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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발을 씻기라고 하신 뜻(설교 동영상은 유튜브에)
최세창
- 1499
- 2019-03-25 22:21:04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는데, 목사는 섬김만 받으려고 한다는 비난들을 합니다. 비난에 앞서 네 가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첫째,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은 제자들을 상전으로 여겨 노예가 마당을 쓸고, 장작을 패고, 심부름을 하듯이 하신 게 아닙니다. 둘째, 예수님은 사랑의 겸손한 섬김을 가르치시려고 제자들의 발을 한 번 씻기셨고, 제자들은 늘 예수님을 섬겼습니다. 셋째,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은 메시아요, 스승으로서 사랑의 겸손한 섬김을 하신 것입니다. 가장 큰 사랑의 겸손한 섬김은 인류 구원을 위한 십자가의 대속 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넷째, 예수님은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사랑의 겸손한 섬김이 아니라, 서로 사랑의 겸손한 섬김의 본이 되라고 하신 겁니다.
2. 서로 사랑의 겸손한 섬김
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고, 가룟 유다에게는 완곡하게 경고하시면서 그들의 발을 씻기신 뒤에 겉옷을 입으시고, 식탁에 앉으셨습니다. 제자들에게 그들의 발을 씻기신 일의 의미를 아느냐고 질문하셨습니다. 주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의미는 누구나 알고 할 수 있는, 증오와 한이 맺힌 노예의 일인 발을 씻기는 일을 서로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정도라면 굳이 질문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제자들에게 질문하신 의도는, 지옥의 멸망으로 이끄는 마귀의 덫인 죄를 사하시고, 성령을 좇아 사랑의 섬김인 성결한 삶을 살게 하시고, 영생 구원을 얻게 하시는 메시아로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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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사랑의 겸손한 섬김을 깨닫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0:28을 보면,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더 이상 서로 자기가 더 크다고 다투어 토론하는 교만을 부리지 않고, 서로 사랑하며 겸손히 섬기면 모든 사람이 주 예수님의 제자인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의 사랑의 겸손한 섬김에 의해 도움과 죄 사함과 성결한 삶과 영생의 구원을 받은 우리도, 받은 주 예수님의 사랑을 가지고 서로 사랑의 겸손한 섬김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최고 최대의 서로 사랑의 겸손한 섬김은, 영생의 주님을 선물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서로 사랑하며 겸손히 섬기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려고,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라고 하셨습니다. “선생”의 헬라어 디다스칼로스(διδάσκαλος)는 지도자라는 뜻이고, “주”의 헬라어 퀴리오스(κύριος)는 ‘노예에 대한 주인’,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 적용될 때는 그의 신성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옳도다”의 헬라어 오페이레테(ὀφείλετε)는 ‘빚을 지다’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당연히 신성을 지닌 존재요 지도자로서 발 씻김을 받아야 하는데, 오히려 제자들의 발을 씻겼으므로 제자들이 서로 발을 씻기는 빚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상사나 스승이나 통치자가 아니라, 구주이시며 천국으로 인도하는 지도자이신 예수님의 사랑의 겸손한 섬김을 받은 제자들이므로 서로 사랑하며 겸손히 섬겨야 할 빚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몸소 발 씻기는 행동으로 본을 보이셨다는 것입니다. 물론, 제자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시골에서 목회할 때에 담을 낮게 쌓고, 철문을 세우기로 결정하고 시행하는데 마을 사람들이 들고일어났습니다. 한 무리가 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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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서 방해하고, 설득하고, 협박하고 가면, 또 한 무리가 몰려와서 훼방하고 회유하고 폭력을 휘두를 듯이 위협하기를 이틀이나 했습니다. 교인들은 마을 사람들의 서슬에 피해 버리고, 저 혼자서 교회의 대지 삼분의 일을 동네 길로 사용케 했고, 담은 낮게 쌓을 것이라고 하는 등 때론 큰소리로 응대했습니다. 평소에 마을 일을 적극 도와준 사랑은 그들의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는 젊은 가장은, “성경에 사랑하라고 했는데, 목사님 사랑 좀 하시죠. 사랑, 사랑.” 하며 비아냥거렸습니다. “성경엔 서로 사랑하라고 했지, 사랑을 강요하거나 구걸하라고 하지 않았어요. 교회 땅의 삼분의 일이나 마을 길로 쓰라고 기증했어요.”라고 했더니 머쓱히 물러갔습니다.
이틀이나 소동이 계속되어 담을 쌓다가 말았는데, 마침 결혼식이 있는 바람에 마을 사람들이 예식장에 전세 버스를 타고 갔습니다. 이때다 싶어 일꾼들을 독려해서 담을 다 쌓았습니다. 일꾼들이 앞서 쌓은 담이 이틀 이상이나 단단히 굳어서, 담이 더 튼튼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불행 속에도 행복은 있게 마련입니다.
