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려주일과 역설적 진리( 4. 14일 주일낮 설교문)

오세영
  • 2018
  • 2019-04-12 09:02:28
성경본문 : 마 21:1-11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을 마지막으로 입성 하실 때는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선포하시는 순간이었습니다.
비록 주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고 들어가셨지만 많은 사람들이 겉옷을 펴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환영하게 되었습니다. 종려주일에 일어난 이러한 일들을 생각해 보면 대단히 역설적(paradox)인 것이 분명합니다.
왕으로 오신 것을 선포하는 그날에 뜻밖에도 나귀 새끼를 타시고 종려나무 가지로 환영을 받으며 예루살렘을 입성하시기 때문입니다.
웅장하고 화려한 왕의 입성을 기대할만 하기도 할 텐데 초라한 행렬을 지으며 입성하시게 되었기에 역설적이라는 말씀입니다.
역설적인 것의 특징은 예상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전달이 의미 심장 합니다.
또한 역설적인 행위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예수님의 행차는 분명 역설적인 행위 입니다.
왕의 행렬을 너무도 초라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이러한 역설적 행위는 종려주일을 맞아 더욱 가슴에 와 닿는 것이며 그 감동이 진하게 지속적으로 남는 다는 것입니다.
멍에를 맨 나귀새끼기에 구속된 종의 모습입니다.
왕 이시면서도 이렇게 푸대접 받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역설적 행위에 당시에는 비웃는 무리들도 있고 유치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그러한 모습을 통하여 보여주는 진리는 강력한 것이어서 역설적 진한 감동이 주어지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역설적인 진리를 보여주시기 위하여 어린아이 같은 모습으로 입성하면서도 왕의 면모를 보여 주어야 했습니다.

예수님의 역설적 행위는 종려주일에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마 20:28 에서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하신 이 말씀도 역설 자체 입니다.
주님은 태어나실 때부터 마굿간 구유에 태어나셔서 역설적인 탄생을 하셨습니다.
나사렛 마을에서 30여 년을 사신 것도 역설적인 삶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역설의 극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는 것이며 높아지려하면 낮아지고, 주면 넘치도록 안겨준다는 것입니다. 잔치집에 가면 상좌에 앉지 말고 말석에 가서 앉으라 하시기도 하셔서 역시 역설입니다.
이 땅에서 웃는 자는 하늘에서 울게 될 것이고 우는 자는 웃게 될 것이라니 얼마나 역설입니까! 오른뺨을 치면 왼뺨을 돌려대라고 하셨고 오리를 가자하면 십리를 동행하며 속옷을 달라하면 겉옷까지 주라 하셨고 역설의 진리 중 황금률이라 하는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먼저 남을 대접하라” 하셔서 역설의 진리에 종지부를 찍기도 하셨습니다.
역설의 진리는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무지 알아듣기 어려운 가르침 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행하기도 어렵습니다.
기독교는 역설적 진리로 가득 차 있어서 누구라도 진리가운데 서고자 한다면 역설적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의 제자가 되고자 하는 자들에게 역설적으로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아니하면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 하셔서 주님의 제자가 되어서 입신양명을 꿈꾸는 그들에게 역설적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제자들은 역설적 진리 가운데 서지 못하였기에 서로 높은 자리에 오르려 했습니다.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셨다는 주님이 힘없이 붙잡히시고 매를 맞으며 조롱을 당하는 처지가 되어 죽음의 언덕을 오르셨던 것입니다. 열 두 영이나 더 되는 천사를 동원하여 잡으려는 군사들을 물리칠 수 있었지만 말없이 끌려가 그는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참으로 허무 하게 죽으신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쓰여진 명패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죽음 입니다.
우리를 살리고 구원하시려는 분이 힘없이 죽는 다는 것이 얼마나 역설적인 것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로 하여금 사순절을 지키며 그 고난과 죽음을 깊이 알도록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 역설적인 십자가의 구원은 아무리 완악한 사람이라 하여도 녹아지고 회개하게 하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역설적인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은 우리로 하여금 삶을 사는 동안 평생을 그리스도께 매어 있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역설적 진리에 눈을 떠야 합니다.
역설적 진리는 우리의 본성대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눈은 눈, 이는 이로 갚아주는 율법 수준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님니다.
원수가 주릴 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라 하셨습니다.
우리의 본성은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이지만 역설적 진리는 악을 선으로 갚는 것입니다.
역설적 진리를 추구해야 만이 주님의 말씀을 지키게 됩니다.
역설적 진리에 눈을 뜨고 실천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부인해야 합니다.
자기부정이 있어야 인간의 본성대로 살지 않습니다.
오늘 종려주일을 맞아 이 역설적 진리를 굳건히 잡도록 합시다.
죽을 것 같지만 사는 길이 열립니다.
손해 보는 것 같지만 100배로 얻습니다.
주님께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막10:29~30) 하셨습니다.
주님은 역설적 진리를 우리에게 보여 주셔서 사람의 본성대로 사는 것은 생명에 이르지 못함을 보여 주셨습니다.
역시 역설적으로 좁은 문과 그 길을 가는 것이 생명에 이르는 길입니다.

역설의 진리를 굳건히 잡아야 합니다.
이 뜻 깊은 종려주일에 역설적 기독교의 진리를 알게 된다면 성공적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역설적인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본성대로 사는 것은 영원히 죽는 길입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이고 죽으면 30배 60배 100배로 열매 맺는 것처럼 역설적 진리를 추구 할 때 하나님 자녀다운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우리가 역설적 진리로 산다면 과연 얼마나 멋있겠습니까!
화 날 때 참고 날 모욕하는 자를 축복하고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니 과연 놀랍습니다.
또한 그의 겸손은 너무도 아름다울 것입니다.

역설적 삶을 사시고 부활하셔서 하늘 보좌 우편에 앉으신 우리 주님의 삶이 결코 인간의 본성대로 살지 않았던 것처럼 이제 우리가 역설적 삶을 실천하여 그리스도인 다운 모습을 보일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전 이미영 2019-04-12 인천 서구에 있는 감리교단의 한 교회는
다음 함창석 2019-04-12 감리회 전도(傳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