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삶(2019 부활절 주일낮 설교 요약)

오세영
  • 1729
  • 2019-04-19 09:40:35
성경: 롬 6:3-5
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사순절의 긴 터널을 빠져나와 찬란한 빛이 쏟아지는 시간을 맞이하는 부활절 아침 입니다.
어제 까지 무겁고 울적하던 기분마저 부활절 아침에는 더욱 환하게 피어있는 꽃처럼 화사한 마음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누구나 사순절을 지내는 동안 그리고 마지막 고난 주간을 보내면서는 그리스도의 고난이 가슴속 까지 전해 오기에 무거운 멍에를 벗고 싶듯 부활의 아침을 기다리게 됩니다.
그 부활을 맞이한 오늘 새로운 세계가 펼쳐져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어둠과 고통 그리고 죽음이 지나가고 새 생명으로 약동하는 부활의 힘이 마침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과 함께 잘 어우러지고 있습니다.
오늘 부활의 영광과 면류관은 고난의 시간과 죽음이 있었기에 얻어진 소중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십자가의 죽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이 없었다면 부활의 주님을 찬양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긴 십자가의 여정을 지나서 부활의 자리에 다다른 것입니다.

오늘 로마서 말씀은 이러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우리에게 동일하게 일어나는 것임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본 받아 그와 연합한 자가 되어 우리의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은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죽은 자가 될 때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늘 아버지는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된 자를 그리스도를 살리심과 같이 다시 살리신다는 것입니다.
터널을 통과한 사람만이 빛의 아름다움과 영광을 노래 할 수 있는 것처럼 죽음에 연합한 사람이 부활에 연합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영광을 맛 보려면 먼저 죽음을 맛 보아야 합니다.
죽음 없이 부활을 말 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죽어야 부활에 참여하게 되는 것은 주님이 몸소 보이신 진리 입니다.
부활을 노래하기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죽어지는 자가 먼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이미 죽은 자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한 사실을 믿고 죽고자 하는 이들을 주님은 살리시게 됩니다.

4절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신 말씀을 생각해 보면 우리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려 부활의 영광에 참여 시킨 것은 부활의 새 생명으로 행하게 하려하심 입니다.

우리가 이 부활절에 꼭 기억해야 할 것은 부활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죽음이 목표가 아니기에 그리스도 안에서 죽어지면 주님은 반드시 살려 내는 분입니다.
그때 우리는 부활의 삶을 살게 됩니다.
부활의 삶은 죽음을 이긴 것처럼 권세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누구나 부활의 삶을 사는 것이기에 그리스도의 권세가 주어지게 됩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와 함께 행하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삶은 주님께서 열어 놓으신 놀라운 세계 입니다.
부활의 삶은 주기도문에서 가르쳐 주신 것 처럼 저 하늘의 천국이 이 땅에 임한 것과 같은 삶입니다.
부활의 삶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힘이 있는지 세상이 감당 할 수 없습니다.
기근이나 적신이나 곤고나 세상의 모든 풍파가 결코 그를 주저앉히지 못합니다.
그는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능치 못함이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세상의 어떤 유혹도 그를 흔들지 못합니다.
그는 죽음을 거쳐 부활의 영광에 이르렀기에 두려움이 없습니다.
세상 무엇보다도 사랑스러운 주님의 숨결을 느낌니다.
그러기에 외롭지 않고 고독하지도 않습니다.
세상 가운데 홀로 버려진 듯 하여도 실망하지 않습니다.
그의 담대함은 대장부와 같고 뱀과 전갈을 밟으며 다스리고 정복하는 권세가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그리스도와의 동행 속에서 오른 손이 한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할 수 있습니다.
원수를 위해 기도 할 수 있고 결코 악을 악으로 갚지 않습니다.
그는 주님을 뜨겁게 사랑함으로 악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는 결코 자신을 위해 살지 않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길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삶은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이기에 말씀드린 상기(上記)의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부활의 삶을 사는 이들은 먼저 철저히 자신이 죽었던 시간이 있었기에 더 이상 죽음의 일에 동참하거나 타락하지 않습니다. 옛 생활의 더러움에 빠지지 않습니다.
그에게 주어진 영광된 부활의 삶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날마다 깨닫고 있습니다.

부활의 삶은 새 언약의 내용이며 주께서 약속하신 풍성한 삶의 본질입니다.
부활의 삶은 그리스도와 연합된 삶이기 때문에 줄기에 붙어있는 포도나무 가지가 풍성한 열매를 맺는 것과 같이 풍성한 삶으로 나아갑니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는 주님의 말씀 그대로 입니다.

부활의 삶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죽은자 가운데 다시 살아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날마다 죽는다 하였습니다.
날마다 죽어지는 사람이 날마다 부활의 삶을 살게 됩니다.
한 번 은혜 받고 한 번 죽어지는 것으로 평생 은혜 가운데 살고 평생 부활의 삶이 보장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기에 주님께서는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어야 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죽은 것 같은데 다시 살아있는 자신을 보며 우리는 애통해 하는 날들이 많이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의 처절한 고통과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을 본 받아 자신을 철저히 십자가에 못 박는 이들이 부활의 삶을 살게 됩니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게 될 것이라는 말씀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날마다 죽고자 하는 세계에 눈을 여는 이들이 복이 있습니다.
그는 마침내 십자가에 그의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을 못 박게 될 것이어서 주님이 그를 다시 살려 부활의 큰 권세로 세상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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