얻지도 취하지도 못하는 이유(설교 동영상: 유튜브)

최세창
  • 1526
  • 2019-04-09 02:22:21
1. 시작하는 말

사람은 완제품이 아니라, 가능성을 가진 피조물이므로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성장과 직결된 지혜와 지식, 정보와 상식, 실력과 교양을 갖추기 위해 노력합니다. 어떤 사람은 단순히 이기적 욕심을 따라 재물이나 권세나 명예를 얻기 위해 애를 쓰고, 어떤 사람은 좋은 친구나 반려자를 얻기 위해 신경을 쓰고, 어떤 사람은 좋은 동업자를 얻기 위해 백방으로 손을 쓰고, 죄악을 범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무엇 또는 어떤 사람을 얻느라 내적 갈등 내지는 내적 분열을 일으키기도 하고, 심지어 얻고자 하는 사람이나 지식이나 사상이나 이념의 노예가 되어 남들과 다투거나 싸우거나 살인을 하기도 합니다.

2. 싸움의 원인과 얻지도 취하지도 못하는 이유

초대 교회의 교인들이 파당을 지어 다투고 있었습니다. 주님의 형제인 야고보는,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라고 했습니다.
“싸움”의 헬라어 폴레모스(πόλημος)는 ‘전반적인 싸움’, ‘전쟁’을 뜻하고; “다툼”의 헬라어 마케(μάχη)는 ‘투쟁’, ‘전투’, ‘부분적인 싸움’을 뜻합니다.
개인과 개인의 다툼이나, 집단과 집단의 싸움이나, 당파 싸움이나, 전쟁에 대한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제시하고들 있습니다. ‘남 탓’이라는 것이며, 따라서 해결도 남들이 하기에 달렸다는 것입니다. 전혀 ‘내 탓’이나 ‘우리 탓’이 아니므로 나나 우리는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야고보 사도는 “너희 지체 중에서 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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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라고 했습니다. “정욕”(헤도네, ήδονή) 곧 욕심 때문에 다툼과 분쟁과 싸움과 전쟁이 발생한다는 뜻입니다. 성령의 소욕을 거스르는 욕심 때문에, 다툼과 분쟁과 싸움과 전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내적 갈등이나, 가정과 직장의 다툼이나, 집단과 집단의 싸움이나, 전쟁에서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것은, 욕심의 노예처럼 욕심을 좇는 인간 자신이고, 해결은 자유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8:36을 보면,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각종 욕심의 지배를 따르는 욕심의 노예 노릇을 하는 모든 인간은, 성육하여 강림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님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그래야 다툼과 분쟁으로 인한 피해나, 싸움과 전쟁으로 인한 어마어마한 살상과 피해를 막을 수 있습니다. 일단 벌어진 다음이라도 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이런 문제는 그 어떤 유능하고 유력한 사람도, 그 어떤 성인군자도 내면의 욕심이 잠재해 있거나,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해결한다고 해도, 피상적이며 잠정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분쟁과 다툼과 싸움과 전쟁이 인간의 이기적 욕심에서 비롯되는데도,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은 여전히 권력이나 재물, 지식이나 명예 등등에 대한 욕심을 내고 있습니다. 욕심이 많아야 많이 얻는다고들 합니다. 실제로 욕심이 많아서 시기하고, 살인까지 하면서 많은 것을 얻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계 곳곳에, 욕심이 많아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긁어모으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욕심 때문에 수백만 명을 굶어 죽게 하고, 혹은 수백, 수천만 명을 고문하고 죽이면서 권력욕을 맘껏 누린 왕과 독재자와 공산 독재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야고보 사도는,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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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라고 했겠습니까?
첫째, 하나님의 뜻을 떠난 인간의 욕심이나,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인간의 수단 방법으로 욕심껏 얻은 모든 결실은 생사화복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따라 얻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22 이하에, 주님의 충격적인 말씀이 있습니다. 심판 날, 많은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였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냈고,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했다고 할 것인데, 그 때에 주님이 밝히 선언하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그들이 고한 말이 거짓이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도를 따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상관없는바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떠나 얻은 결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각양각색의 출세와 성공의 과실을 맺는 것을 뻔히 아시는 주님이 뭐라고 하셨습니까? 요한복음 15:5 이하에,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주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얻은 욕심의 성취란, 대개 그로 인한 남들의 피눈물의 축적이고, 미움의 축적이고, 분노의 축적이고, 원한의 축적이고, 살상의 축적입니다. 한마디로, 죄악의 축적이요, 하나님의 진노의 축적입니다.