목사가 마을에 피해가 안 되는 일을 하다가 온갖 협박과 회유와 위협에 굴복했더라면, 주님과 전 교인을 위한 사랑을 못했을 것입니다.
주 예수님은 질서를 무시한다는 오해가 생길지도 모를 것을 염려하셔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크지”의 헬라어 메이존(μείζων)은 ‘크다’, ‘높다’, ‘탁월하다’, ‘중하다’, ‘훌륭하다’ 등을 의미합니다. “보냄을 받은 자”와 “보낸 자”는 주 예수님과 하나님의 관계나, 제자들과 주 예수님의 관계에 적용되는 것입니다. 제자들이나 교인들이 이런 관계를 알고 행하면 복이 있습니다.
법을 만들어 합법적으로 독재하는 통치자나, 편법 또는 불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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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독재하는 통치자에게 사랑의 겸손한 섬김을 하고, 그 대가를 받는 것은 서로 사랑의 겸손한 섬김이 아닙니다. 그들보다 훨씬 더 많은 백성을 도탄에 빠뜨리는 악입니다. 모든 통치자는 주님의 사랑의 겸손한 섬김을 본받아야 합니다. 나이 다소나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서로 사랑의 겸손한 섬김을 해야 합니다. 특히, 통치자와 위정자들은 야망이나 야욕이나 이념을 위해 자기 사람들을 보낸 자가 아니라, 국민에 대한 사랑의 겸손한 섬김을 위해 국민의 선거로 보냄 받은 자라는 사실을 알고 일해야 합니다. 국민은 그 사실을 알고 통치자와 위정자들이 바로 일하도록 사랑의 겸손한 섬김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사랑의 겸손한 섬김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사랑의 겸손한 섬김을 받고도 배반하는 자들이 있는 것에 대해, “내가 너희를 다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의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서로 사랑의 겸손한 섬김으로 받는 복을, 주님이 택하신 제자들 모두가 누리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배반할 가룟 유다는 예외라는 것입니다.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는, 시편 41:9의 “나의 신뢰하는바 내 떡을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 발꿈치를 들었나이다”를 인용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다윗이 곤경에 처했을 때, 식탁을 같이하던 친한 친구가 배신하여 대적한 일로 인한 아픔을 토로한 것입니다. 이 토로는 장차 메시아가 겪게 될 배신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같은 가르침과 같은 직분을 받았고, 같은 사랑의 겸손한 섬김을 받은 가룟 유다가 자신을 배반할 것을 아셨지만, 예언의 말씀이 성취되어야 한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제자로 택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과 식탁을 함께하던 가룟 유다는, 회개하도록 거듭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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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는 예수님을 향해 결국 발꿈치를 들어 차고 말았습니다. 안타깝게도 가룟 유다는 불길한 예언에 맞아떨어지는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여북 답답하시면, 주 예수님이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라고 하셨겠습니까? 마태복음 26:24입니다. 가룟 유다의 배신행위가 발생하기 전에 미리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 목적은, 그 배신행위의 때에 자신이 메시아인 줄을 제자들로 히여금 더욱 확고히 믿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 주 예수님은 메시아로서 매우 중대한 선언을 하셨습니다. 주 예수님이 복음 선교를 위해 보낸 제자들을 영접하는 자, 곧 받아들이는 사람은 주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고, 주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는 인류 구원을 위해 주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구원 섭리는 하늘과 땅, 영과 육의 세계를 밀접하게 연관 짓는 것입니다. 땅에만 국한되고 육신에만 국한되는 구원이란 구원이 아닙니다.
3. 맺음말
주님은 일방적인 사랑의 겸손한 섬김이 아니라, 서로 사랑의 겸손한 섬김을 가르치셨습니다.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서로 사랑의 겸손한 섬김을 하면 복이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겸손한 섬김을 받아도 배반하는 자들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배반할 것을 아셨지만 예언의 말씀이 성취되어야 한다는 것을 아셨으므로, 제자로 선택한 가룟 유다가 깨닫고 회개하도록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가장 큰 사랑의 겸손한 섬김인 대속 제물이 되시는 주님이 보낸 사람들을 영접하는 자는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고, 주님을 영접하는 자는 인류 구원을 위해 주님을 보내신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인들의 물질적인 사랑의 겸손한 섬김을 받는 목사의 가장 큰 사랑의 겸손한 섬김은, 주님의 복음을 깊고 바르게 깨닫고 전하는 것입니다.
(설교의 성경 본문: 요한복음 13:12-20)
12저희 발을 씻기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13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14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15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16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 17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18내가 너희를 다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의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19지금부터 일이 이루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이름은 일이 이룰 때에 내가 그인 줄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로라 20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의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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