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입장 표명이나 감리회 정책과 관계되지 않은 내용 등 "감리회 소식"과 거리가 먼 내용은 바로 삭제됩니다.
감리회 동경(銅鏡)
함창석
- 1103
- 2019-04-01 19:25:32
산돌 함창석 장로
'물거울'이란 말이 남아 있듯dl 수면에 자태를 비추어 본 것이 거울의 기원. 거울은 빛의 반사를 이용하여 상을 맺는, 즉 물체의 모습을 비추는 도구이다. 표면이 편평한 유리판 뒷면에 수은을 바르고, 그 위에 습기를 막기 위하여 연단을 칠한다. 옛날에는 은·청동·철 등의 표면을 갈아 광을 낸 것이었다.
오늘날에는 표면이 편평한 유리판 뒷면에 수은을 바르고, 그 위에 습기를 막기 위하여 연단을 칠한다. 보통 거울은 표면이 편평한 평면거울을 가리키지만, 넓은 의미로는 오목거울이나 볼록거울 등 구면거울을 비롯하여 유원지 같은 데서 볼 수 있는 표면이 만곡(彎曲)되어 특수한 상을 맺는 것도 있다.
동은 뜻을 나타내는 쇠금(金 광물ㆍ금속ㆍ날붙이)部와 음을 나타내는 同(동)이 합하여 이루어진다. 金(금)은 나중에 금은(金銀)의 금으로 쓰는 글자이지만 흔히 청동을 나타내는 글자였다. 金(금)ㆍ鐵(철), 거푸집에 넣어 여러 가지 모양에 맞추어 기물을 만드는 광물이란 데서 생긴 글자로 생각된다.
銅(구리)은 연하지만 부식이 적고 다른 금속과 잘 융합되는 성질이 있으므로 인류가 청동기 시대를 열도록 해주었던 광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초기의 화폐도 구리를 제련해서 만들어졌으며, 일상생활에서 쓰이던 놋그릇도 모두 구리를 섞어 만들었다. 고대부터 친숙했던 광물이 바로 銅이었다고 할 수 있다.
최초의 거울은 석경(石鏡)으로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측되며, 거울을 ‘색경’이라고 부를 만큼 석경은 오랫동안 사용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나라 최고의 거울은 서기전 6세기경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동경(銅鏡)이다. 이는 청동기시대에 제작되기 시작하여 삼국·고려 및 조선시대까지도 사용되었다.
초기의 거울은 모두가 지금과 같이 선명하게 비추어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때가 묻어도 잘 닦아지지 않는 결점이 있다. 지름이 한 자 가량인 대형이 있는 반면에 한 치에 지나지 않는 휴대용도 있다. 큰 거울은 경가에 걸어놓고 사용하였는데 서서 보기에 편한 등신대의 경가도 있었다고 전한다.
거울의 용도는 사용례에 따라 매우 다양하였다. 옛날 무당들이 사용하던 세 가지 무구(巫具)는 칼·방울·거울로, 무당은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집을 나간 사람이나 잃어버린 물건의 행방을 점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사용례를 근거로 고대의 거울이 무당의 장식품이자 주구였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옛날에 만들어진 석경·은경·동경·백동경을 보면 대부분 한쪽 면만 비추어보도록 되어 있으며, 다른 면에는 여러 가지 무늬나 글씨가 조각되어 있다. 인물·누각·신선·산·나무·꽃·새·물고기 등의 조각이 있는데, 이는 거울을 아름답게 꾸미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신기로 통치자의 상징을 표현하였다고 한다.
‘거울을 깨뜨리면 집안이 화를 당한다.’, ‘깨진 거울을 보면 얼굴에 흠이 생긴다.’, ‘깨진 거울을 보면 재수 없다.’, ‘정월 초하루 아침에 거울을 깨뜨리면 일 년 내내 우환이 떠나지 않는다.’, ‘꿈에 거울을 받으면 아들 낳는다.’, ‘꿈에 거울을 들어서 서로 비추면 먼 곳에서 기별을 듣는다.’ 등이 있다.
‘밤에 거울 보면 소박맞는다.’, ‘새벽에 거울 보면 해롭다.’, ‘산모는 해산 후 아흐레 동안 거울을 보지 않는다.’, ‘어린애에게 거울을 보이면 해롭다.’, ‘음식을 먹으면서 거울을 보지 않는다.’, ‘밤에 거울 보면 쉬 늙는다.’하였고, 환자의 방에 거울을 걸지 않는데 그 이유는 영혼이 달아나 죽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세월이 흘러 원형의 금속면을 갈아 광을 낸 거울이 생겼는데, 동양의 거울은 끈을 매는 손잡이를 중심으로 그 주위에 무늬를 나타낸 원판형금속거울[圓板型金屬鏡]이고, 서구식과 같이 자루가 달린 것은 시대가 흐른 뒤에 나타났다. 뒷면의 무늬는 제작연대를 알 수 있는 요소로서 고고학적으로 중요하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거울이 사용된 시기는 청동기시대. 강원도내에서는 횡성 강림과 양양 정암, 속초 조양동 등에서 청동유물들이 출토. 기원전 300년쯤 강림리·정암리에서 사람들이 무리지어 살았다. 이들은 새 우두머리를 뽑아야 했고 그를 위해 ‘무리를 이끌 자격을 부여하는 값진 물건’을 만들었다.
청동기인은 태양을 숭배했다. 가슴에 매달린 청동거울은 빛을 반사해 우두머리를 더욱 신성한 존재로 여기게 했고 청동검은 강력한 힘을 상징. 한반도에서 출토되는 동경은 종교·정치·사회적 권위의 상징물로 추정된다. 청동거울이 묻힌 분묘는 일반 무덤보다 입지조건, 부장유물 양·질이 현격히 우월하다.
삼국이전의 동경은 주로 제의에 이용되거나 부장품으로 이용. 강원대박물관이 발굴하여 소장한 횡성군 강림면 강림리에서 출토된 청동거울은 백동질이며 뒷면을 중심에서부터 동심원 11개를 배치. 세 부분으로 나눠 외구는 사선삼각형무늬를, 중심부에는 외향삼각형문을 방향을 바꿔 배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