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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육하시기 전의 그리스도의 역사(벧전 1:10-11)
최세창
- 1325
- 2019-03-19 05:44:24
“은혜”(카리토스, χάριτος)는 1:2의 주석을 보라. 특히, 여기서는 구원과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예언하던 선지자들”의 “예언하던”은 프로페튜산테스(προφητεύσαντες)로서 {“성경을 해석하는 기술이 아니며”(J. Calvin)), 또한 “미래를 미리 말하는 은사도, 과거를 설명하는 은사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다”(J. E. Frame). 그런 의미에서 예언자란 내재하신 그리스도 또는 성령 안에서 작용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리는 자인 것이다.
헨드릭슨(W. Hendriksen)은 예언자란 말을 어원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프로페테스(προφήτες)는 프로(πρό: ‘앞으로’, ‘밖으로’)와 페미(φημί: 말하기’)가 결합된 낱말이다.…그리고 그(예언자)가 앞을 향해, 또는 밖을 향해 말하거나 공공연히 선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마음이다. 그는 선포자이지, 반드시 예고자인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예언을 멸시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무시하는 것이다}(살전 5:20의 주석).
{렌스키(R. C. H. Lenski)는 “예언과 예언자는 이미 계시된 구원의 진리를 가장 적절하게 전달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예언자는 교사이기도 하며, 전도자요, 목회자이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는 아가보와 빌립의 딸들(행 21:9-10)과 같은 예언자들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장차 오는 사건에 관한 여러 가지 계시를 전달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구약성경의 예언자는 물론, 신약성경의 사도들보다 하위에 위치한다. 그들의 기능은 부수적이요, 그들의 계시는 어쩌다 있었으며, 또한 그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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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있어서도 소수에 불과하였다.”라고 설명하고 있다}(엡 2 :2의 주석).
“선지자들”(프로페타이, προφήται:‘예언자들’)이 복수로 되어 있고, 또 관사가 없는 것을 미루어 어떤 특정한 예언자들이 아니라,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 나오는 모든 예언자들을 가리킨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베드로는 구약성경의 예언자들도 신약성경의 예언자들처럼, 내주하신 그리스도의 영의 계시를 받아 선포한 주제가 그리스도라고 하는 놀라운 주장을 하는 것이다(그리스도의 고난:시 22편, 사 42:1-, 52:13-53:12. 그리스도의 영광과 승리:시 2편, 16:8-11, 시 110편). 다시 말해서, 구약성경의 예언자들은 그리스도를 보내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메시아 약속을 선포하였고, 신약성경의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오신 메시아 곧 그리스도를 선포하였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선포하는 예언자들을 비인격적으로 취급하여, 단순히 기계적인 도구로 사용하시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인격적인 존재로 인정하여, 어느 정도나마 그들의 개성과 특징과 소질과 재능을 계발하여, 그에 걸맞는 내용의 말씀을 깨우쳐 주시고 선포하게 하셨다. 그 좋은 예로,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강조하여 선포한 아모스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선포한 호세아를 들 수 있다.
그러므로 선택된 예언자들은 내주하신 그리스도의 영의 지도를 좇아, 기도와 명상 등을 통해 하나님과의 인격적이며 영적인 교통을 지속해 나갔고, 그와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받기 위해, 또 주신 말씀을 올바로 깨닫기 위해, 그리고 그 말씀을 효과적으로 선포하기 위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폈던 것이다(단 9: 2, 22-27, 12:6-13).
특히, 구약성경의 선지자들의 활동에 대해 베드로는 【11】“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여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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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고 설명하고 있다.
구약성경의 예언자들 속에 내주하신 그리스도의 영(πνεύμα Χριστού)에 대해, (1) 그리스도에 관한 영 곧 구약성경에서 선지자들로 하여금 미래에 오실 그리스도에 관하여 예언하게 한 영이라는 설(“Kühl”,① J. A. Bengel), (2) 그리스도 자신의 영 곧 나중에 그리스도 안에 계신 영이 구약 시대에 미리 활동하신 것으로 보는 설,② (3) 하나님의 영이시자 성령이라는 설,③ (4) 성령의 대명사(1:12, 롬 8:9, 갈 4:6)라고 하는 설④ 등이 있다.
