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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없는 충신 엄흥도
도현종
- 1570
- 2019-04-08 19:19:18
충신 엄흥도는 사학자들과 우리들의 관심에서 멀어진지 오래되었고 단종과 사육신, 생육신등에만 촛점이 세워져있지만 엄흥도 충신은 모른다. 관심조차도없는 충신이다.
엄씨의 관적지(貫籍地)인 영월읍 하송리(寧越邑下松里)에는 처음 엄시랑(嚴侍郞)이 정착하면서 손수 심었던 은행나무가 우리나에서 제일 크고 오래된 수령(樹齡)을 자랑하는 보수(寶樹)로 천연기념물 제 76호로 지정 되었다.
엄흥도는 영월 엄씨의 충절이다. 숙부(叔父)인 수양대군(首陽大君)에게 왕위(王位)를 빼앗기고 영월에 유폐되었던 단종(端宗)이 화(禍)를 당하고 왕의 명령에 의하여 시신이 강물에 던져져 옥체(玉體)가 둥둥 떠서 돌아다니다가 다시 돌아오곤 했는데 옥 같은 열 손가락이 수면에 떠 있었다. 그러나 누구든지 시신을 거두면 삼족(三族)을 멸한다는 어명(御命)에 아무도 손을 대는 사람이 없었다.
영월호장(寧越戶長)이라는 미관말직(微官末職)에 있던 엄흥도(興道)가 관(棺)을 마련하여 자신의 선산(先山)에 장사 지내고 좋은 일을 하고 화를 당하면 달게 받겠다.는 말을 남긴 후 영남지방 울산으로 피했다.
그는 아들 3형제와 같이 남몰래 시신을 거두어 지금의 동을지산 장릉자리에 암장하고 뿔뿔이 흩어져 살아낸충의지사(忠義之士)이다. 1791년 정조 15년에 어명으로 장릉 충신단에 배향치제(配享致祭)되고 1833년 순조33년 때는 공조판서 (정2품)로 승직했고, 1877년 고종14년에 충의공(忠毅公)이란 시호(諡號)를 내렸다.ㄷ
아래의 시는 자규루에 새겨진 시로 단종이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지은 시이다.
(자 규 시 )
한 마리 원한 맺힌 새가 궁중에서 나온 뒤로
외로운 몸, 짝 없는 그림자가 푸른 산 속을 헤맨다.
밤이 가고 밤이 와도 잠을 못 이루고
해가 가고 해가 와도 한은 끝이 없구나
두견새 끊어진 새벽 뫼 부리에는 달빛만 희고
피를 뿌린 듯한 봄 골짜기에 지는 꽃만 붉구나
하늘은 귀머거리인가?
애달픈 이 하소연 어이 듣지 못하는지
어쩌다 수심 많은 이 사람의 귀만 홀로 밝는고!
충신 엄흥도는 이에 답하여 다음과 같은 차운시(次韻詩)를 지어서 단종에게 바쳤다.
한번 영월에 오시더니 환궁치 못하시옵고
드디어 흥도로 하여금 두려운 가운데 돌보시게 하였도다.
작은 벼슬아치 육순에 충성을 다하고자 하거늘
대왕은 17세의 운이 어찌 그리 궁하신지
높이 뜬 하늘에는 밤마다 마음의 별이 붉고
위태로운 땅에는 해마다 눈물비가 붉도다.
힘없는 벼슬아치 의를 붙들고 일어서서
홀로 능히 이 일을 왕께 말씀드리려 하노라.
단종은 1457년 10월 24일 금부도사 왕방연이 가지고 온 사약을 받고 17세의 어린 나이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
단종은 동강에 버려졌으나, 역적의 시신에 손을 대면 삼족을 멸한다는 위협 때문에 그 누구도 시신에 손을 대지 못하였다. 이 때 의협심이 강한 엄흥도는 날이 어두워지자, 아들 3형제와 함께 미리 준비한 관을 지게에 지고 단종의 시신을 염습하여 영월 엄씨들의 선산인 동을지산(冬乙旨山: 현재 장릉)에 몰래 매장하였다.
그가 단종의 시신을 장사지내려 할 때 주위 사람들은 후환을 두려워하여 간곡히 말렸으나, 불의(不義)와 의(義)를 구별할 줄 알고 의협심이 강한 엄흥도는 “옳은 일을 하다가 그 어떠한 화를 당해도 나는 달게 받겠다.(爲善被禍吾所甘心)”라는 말을 남기고 단종의 시신을거두었다.
충신 엄흥도는 단종이 입고 있던 옷을 가지고 계룡산 동학사를 찾아가 생육신 김시습과 함께 그곳에다 단을 쌓고 초혼을 부르며 제사를 올린 후 종적을 감추어버렸다. 지금도 공주 동학사 숙모전에는 엄흥도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동강에 버려진 단종을 장사지낸 그의 후손들은 주위 사람들의 눈을 피하여 먼 곳으로 도망을 간 후 온갖 어려움과 고통을 견디면서 살아갔다.
삼족지멸의 위협 속에서도 단종의 시신을 장사지낸 엄흥도를 기리기 위하여 영조 2년(1726)에 청주에 정려각이 건립되었고, 영조19년(1743)에는 엄흥도에게 공조 참의 벼슬과 제물을 함께 내렸다.
삼족을 멸한다는 위협속에서도 올곧은 충의정신 하나로 단종을 장사지낸 충신이 세상을 떠난 후 나라에서는 그의 충성과 의로운 행동에 보답하기 위하여 큰 벼슬과 시호를 내렸다.
그러나 우리는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