽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매 이스라엘이 바닷가의 애굽 사람의 시체를 보았더라 31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베푸신 큰 일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 종 모세를 믿었더라

필자의 newrema.com의 저서들: 신약 전체 주석/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설교집 27권/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다수의 논문들 HP 010 6889-3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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