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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회 만세3(萬歲)
함창석
- 1426
- 2019-02-28 22:47:58
산돌 함창석 장로
만세는 오랜 세월이다. 대개 상대방에게 오래 살고 잘 되기를 축복할 때, 개선 군사들을 환대해 환호할 때 감탄사(구호)로 사용되었다. 승리를 기뻐하는 뜻으로, 두 손을 머리 위로 높이 들고 외치는 소리로 한자 문화권인 대한민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월남, 중국, 대만, 일본 등에서 사용되고 있다.
사무엘이 모든 백성에게 너희는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를 보느냐? 모든 백성 중에 짝할 이가 없느니라 하니 모든 백성이 왕의 만세를 외쳐 부르니라. 사무엘이 나라의 제도를 백성에게 말하고 각기 집으로 보내매 사울도 기브아 자기 집으로 갈 때에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된 유력한 자들과 함께 갔느니라.
압살롬과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이르고 아히도벨도 그와 함께 이른지라. 다윗의 친구 아렉 사람 후새가 압살롬에게 나갈 때에 그에게 말하기를 왕이여 만세, 왕이여 만세 하니 압살롬이 후새에게 이것이 네가 친구를 후대하는 것이냐? 네가 어찌하여 네 친구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느냐?
이전에 내 생명을 모든 환난에서 구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가리켜 네게 맹세하여 이르기를 네 아들 솔로몬이 반드시 나를 이어 왕이 되고 나를 대신하여 내 왕위에 앉으리라 하였으니 내가 오늘 그대로 행하리라. 밧세바가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내 주 다윗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하니라.
만세(萬歲)는 황제가 아니면 누릴 수 없는 칭호. 위충현에게 아부하는 자들이 고심 끝에 꾸며낸 칭호가 있었다. 바로 ‘구천세(九千歲)’라는 칭호였다. 구천세는 당시엔 그것이 ‘신의 한수’로 여겨졌다. 위충현이 큰 길을 지날 때 연도의 백성들은 ‘구천세’도 모자라 ‘구천구백세’까지 목청껏 불러댔다고 한다.
사실 중국 황제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동북아 체제에서 ‘만세’의 호칭은 황제의 전유물이었다. 조선과 같은 이른바 ‘제후국’의 군왕에게는 만세는 언감생심이고 원칙적으로는 ‘천세’ 호칭까지만 허락됐다. 예컨대 1423년(세종 5년) 조선을 방문한 명나라 사신 해수가 떠나면서 한 이야기가 이를 증명한다.
“고려 국왕이 큰 모임을 열 때 곡개(수레 위에 받쳐 햇빛을 가리는 덮개)와 용병(용이 그려진 병풍)을 치고, 경필(警필·임금이 행차할 때 행인을 오가지 못하게 하는 것)을 합니다. 심지어 여러 신하들이 발을 구르며 춤추고는 만세(萬歲) 부르기를 중국 조정에서 하듯 합니다.”(<해동역사> ‘예지·조례’)
정동행성은 1280년 원나라가 일본정벌을 위해 고려 땅에 세운 정치 간섭기구이다. 고려가 말로는 원나라에 충성을 다짐하면서 속으로는 황제국임을 자처하고 있다는 것을 원나라 조정에 알린 것이다. 그러자 원나라 황제 성종은 득달같이 조서를 내려 “이 무슨 짓이냐?”고 문제를 제기했다고 한다.
고려가 원(몽골)나라 침략기에 강화도 항전으로 버틸 때는 ‘만세’ 연호를 부르며 결사항전을 펼치었다. 고려는 이 핑계 저 핑계대면서 애간장을 녹이는 외교술로 세계제국이었든 원나라를 쥐락펴락하였다. 그러나 조선조 들어서 ‘만세’는 언감생심이었다. 제후국 신분에 걸맞은 ‘천세’를 자처하였다.
만세구호 ‘The King is dead. Long live The King.’이다. 이 말은 1422년 프랑스의 샤를 7세의 즉위식 때부터 처음 연호됐다고. 이 말에는 군주의 통치권에는 공백이 없음을 선포하는 것이었다. ‘만세’의 서양버전에는 통치권의 신속한 이양이라는 숨은 뜻과 함께 새로운 왕을 향한 충성서약이 담겨있다.
동양에서 ‘만세’는 단순히 군주(황제, 국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만세는 원래 ‘영원히 존재한다.’는 뜻. 만세는 ‘수많은 세월’(<장자> ‘제물론’)이나 ‘후세’(<사기> ‘전숙열전’)의 의미로 쓰였다. 송나라 때 저작물인 <사물기원>은 “전국시대 때 군주를 경축하는 백성들 모두 만세를 부른다.”고 했다.
제나라 왕족 가운데 맹상군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 신하 풍환은 우선 채무자들에게 ‘차용증서를 가져오라’고 한 뒤 잔칫상을 차렸다. 술자리가 무르익자 풍환은 이자를 낼 능력이 되는 자에게는 기한을 정해주었다. 그런 다음 도저히 이자와 원금을 낼 수 없는 자들의 증서를 불태워 버렸다.
“맹상군께서 돈을 빌려준 까닭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였습니다. 이제 부자들에게는 돈 갚을 기한을 정해주었고, 가난한 이들의 차용증은 불태워 없앴습니다. 마음껏 음식이나 드십시오. 이런 맹상군을 어찌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은 ‘맹상군 만세! 만세! 만세!’하는 만세삼창을 하였다 한다.
제7차 북한 노동당 대회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연설이 끝나자 12번의 ‘만세’ 소리가 터졌다고 한다. 과연 진심에서 터진 만세였을까? 궁금증이 한 가지 더 생긴다. 1985년 당시 김일성 주석이 “인민들이 쌀밥에 고깃국을 먹는 날이 와야 7차 노동당대회를 연다.”고 했다. 지금 그 약속은 지켜졌는가? 이다.
(일부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