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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
최세창
- 2104
- 2019-04-16 07:16:21
누가의 기사는 【32】“또 다른 두 행악자도 사형을 받게 되어 예수와 함께 끌려 가니라”로 시작된다.
누가만이 이 이야기의 첫머리에 “두 행악자”인 사형수를 언급하였다. 이 구절은 예수께서 예언하신바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기록된바 저는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 한 말이 내게 이루어져야 하리니 내게 관한 일이 이루어 감이니라”(22:37)의 성취이다.
“두 행악자”에 대해서는 23:39-43에 자세하게 묘사되었다.
두 행악자와 같은 취급을 받으면서 끌려가신 예수님은 결국 그들과 같이 십자가에 못박히셨다. 이 사실에 대해, 누가는 【33】“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라고 하였다.
“해골이라 하는 곳”은 아람어 골골타(golgoltha)의 헬라어 음역인 골고다(Γολγοθά: 막 15:22, 마 27:33, 요 19:17)의 번역이다. “해골”이라는 뜻을 가진 헬라어는 크라니온(κρανίον)인데 벌게이트 역(Vulgate: Jerome의 라틴역 성경)에서는 칼바리아(Calvaria. 참조: 칼보리, Calvary)로 번역되었다.
{그 지명은 그 언덕이 해골처럼 생겼기 때문에 유래된 것이다.…골고다(해골)의 위치에 관해서는 비아 돌로로사의 종점이며, 현재의 성안인 성묘교회(The Church of Holy Spulcher)가 있는 곳으로 믿어 왔으나(W. W. Wessel, E. Schweizer), 근대에 와서는 다메섹문 밖에 있는 ‘골든 갈보리’(The Gordon’s Calvary)로 불리는 언덕이 보다 유력하게 지목된다.}(막 15:22의 주석).
누가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시는 사실을 극도로 자제하여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라고 기록하였다.
{십자가의 모양에는 T형, +형, X형이 있었다. 이 십자가형은 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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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애굽, 수리아, 파사, 헬라, 로마 등에서 행해진 보편적 사형법이었다. 중국에도 십자가형이 있었으나 못을 박지는 않고 매어 달기만 하였다. 십자가는 처음부터 조립하는 수도 있었고, 분해해서 운반하는 수도 있었다. 로마법에는 십자가의 일부, 또는 전부를 사형수가 짊어지고 형장까지 가게 되어 있었다. 십자가의 크기는 보통 9~12척이었고, 처형은 죄수를 벌거벗겨 형틀 위에 눕혀 놓고는 양손과 포개진 두 발등에 못박은 후에 세우는 방법과 처음부터 세워진 십자가에 못박는 방법이 있었다. 발등에 못을 박는 대신에 비끄러매기도 하였다.
십자가형은 키케로(Cicero: 주전 106-43. 로마의 정치가이며 철학자.)의 말대로, “인간이 내릴 수 있는 형벌 중에 가장 잔인하고 무시무시한 형벌”이므로, 로마에서는 자국 시민에게는 행하지 않고 식민지인이나 노예들 또는 반란자나 강도 같은 극악한 죄수에게만 행하였다. 십자가에 못박힌 죄수는 빨리 죽지 않았다. 7일간이나 못박힌 채 매달려 있는 죄수도 있었다고 하나, 대개는 3일 정도 매달려 있으면 미칠 것 같은-실제로 미쳐 버린 죄수도 있었다고 한다-극도의 고통과 주림으로 인해 탈진하여 죽고 말았다. 그 고통과 치욕이 오죽했으면, “십자가에 달린 사람은 천 가지의 죽음으로 죽는다.”라고 하는 말이 다 있을 정도이었다. 때로는 죄수에게 베풀어진 자비로서 큰 망치로 다리를 쳐서 속히 죽도록 하는 법이 있었다고 한다. 죄수가 죽으면 매장해 주기도 했지만, 그대로 십자가에 방치하여 뭇사람에 대한 경고와 새들의 밥이 되게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막 15:24의 주석).
