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읽기와 성경해석학

현종서
  • 1586
  • 2019-04-08 23:45:39
성경은 현대나 고대의 과학(자연,인문 사회)의 서적이 아니고 철학서적(종교철학 포함)도 아니다. 성경은 체험의 글이다. 또는 계시받아 쓴글( 경험이나 체험이 불가능한 사건, 창세기,요한계시록의 경우)이다.

성경을 이해하려고 성경이 씌여진 당시의 역사적 지리적 문화적 배경등을 공부하고 그 사용된 언어와 문학형식,문체등을 공부도 한다. 이렇게 하다보면 그 글의 본래의 뜻에 가까이 접근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직접 쓴 이들을 만나서 그의 말을 들을 수 있다면 그 글의 진의를 더 자세히 알 게 될 것이다.

기독교회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종교이고 그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현재도 우리를 개인적으로 찾아 오시고 비밀을 풀어 주실 수 있는 분이시다. 그리고 구약과 신약성서에는 많은 천사들의 이야기가 있다. 그들도 우리들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활동할 수 있는 실체들일진대 지금 이것에서도 그때 저곳에서 경험하듯이 경험할 수 있는 존재들일 것이다.

기독교교회가 최근 중남미와 아프리카에 부흥하고 있다는 데, 그 주요 원인은 성경의 기록을 사실기록으로 믿고 영적 체험을 통해 영적 존재들과 신비와 기적들을 성경에 기록된 사실대로 지금도 체험하고 있는 까닭이다.

성경은 소위 삼차원적 세계(자연과 정신 세계)와 더불어 사차원적 세계( 영적 존재, 하나님, 마귀, 천사, 사귀등의 이야기)가 함께 기록 되어 있는 데, 이를 읽을 때 삼차원 세계의 이야기(윤리와 도덕)는 비교적 쉽게 이해 되나,사차원적 이야기는 잘 이해 가 안된다. 그러나 영안이 열리면 그러한 사실까지 사실로 믿고 받아들이게 된다.

현대 철학세계나 현대 신학세계속에 영적인 차원이 잘 이해가 안되어 삼차원적인 지식으로
성경의 기록들을 이해해 보려고 애를 쓴다. 잘 이해가 안되는 것은 그저 신비주의 적인 것이라하면서 일단 돌려 놓는 다. 그것은 생선 음식의 가시부분과 같은 것일 것이다. 그런부분들은 믿음이 생기고 영적인 눈이 열릴 때 비로서 이해가 되는 부분들이다. )

기독교의 신앙생활은 성경을 하나님의 계시의 책으로 믿고 깨달은 진리에 순종함으로 더욱 열리는 이 책을 신앙과 생활의 표준이 되는 책으로 보고 그것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대화하며 살아가는 삶을 말한다.

이제까지의 신학은 서양인들이 자기들의 문화수준에서 이해가 되도록 기독교 진리를 각색해서 설명하다 보니 우리 동양 기독교인들에게는 그들의 언어도 배워야 했고 그들의 사상과 문화도 배워야 했다. 그러나 기독교 진리는 동양인의 언어와 사고방식과 사상 그리고 문화를 통해서도 예수그리스도와 하나님과 성령을 이해 할 수 있고 설명할 수도 있다고 본다. 어느 언어가 있는 데 그것을 깨닫는 문법이 꼭 한가지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기독교의 하나님과 인간과 세계 이해에 있어 히브리식, 헬라식, 동양철학식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설명의 위험 또한 있으니 본래의 진리가 어느 지역 문화와 철학에 의해 왜곡되거나 변질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 진리의 전달과 전수에 있어서 학문의 방법만이 있는 게 아니라 경건훈련과 체험의 방법이 있어서 어떤 학문적 설명을 보강해 주기도 하고 교정해 주기도 한다. 그래서 진리 설명이 삼천포(이단)로 빠지는 것을 방지해 주는 것이다.

최근, 메누하 영성원장, 윤남옥 목사(윤성범 박사의 따님)의 놀라운 영적 체험은 그가 현대신학을 공부한 사람이기에 더 값이 있다.이론 신학을 넘어선 그의 체험은 어려운 신학이해를 보다 쉽게 설명하여 성경의 내용이 잘 이해가 안되고 믿어지지 않아, 신학을 공부한 이들이 "하나님은 어디 계신가? " 하는 질문을 하지 않도록 해 준다.

신학은 하나님을 설명해 준다면서 오히려 하나님을 쉽게 알 수 있는 길에 장애물들을 많이 갖다 놓아 하나님을 만나기 어려운 분으로 소개 해 놓았다. 철학적인 용어와 개념으로 하나님을 설명하려다가 철학자들의 의식수준으로 떨어뜨려 놓은 것이다.

