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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패러독스
이주익
- 1833
- 2019-03-28 20:14:31
이 십자가의 빛깔은 남미에서는 죽음의 검붉은 색깔로, 북미에서는 평화의 밝고 노란색 불빛으로 그들의 역사에 남아 있다. 멕시코와 페루의 왕궁과 박물관을 장식하고 있는 벽화 속에 남아 있는 십자가는 영락없이 참혹하게 죽음을 당하고 있는 원주민을 배경으로 마귀의 탈을 쓴 신부가 드라큘라와 같이 서 있다.
반면에 북미의 역사 속에는 함께 수고하고 또 나눔의 기쁨을 감사하는 청교도들의 모습이 밀레의 만종으로 역사의 화폭에 담겨져 있다. 차이가 있다면, 남미는 침략자들의 약탈로 비롯되었다는 점이고 북미는 청교도들의 피난처로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한국과 미국의 역사는 갑신정변 주역들의 피난으로 시작된다. 갑신정변은 1884년 민씨 정권을 무너뜨리고 청국과의 종속 관계를 청산하고자 개화파가 일으킨 정변으로 국민 주권국가 건설을 지향한 최초의 정치개혁 운동이며, 그 주역은 김옥균, 홍영식,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이다.
이들은 1884년 12월 4일 우정국 개국 축하연을 기회로 정변을 일으켜 민영익에게 부상을 입힌 다음 국왕과 왕비를 경운궁으로 이어한 후 수구파 우두머리를 처단, 정권을 장악한다.
이어서 개화파들은 홍영식이 우의정, 박영효가 좌포도대장, 서광범이 우포도대장, 김옥균이 호조참관이 되어 군사권과 재정권을 장악하고 정강을 제정, 발표했다.
그러나 정변은 실패로 막을 내렸고 이들 주역 중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은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하여 후일 독립당, 독립협회를 기초로 한 미주 이민사회의 뿌리가 된다.
조선의 국왕 고종은 조선과 미국의 정식수교로 루시어스 프트가 초대 주한 미국공사로 부임하자, 민영익을 전권대사로 하는 보빙 사절단을 미국으로 보낸다. 사절단은 민영익 전권대사를 비롯, 홍영식 부대신, 서광범, 유길준, 고영철, 변수, 현홍택, 최경식 등 11명으로 구성되었다.
최초의 방미사절단은 1883년 7월 26일 인천항을 출발, 일본을 거쳐 9월 2일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후, 미대륙 횡단 열차 편으로 시카코(12일)를 거쳐, 워싱턴(15일)에 도착하게 된다.
한. 미 교회의 역사는 민영익 일행의 시카코 횡단 열차 안에서 시작된다. 열차 안에서 권전대사 민영익이 당시 미국의 저명한 감리교회 지도자 가우처 박사를 만나게 된 것이다.
가우처 박사는 이 열차 안에서 민영익에게 한국에 기독교 복음이 전파되도록 힘써 줄 것을 설득했고, 민영익은 가우처 박사에게 한국의 개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도와주기를 부탁하게 된다.
이 만남을 계기로 가우처 박사는 미국 감리교회에 여론을 일으켜 선교비를 모금하는 한편 일본 주재 감리교회 선교사인 매클레이 목사에게 모금된 3,000불을 보내 그로 하여금 한국을 방문, 선교의 문을 열게 된다.
매클레이 선교사는 1884년 6월 24일 한국을 방문하여 평소에 교분이 있던 김옥균을 통해 고종을 알현(謁見)하고 한국에서 기독교가 교육과 의료사업을 해도 좋다는 윤허(允許)를 받게 된다.
민영익과 기독교의 만남은 갑신정변으로 한국에 장로교 선교를 개시하도록 하는 또 다른 계기를 만든다. 갑신정변의 표적으로 현장에서 피격된 민영익은 당시 의사의 신분으로 와 있던 알렌 선교사에 의해 목숨을 건지게 되었고 이를 가상히 여긴 조선 왕실이 그에게 의료선교 활동을 하도록 적극, 지원하게 된 것이다.
알렌 선교사(의사)는 왕실의 주선으로 광해원을 설립했고, 이를 세브란스 병원으로 발전하게 하는 등, 서양 의술의 한국 정착에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주한 미국 공사로 재임하면서 한국의 광산(운산금광) 개발과 경인 철도를 개설하는 등, 미국식 산업을 일으켜 이를 선교자원으로 개발했고, 데쉬러를 불러들여 하와이 이민을 주선하는 등 미주 이민역사의 산파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