“두 행악자”는 예수님과 함께 좌‧우편에 못박혔다(요 19:18).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강도들 한가운데서 행악자들과 같은 취급을 받아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보다 더 억울하고 부당한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 섭리라는 면에서 볼 때, 행악자들 한가운데서 운명하시는 것이야말로 가장 영예로운 죽음이 아닐 수 없다.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의 기도에 대해, 누가는 【34】“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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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니이다 하시더라 저희가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 쌔”라고 하였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ὁ δὲ ’Ιησούς ἔλεγεν, Πατηρ, ἄφες αὐτοίς, οὐ γὰρ οἴδασιν τί ποιούσιν.)는 א*, c, A, C, Db, L, X, Δ, Π, Ψ 사본 등을 따른 것이고; p75, אavid, B, D*, W, Θ 사본 등에는 없다. 이레니우스(Irenaeus), 클레멘트(Clement), 오리겐(Origen), 유세비우스(Eusebius) 이하 초대 교부들도 인용한 것① 으로 미루어 전자를 취해야 할 것이다.
저희는 일차적으로는 예수님을 못박은 사람들이다.
십자가상의 첫 말씀②인 이 예수님의 기도는 이사야 53:12의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의 성취이다. 또, 마태복음 5:44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의 실천이다.
“저희가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 쌔”는 시편 22:18의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뽑나이다”의 성취이다.
그들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송두리째 주시는 예수님과 그 밑에서 멸망이나 구원은 아랑곳없이 헌옷 나부랭이나 더 갖기 위해 제비를 뽑는 그들의 모습은 얼마나 기막힌 대조인가! 인간 구원을 위한 예수님의 십자가의 치욕과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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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에는 저자의 이름만 밝혔고, 같은 견해를 가진 학자들이 네 명 이하일 경우에는 본문의 괄호 속에 이름만 밝혔음.
1) K. Aland, et al., ed.
2) 십자가상의 말씀의 순서: (1)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2)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3)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보라 네 어머니라(요 19:26-27). (4) 엘로이 엘로이 라마 사박다니(막 15:34. 마 27:46: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5) 내가 목마르다(요 19:28). (6) 다 이루었다(요 19:30). (7)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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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아랑곳없이 자기 위주의 복만을 구하는 현대 교인들도 그들보다 나을 것이 없다.
그 주위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의 반응에 대해, 누가는 【35】“백성은 서서 구경하며 관원들도 비웃어 가로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의 택하신 자 그리스도여든 자기도 구원할지어다 하고”라고 하였다.
“백성은 서서 구경하며 ‘관원들’(아르콘테스, ἄρχοντες: ‘의회원들’, ‘지도자들’)도 비웃어”는, 시편 22:6-7의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훼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 나를 보는 자는 다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이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의 성취이다.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는 비웃는 그들이 예수께서 사람들을 위해 행하신 신유와 축귀 등의 기사와 이적이 사실이었음을 인정하고 있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예수님의 그런 능력을 사단에게서 비롯된 것으로 여긴 것이다(11:15, 막 3:22). 그들은 이제 예수님이 사단의 도움이 다해서 자기 한 몸조차 구원할 수 없다고 여겨, “만일 하나님의 택하신 자 그리스도여든 자기도 구원할지어다”라고 조롱하였다.
예수님을 향해 비웃고 조롱하는 짓에는 군병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 사실에 대해, 누가는 【36】군병들도 희롱하면서 나아 와 신 포도주를 주며“라고 하였다.
예수님의 옷을 나눠 가진 로마 군인들은 예수님을 조롱하면서 신 포도주를 주었다. 이것은 시편 69:21의 “저희가 쓸개를 나의 식물로 주며 갈할 때에 초로 마시웠사오니”의 성취이다.
로마 군인들이 희롱한 말에 대해, 누가는 【37】“가로되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어든 네가 너를 구원하라 하더라”라고 하였다.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어든 네가 너를 구원하라”의 “유대인의 왕”은 23:3의 주석을 보라.
끝으로, 누가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붙여진 패에 대해, 【38】“그의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이라 쓴 패가 있더라”라고 하였다.
“이는 유대인의 왕이라 쓴 패”는 모욕과 희롱의 절정이다(비교: 막 15:26, 마 27:37, 요 19:19-21).
출처: 최세창, 누가복음(서울: 글벗사, 2003, 1판 1쇄), pp. 75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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