서양철학의 수준이나 동양철학의 수준이 있는 데, 하나님의 계시 진리이해는 성령의 감동으로 가장 잘 이해 할 수 있는 것이다.

지난날의 신학은 초대교회 교부들이나, 종교개혁시대의 종교개혁 인사들은 성령의 감화와 감동으로 성경 자체의 메시지를 충실히 듣고 체계화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칼빈이나 쯔윙그리나 성경이 말하는 메시지를 그대로 체계화 하려 한 것이었다.

19세기 현대 신학을 하면서 기독교진리를 당대 세속철학의 눈으로 보고 해석하려 한데서 당대 철학을 아는 이들로 어느정도 공감할 수 있도록 한 면이 있으나 그설명이 불합리하거나 역설적이거나 한 보다 깊은 영적 진리를 설명할 수 없어 기독교의 진리를 부분적으로 왜곡하여 어떤 특수 부분을 강조하고 또는 어떤 중요한 근본진리를 가리게 한 경우가 생기었다. 무신론적 실존주의적으로 기독교진리를 설명하려다보니 성경의 근본진리까지 왜곡시키는 우를 범하므로, 차라리 철학을 넘어서서 성경자체가 뉘나 읽을 수 있는 글로 번역되었으니 이를 기도하며 읽고 성령의 가르침을 받는 것이 더 진정한 기독교에 접할 수 있는 경험도 많이 있다.(미국의 great awakening 이나 한국 초대교회 크리스챤들의 경험, 현금 중남미나 아프리카의 성경적 체험의 경험) 그런데 소위 자유주의 신학 (신정통 주의 신학 포함)공부를 한 이들은,성경을 그대로 믿으면 "근본주의 자"라는 무식하거나 고집스러운 붙통의 인사 취급하여 배제하고 현대철학적인 용어와 개념을 통해 설명해야만 유식하고 진리를 보다 심도있게 해석하는 듯 선전해 왔다. -성경공부가 아니라 신학을 해야 한다면서

그러나 그리스도교의 신앙 생활은 많은 학문적 배경보다도 체험적 신앙생활에 있었다.- 사도바울의 경우가 좋은 예이다. 예수의 12제자들중에 학식이 높거나 깊은 이들이 보이질 않는 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깨달은 진리가 얕거나 사도나 교회의 지도자가 되기 어렵다고 할 것인가?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거나 때때로 천사의 인도를 받아 위로 격려 받아 일하였던 것이다.(사도행전 참고)

오늘날의 교회는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를 만나주시고 때로 책망, 격려 위로 지시하시는 그리스도의 영과 천사들의 인도속에 주의 일에 힘을 쓰는 하나님의 사자(메신저), 그리스도의 종들이 많이 일어나서 교회와 국가, 성도들과 국민들을 지도하게 되기를 기도한다.

과거의 신학공부 그 학문은 그 당시의 문제를 풀기 위해 씨름한 노력의 소산들로 그들 학문 나름대로의 사명 완수를 위해 일한 것으로 본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의 업적에 대해서 공과 과를 반성해 보아야 한다. 19세기 후반부터 발전한 신정통주의 신학에서 일깨운 바가 있지만 그뒤로 일반철학 또 타종교와의 대화의 신학에서 기독교의 성경적 진리로부터의 굴절도 경험하였다. 신학은 당시 사조에 따라 변천되어 왔으나 사실 시간과 공간을 넘어선 하나님의 진리는 그 본질이 변화됨 없이 우리의 인간문화속에 그 빛을 비추어 온 것이다. 그리고 영계의 사실은 시간과 공간의 지배를 받지 않는 다.

최근에 우리는 신학분야와 다른 학문(예,법철학)을 한 이들속에도 살아계신 예수를 만나 프로테스탄트 정신을 더 뜨겁게 고수하며 오늘날 변질된 신학이나 문화사상을 비판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기독교에는 바로 이런 요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세속적 정보바다의 창을 닫고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우리 문화의 많은 부분에서 기독교적인 문화가 배제되고 거짓과 단체적 시위와 고소 고발,이웃간의 대화 단절,경계와 비 소통,음란과 생명경시의 문화등으로 많이 달라져 있다.

기독교세계관 ,가치관. 성공관, 사생관등이 다시 회복되어야 한다. 예수 만나 자아가 죽고 예수의 영을 받아 성화를 향해 달려 가면서 "공의와 자비가 강같이 흐르는 사회를 이루는데 밑거름이 되는 크리스챤들이 나타남이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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