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리회 사순(四旬)

함창석
  • 1150
  • 2019-03-22 00:50:51
사순(四旬)

산돌 함창석 장로

사순은 40일이다. 보편적인 기독교에서는 부활절 전까지 여섯 번의 주일을 제외한 40일 동안의 기간을 말한다. 이 40일간, 금식과 특별기도, 경건의 훈련 기간으로 삼는다. 성경에서 '40'이라는 숫자와 관련된 사건이 많이 등장하는데, 노아 홍수 때 밤낮 40일간 비가 내렸고,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동안 거친 광야에서 생활했으며, 예수께서 광야에서 40일간 마귀의 시험을 받으시기도 하셨다.

여기서 보듯, '40'이란 고난과 시련과 인내를 상징하는 숫자임을 알 수 있다. 사순절 기간 동안 성도는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며, 회개와 기도, 절제와 금식, 깊은 명상과 경건의 생활을 통해 수난의 길을 걸어가신 주님을 기억하며 그 은혜를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 초기교회는 3세기 초까지 절기의 기간을 정하지 않고 이틀이나 사흘 정도 지켰고, A.D.325년 니케아 공의회 때부터 40일간의 기간이 정해졌다.

사순절의 기간은 동방교회와 서방교회가 서로 달리했다. 동방교회는 600년경부터 7주간으로 했고(토요일과 주일을 제외하고 부활주일만 포함하여 36일을 지킴), 서방교회는 6주간(주일을 제외하고 36일을 지킴)으로 했다. 예루살렘교회만 4세기 때처럼 40일을 지켰는데 그중 5일만 금식했다. 그러던 것이 교황 그레고리 때부터 40일을 지키게 되어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부터 사순절이 시작되었다.

초기 기독교에는 이 사순절 기간 동안 '사순절 식사'(Lent Fare)라고 하는 고기를 제외한 채소 중심의 단순한 음식을 먹었다. 하루에 한 끼 저녁만 먹되 채소와 생선과 달걀만 허용된 것이다. 9세기에 와서 이 제도가 약간 완화되었고, 13세기부터는 간단한 식사를 허용했다. 밀라노에서는 36일간 금식을 하였고, 9세기에서 14세기에 이르는 동안엔 교구 성직자는 사순보다 앞서 칠순부터 금식을 시작하였다.

사순절은 부활절 40일 전, 재의 수요일에서 시작해 성토요일에 끝난다. 약 4세기경부터 시작되었는데, 예수가 세례를 받은 뒤 40일 동안 황야에서 금식을 하고 사탄의 유혹을 받으며 보낸 기간을 기념해 생긴 관습이다. 예를 들어 동방정교회는 하루에 해가 진 다음에 한 끼 식사만 허용하며, 육식은 물론 생선과 달걀도 40일 내내 금한다. 하지만 다른 그리스도교 교회에서는 그 규칙이 점차 느슨해졌다.

사순절의 주된 정신은 참된 자아를 추구하고 영적인 준비를 갖춘 뒤에 부활절을 맞아 예수의 부활을 축하하려는 데. 사순절에는 엄격한 단식을 해야 하기에 사순절 이전의 화요일은 대대적으로 잔치를 벌이는 날이 되었다. 미국의 뉴올리언스 같은 지방에서는 마르디 그라(Mardi Gras) 잔치를 벌인다. 사순절을 뜻하는 영어 단어 'Lent'는 '봄날'이라는 뜻의 영어 고어인 '렌크텐(lencten)'에서 나왔다.

그리스도교 교회력 안에서 일어난 최초의 전례 계절. 부활제를 맞이하는 준비로서 특히 세례지원자를 위해서 고려해 선발된 낭독 장소가 정착됨으로써 고유한 전례 계절이 된다. 사순절 제1주일은 고대에 교회가 세례지원자를 받아들여 세례준비를 시작하는 세례지원식이 행하여지는 날. 제2주일에는 주의 변용이 기념되며, 제3주일부터 제5주일까지는 특히 세례지원자를 중심으로 말의 전례가 행하여졌다.

이 기간의 전례는 세례지원자의 자유로운 결단을 촉진하기 위해서 특별히 선택된 낭독 장소가 이용되고 있다. 그리스도인에게 세례의 기념을 새로이 하고, 회심을 심화시키는 동시에 신과의 개인적 관계에 그치지 않고 구원의 공동체성, 죄와 악의 연대성을 자각하고, 나아가서 인류와 사회의 죄와 악에 공동책임을 생각하는 때이기도. 사순절의 보상, 헌금, 봉사 등은 이와 같은 신앙에 의한 실천이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와 허물을 담당하시고 무너져 가는 이스라엘을 안타까워하시며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소리 내어 우셨다.

그는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았는데 나는 그를 위해 무엇을 드렸는가? 무엇을 내려놓았는가? 내가 지는 십자가는 무엇인가? 풍전등화 같은 시대에 우리는 민족을 향한 십자가를 지고 안타까워 흘리는 눈물이 있어야. 예수그리스도는 눈물로 간구하셨다. 예수님의 눈물의 기도가 인류구원을 완성하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이 주신 사명과 이 민족의 과제를 완성시켜 나갈 책임과 의무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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