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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쫓기는 사람과, 부름 받은 사람...
오재영
- 1606
- 2019-04-25 22:19:19
새롭게 등장한 어느 신도시지역에 장년 200-300여명이 모이는 교회에 젊은 목회자가 부임하여 불과 수년 만에 1천여 명의 비약적인 부흥을 이룬 목사가 있었다. 그런데 그가 아직 한창 사역할 젊은 나이임에도 과로사(過勞死)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동안 몇 년 동안 을 주변의 많은 이들로부터 경이의 눈빛으로 칭송을 받으며, 그를 아는 그의 동창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이들에게 열정과 꿈, 교회가 성장하는 것에 목숨을 걸었는데...
대부분의 모든 교회가 그러하듯이 그 교회도 갑작스러운 신도시의 변화와 함께 성장의 과정에서 이전부터 교회를 섬겨온 연로한 기존 신자를 비롯한 장로들과의 잦은 갈등으로 남이모르는 고통을 받으면서도 그는 자신이 목회하는 교회가 성장할 수만 있다면 그 무엇이든 배우고자하였으며, 기존의 성도들이 그 일을 반대하여도 개의치 않고 자신의 목회현장에 그것들을 도입하고 실천하기위하여 혼신의 힘을 다하였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가 갑작스런 과로사로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 그와 함께 심방에 동행했던 부교역자들은 보통목사와 다른 그의 이상한 모습을 자주 목격하였다. 어느 날은 시도 때도 없이 지금 자기 옆에 누가 있는 줄을 의식하지도 못한 채 중얼거리더라는 것이다. “그래, 두고 봐. 나는 반드시 해낼 거야, 다들 나를 지켜보라고 해. 내가 해내나 못 해내나. 꼭하고 말 거야......” 무엇인가 깊은 원망과 한에 서린 것 같은 그 표정으로 중얼거리고 다녔다. 그처럼 그가 한에 맺힌 듯 다짐하며 결의를 다지든 그가 중얼거렸던 그 말은 어디에서부터 비롯된 것이었을까?
그 나름대로의 집념어린 교회 사랑을 우리가 함부로 비난을 할 수는 없겠으나, 오늘에도 목회사역을 그이처럼 자신을 과시하듯 자기의 일로 여기고 그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을 함께 설득하여 뜻을 모을 생각은 없이 자신의 길을 막는 이로 여기고 오히려 증오에 가까운 모습으로 대하며 사랑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이들이 하는 일이 이루어지면 이러한 이들로부터 다른 이들에게 그리스도인다운 모습으로 본받을 점이 있을까? 이들의 열정의 출발점이 성경이 말씀하는 ‘거룩한 열정’(holy pathos)이나 ‘신적 정서’(神的情緖)와 동일하겠는가 하는 말이다.
인생의 삶을 어느 정도 이어온 사람들이라면, 더욱이 목회의 연한이 있는 정상적인 성직자들이라면 위와 같은 이의 인간적인 열정이나 정서가 주님을 향한 자신을 드린 열정과 동일할 수가 없다는 것은 모두가 안다. 오히려 수시로 주님의 뜻과 충돌하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빙자한 인본주의(人本主義)일 뿐 어느 개인의 성공주의에 의하여 자극된 정서일 뿐이다. 반짝인다고 모두가 금(金)이 아니 듯, 성경으로부터 출발하는 신적 정서는 그 무엇보다도 가장 먼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아는데서 부터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주변에 늘 쫓겨 다니며 사는 사람들...
누군가 그런 표현을 했다.
지금 영적리더의 위치에 있는 이들 중에 자신의 출생과 성장과정에서 부모나 주위로부터 인정과 칭찬, 관심에 굶주린 환경에서 자라난 이들이 많다고 한다. 그들은 그 결핍을 보상받기 위해 자신도 모르게 사람들의 박수갈채와 권력을 얻으려는, 집요한 탐욕을 키워가게 된다고... 그러나 성경에서 이미 말씀했지만 이러한 추구로 그가 이 땅에서 만족을 얻게 되는 경우는 없다. 오히려 외부세계에 집착하면 집착할수록 자신의 내면세계는 반대로 텅텅 비어 결핍된 채 로 남아 여전히 많은 이들의 눈에 쫓겨 다니는 사람으로 보이게 된다.
우리가 알고 느끼듯이, 이처럼 쫓겨 다니는 유형의 목사들일수록 가장 크고 유명한 최고 조직의 대표가 되려는 욕구 때문에 자기와 관계된 조직의 수많은 교역자와 평신도 지도자들을 혹사 시키고 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늘 힘들고 시달린다고 하소연을 하고 다닌다. 그러나 그가 이처럼 쫓겨 다니는 삶에서 진정 자유로워지고 싶다면 먼저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르는 성숙한 이들의 조언과 비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겸허하게 자기를 낮추고 지금까지 추구해왔던 것들을 포기하는 자기훈련의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그는 과거에 자기에게 마땅한 애정과 칭찬을 주지 않았던 이들을 용서할 수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결단은 쉽지 않다. 그러기에 그대로 소멸할 뿐 이러한 위기에서 벗어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주님으로부터 부름 받은 사람...
고든 맥도날드의 글에 이 땅에는 이처럼 두부류의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쫓겨 다니는’ 사람과 ‘부름 받은’ 사람으로... 누구나 본인이 쫓겨 다니는 이가 아닌, 부름 받은 사람으로 인정하지만, 어느 편인가? 현재의 삶을 파악하기 위하여 던지는 질문이 있다.
• 나는 누구를 기쁘게 하려하고 있는가?
• 나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무엇을 얻으려 하는가?
• 나의 경쟁상대는 지금 누구인가?
• 내가 회피하는 것은 무엇인가?
• 위해서 목숨까지라도 바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 나의 친구들은 누구인가?
• 내게 삶의 책임을 물을 궁극적 상전은 누구인가?
• 자신이 선하다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는가?
• 나는 다른 사람들 보기에 어떤 면에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나?
• 나는 지금 죽음이라는 주제에 대해 생각하며 사는가?
많은 이들이 염려하는 시선을 회피하면서 여전히 쫓기는 삶에 노심초사하는 이들은 하루속히 부름 받은 본래의 자리에 돌아가기를 기도드린다. 그것은 단순히 본인만의 불행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