(1)설은 그리스도와 별개의 것인 비인격적인 영이라는 의미가 될 수 있고, (2)설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영이 별도로 작용한다는 의미가 될 수 있으므로 적합하지 않다. 그리고 (3)설과 (4)설은 성경이 증거하는바 영원부터 존재하신 삼위일체 신관에 비추어 볼 때, 결국 같은 견해라 할 수 있다. 이 견해 곧 많은 학자들의 견해인 성령, 또는 하나님의 영이시자 성령이라는 견해가 타당하다.
여기서 우리는 베드로가 바울처럼(롬 1:2, 3, 8:3, 고전 8:6, 고후 8:9, 갈 4:4, 엡 1:4, 3:11, 빌 2:6-8, 골 1:15-17, 26. 참조:요 1:1, 8:58), 그리스도의 선재를 믿었음을 알 수 있다.⑤
벤틀레이(M. Bentley)는 베드로가 성령을 그리스도의 영으로 언급하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예수께서 승천하셨을 때, 자기 백성들을 위해 보혜사를 보내셨다. 예수께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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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에는 저자의 이름만 밝혔고, 같은 견해를 가진 학자들이 네 명 이하일 경우에는 본문의 괄호 속에 이름만 밝혔음.
1) in 이상근
2) “Huther”(in 이상근), C. Bigg, C. R. Eardman, 黑崎幸吉, 이상근.
3) W. Barclay, A. T. Robertson, “Selwyn, Beare”(in 김철손), 김철손.
4) J. Calvin, M. Henry, H. Alford, A. Clarke, B. C. Caffin, R. C. H. Lenski, B. Reicke, “Greijdanus”(in 박윤선), A. M. Stibbs, E. A. Blum, M. Bentley, C. S. Ball, B. W. Robinson, D. H. Wheaton, 박윤선.
5) 참조:저자의 갈라디아서 4:4의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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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에게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요 16:7)라고 말씀하셨다. 또, 예수께서 지상 선교를 시작하셨을 때, 우리는 성령의 권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셨다는 소문을 듣는다(눅 4:14). 그리고 예수께서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하여, “주의 영이 내게 임하셨다”(눅 4:18)라고 말씀하셨다. 그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보내셨고, 또 성령을 통해 일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성령을 그리스도의 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은 내주하신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에게서 장차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받으실 대속에 이르는 고난들과 그 후에 얻으실 영광들에 관한 증언을 미리 들어 알았지만, 그 일들이 “어느 시 어떠한 때” 곧 언제 어떤 상황에 발생하는지에 대해서는 몰랐으므로 상고하였다. 예수께서는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마 13:16-17)라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의 고난 뒤에 올 영광들에 대해, 웨슬리(J. Wesley)는 “주로 그리스도의 부활, 승천, 영화로움, 그리고 그분의 영의 출현, 최후 심판의 영광과 그분의 영원한 나라의 영광, 또한 그리스도인들의 마음과 삶 속에 거하는 그의 은총의 영광이다.”라고 설명하였다.
그리스도의 영 곧 성령이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에게 내주하여 역사하셨다는 사실은 대단히 중요한 의의가 있다. 이 점에 대해 마샬(I. H. Marshall)은 “의심할 것 없이, 우리는 구약성경의 주된 주제가 수세기에 걸친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으로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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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구약성경의 이야기가 예수께서 오신 이래 발생한 일에 대한 준비라는 것을 안다.”라고 하였고, 또 헨리(M. Henry)는 “많은 예언들이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첫 의도는 가까이 있는 어떤 인물이나 사건을 다루는 것이었으나, 그들의 궁극적인 의도는 고난받는 자 또는 그리스도의 왕국을 묘사하는 것이었다.”라고 하였다.
아닌게아니라 구약성경의 예언자들은 같은 시대의 동족을 위한 말씀을 선포하였다. 그러나 그들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은 그때 그 상황에만 국한되는 역사적 의미만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영적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궁극적인 의미는 그리스도께 집중되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는 완전하게 일관된다. 즉, 예언자들의 교리와 사도들의 교리는 같은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온 것으로서 일치되는 것이다.”라고 한 헨리(M. Henry)의 주장은 옳은 것이다.
출처: 최세창, 야고보서, 베드로전후서(서울: 글벗사, 2001, 3판 1쇄), pp. 356-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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