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과 나의 관계(주일오전 요약설교문 4.29)

오세영
  • 1776
  • 2019-05-02 16:16:24
성경: 막12:31(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 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큰(첫) 계명을 일러 주셨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마음과- 목숨까지 사랑하라는 것과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새 계명이며 율법과 선지자의 대 강령(요약)이라 하시기도 했습니다.
지극히 작은 계명을 어겨도 천국에서 지극히 작은 자가 된다고 하셨는데 이 큰 계명을 어기면 어찌 될 런지 종종 이 말씀 앞에서 두려움을 느낍니다.

저를 포함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참 담대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이 말씀이 항상 우리 앞에 놓여 있음에도 개의치 않고 때론 무시하면서 믿음의 길을 가기 때문입니다.
이 불가능 할 것 같은 말씀 앞에서도 고민하지 않고 계속 길을 가는 일은 참 무책임하기도 하고 말씀을 경홀히 여기는 태도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할 수 있을까요!

우선 이 의미부터 명확히 해야 할 것 같습니다.
C.S 루이스 교수의 고백에서 우리는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하여 탐탁하게 생각지 않음을 고백합니다. 그의 습관 언행 태도를 비롯하여 생각과 마음 등이 자신을 실망 시킬 때가 많아 자아에 대하여 실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에 대하여 그는 충분히 이해하며 자신을 용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 속에서 이웃 사랑의 길을 보게 됩니다.
이웃 사랑의 길은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에 있음을 보게 됩니다.
즉 나 자신의 모습이 싫지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처럼 이웃에 대하여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에 대하여 불만이 있어도 자신을 받아들이고 있고 또한 이해 받고 싶고 용서 받고 싶어 합니다.
여기에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 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이러한 마음을 역지사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문자적으로 이웃 사랑을 해석해야만 한다면 누구나 정상적 삶을 살지 못합니다.
길을 가다 노숙인을 만난다면 그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하니 가던 길을 멈추고 그를 집으로 데려가 목욕도 시켜주고 밥도 주고 용돈 뿐 아니라 직장까지 잡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가능 할 까요?
그러므로 문자적으로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생각 할 수 없습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가던 길을 멈추고 기름으로 싸매며 자신의 말에 태워 여관에 데려다 주고 치료비를 지불하고 자신의 길을 갔습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여관을 들려 치료비가 더 들어갔다면 주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도 대단한 것이지만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과 사랑하라는 문자적 의미와는 역시 거리가 먼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웃 사랑의 길은 상대가 나의 입장을 이해해주고 용서해 주기를 바라듯 역지사지로 이해하고 용납해 주는 것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이웃에 대하여 같은 감정이나 친밀감으로 사랑해야 한다면 불가능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육체를 가진 우리에게 이러한 한계가 분명히 있음에도 우리는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신 말씀에 더욱 충실해야 합니다. 그래서 마침내 손양원 목사님과 같은 열매도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구약성서에도 네 이웃을 사랑하라 하셨고 원수를 갚지 말라 하였습니다.
신약에서는 네 원수가 주리고 목마를 때 먹을 것을 주고 마실 물을 주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지나 원수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시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말씀은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신 말씀과 일치되는 말씀이 아닙니까?

주님께서 누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냐 하시며 누구든지 하늘 하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다(마12:50)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두가 한 형제요 자매이기에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신 말씀이 무리한 말씀이 아닙니다.

신약시대는 저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였기에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 나라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 안에서 사는 사람이라면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오직 능력에 있기 때문입니다..(고전4:20)

네 이웃을 네 자신을 사랑함과 같이 사랑하라신 분이 바로 주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신대로 이웃인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해 죽으면 그 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정말 주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깨닫게 됩니다.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로만 하신 예수님이 아니라 몸소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 주심으로 우리에 대한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나를 이해해 주시고 용서해 주시는 넉넉한 주님의 사랑을 확신하며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주님이 주시는 풍성한 은혜로 충만하여 나도 이웃을 내 자신을 사랑하듯 사랑하는 길로 가야 합니다.

현대 의학에서 우리 몸에 있는 좋은 호르몬들이 계속 발견되고 있습니다.
엔돌핀이 한 동안 화제 였는데 요즘 엔돌핀보다 4.000배 강한 다이돌핀이라는 호르몬을 발견했습니다.
몸에 유익한 호르몬은 도파민, 쎄라토닌, 옥시토닌 등과 같은 여러 호르몬이 있습니다.
이러한 호르몬은 사랑할 때 많이 나오게 됩니다.
반대로 화를 내거나 슬퍼 할 때 몸에 해를 주는 아드레나린과 같은 호르몬이 나와 몸을 상하게 합니다.
몇 년 전 우리 교회 건축 할 때 3개월 정도 업자의 사정으로 세워 둘 때가 있었습니다.
전 그 때 매우 염려를 많이 했기에 위 염증을 앓게 되었습니다.
새벽이면 위에서 느끼는 통증이 참 괴로운 것이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전하면서 저 자신이 확신 할 수 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염려 괴로움 미움 슬픔 낙심 등은 우리 몸에 치명적인 독입니다.
반면 기쁨 감사 사랑 찬송과 기도생활은 우리 몸에 좋은 호르몬을 분비케하여 몸에 보약과 같은 것입니다.
이웃 사랑은 나를 위해서 하신 말씀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웃을 미워하고 싫어하면 내 몸에 독을 주입하는 것입니다.
미움과 원망을 갖고 살면 각종 질병에 시달리게 되는 이유가 호르몬의 영향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몸의 원리를 통하여서라도 이웃사랑에 눈을 열고 하나씩 실천해 가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입니다.
그러므로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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