둘째, 창조주이시자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떠나 얻은 모든 것은 천하를 주어도 안 바꿀 자기 자신을 망가뜨린 대가로 얻어진 것이므로, 얻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변에서 “그 사람, 돈 좀 벌더니 교만해졌어!” 혹은 “감투 좀 쓰더니 사람 버렸어!”, “그 사람, 임원이 되더니 이상해졌어!”라고 안타까워하는 탄식을 듣지 않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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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까? 세계 곳곳에, 돈이나 출세나 성공을 위해서 몸을 파는 사람들도 많고, 더 높은 출세나 권력 유지를 위해 인격을 팔고 카멜레온이나 충견이 되는 사람들도 많지 않습니까?
어렸을 때 읽은 돈벌레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가난한 사람이 산속을 헤매다 밤이 되어 머물 곳을 찾았는데 낡고 허물어진 흉가였습니다. 무서워하며 조심스레 문짝이 떨어진 방안으로 들어가, 조심스레 발걸음을 떼다가 그만 뭔가에 걸려 넘어져 굴렀습니다. 순간 쨍그랑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집어서 자세히 보니 엽전이었습니다. 무서운 중에도 다소 기분이 좋아서 발걸음을 떼다가 또 넘어져 굴렀습니다. 그러자 또 쨍그랑하는 소리가 나더니 엽전이 보였습니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넘어질 때마다 엽전이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신바람이 나서 계속 넘어지며 굴렀습니다. 엽전이 쌓이는 것을 보면서 더욱 신이 나서 정신없이 넘어지며 굴렀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의 몸은 점점 더 작아지면서 변형되어 갔지만, 그런 자신을 돌아볼 겨를도 없이, 나중에는 거의 자동적으로 넘어지며 굴렀습니다. 이윽고 엽전이 잔뜩 쌓였고, 그 위에 벌레 한 마리가 기어다니고 있었습니다.
더 많은 부정축재를 하기 쉬운 존귀한 신분을 욕심내기 때문에, 충견이나 여우나 카멜레온이나 뱀 같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시편 49:20을 보면,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라고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사람들 중에는 짐승만도 못한 존재가 되는 이들도 있습니다. 창조주요 구원자이신 하나님께서 안 믿는 사람들과 하나님을 전하도록 선택하신 사람들 중에도 짐승만도 못한 존재가 있다는 사실에 대해 선언하셨습니다. 이사야 1:3을 보면,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라고 했습니다.
셋째,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욕심이 뭔가를 얻을 때에는, 훨씬 더 값진 그 자신을 비롯한 소중한 것들이 상실되기 때문에 얻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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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취하지도 못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건강을 잃어버린 출세, 가정을 잃어버린 출세, 친구를 잃어버린 성공, 상사 또는 부하 직원을 잃어버린 성공,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성공, 영생을 얻는 믿음을 잃어버린 출세나 성공을 도처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나마도 잃어버린 성공과 출세의 결실마저, 재앙과 죽음이 찾아오는 순간에 다 날아가 버립니다. 빈손으로 죽음에게 끌려가 결국 멸망의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을 믿는 우리는 성공하거나 출세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까? 믿는 사람들은 누구 또는 무엇인가를 얻으려 해서는 안 됩니까? 가난과 환난의 삶만 살아야 합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얻는 방법이요, 얻는 태도입니다. 시편 91:15을 보면,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 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하시는 삶을 살며 간구해야 합니다.

3. 맺음말

주님을 믿는 우리는 하나님을 떠난 이기적 욕심의 노예 노릇인 수단과 방법이 아니라, 생사화복의 주관자이시고, 풍성한 영의 복과 재물의 복과 건강의 복을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믿는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과 기쁨이 되는 결실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 각자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나 말씀을 순종하며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구해도 받지 못하는 이유는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욕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기도란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는 이기적인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 기도는 자신의 이기적 욕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그의 뜻을 따라 드리는 기도입니다.

(설교의 성경 본문 야고보서 4:1-3, 시편 91:15)

1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2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3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15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 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필자의 newrema.com(426-3051)의 저서들: 신약 전체 주석/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설교집 27권/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다수의 논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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