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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회 미전(米廛)
함창석
- 1132
- 2019-05-02 06:35:39
산돌 함창석 장로
米는 벼의 낱알을 그린 것으로 ‘쌀’이나 ‘곡식의 낱알’이라는 뜻이 있다. 마치 木(나무 목)자에 점이 찍힌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十(열 십)자 주위로 낱알이 흩어져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 것이다. 갑골문에는 긴 막대기 주위로 6개의 낱알이 흩어져 있는데, 여기서 긴 막대기는 낱알을 펼쳐놓는 도구이다.
지금도 벼를 수확하면 탈곡한 낱알을 햇볕에 말리는데, 이때 낱알이 잘 건조되도록 펼치는 도구가 표현된 것이다. 벼의 낱알을 그린 것이기 때문에 부수로 쓰일 때는 주로 ‘쌀’이나 ‘곡식’ 또는 곡식을 가공한 제품이라는 뜻을 전달하게 된다. 보리ㆍ수수ㆍ조 따위에 대(對)하여 쌀을 米(미)자로 나타내었다.
廛은 엄호(广 집)部와 里(리 마을)와 八(팔 나눔)과 土(토 땅)의 합자로 마을의 땅을 나누어 집을 지음이며 택지의 뜻이다. 前은 뜻을 나타내는 선칼도방(刂(=刀) 칼, 베다, 자르다)部와 음을 나타내는 歬(전 舟(주 배→탈것)와 止(지 발의 모양→나아가는 일))으로 이루어진다. 前은 廛의 군두목식 표기이다.
廛과 같은 의미인 前은 ‘앞’이나 ‘먼저’, ‘앞서나가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月(달 월)자와 刀(칼 도)자와 함께 상단에는 머리 모양이 결합한 것이다. 그런데 前자의 금문을 보면 舟(배 주)자와 止(발 지)자가 결합한 歬(앞 전)자가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배가)앞으로 가다’라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미전(米廛)은 쌀과 각종 곡식을 팔던 가게이다. 상(上)미전은 품질이 좋은 쌀을 파는 점방(店房)으로 예전에 서울 종로(鍾路) 서쪽에 있던 싸전이고 하(下)미전은 품질이 상미전보다 떨어지는 쌀을 파는 점방(店房)으로 서울 동대문(東大門) 안 종로(鐘路) 4가 네거리 근처(近處)에 있던 싸전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가장 오래된 볍씨는 중국 화북지방으로 1만 500년 전으로 기록돼 왔는데, 그보다 3000여년이나 앞선 소로리 볍씨가 발견됨으로써 전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농경(農耕)의 시작은 인류가 탄생된 이후 불(火)의 발견과 함께 가장 위대한 발명이라고 할 수 있다.
농경 중의 으뜸인 쌀(벼)의 시작은 언제부터 시작하여 발전해 왔을까?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전 세계의 많은 학자들이 연구와 고증을 계속 하고 있다. 그것은 세계 인구의 60%이상이 쌀(벼)을 주식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창산업단지 예정지 토탄층에서 발견된 볍씨는 고대볍씨임이 밝혀졌다.
1차 발굴은 구석기 문화층을 중심으로 조사가 이루어졌고, A지구 II 구역 토탄층 일부에 대해 발굴작업이 이뤄졌지만, 2차 발굴작업은 볍씨를 찾는 작업이라 대나무칼로 토탄층을 얇게 쪼개고 쪼개 수거된 토탄들을 물체질 정밀작업을 실시하여 고대벼 6톨과 유사벼 30톨을 찾아내는 성과를 올렸다.
출토된 볍씨는 서울대학교 AMS(방사선탄소연대측정) 연구실과 미국의 지오크론(Geochron Lab.)’연구실로 보내져, 1만 3000년~1만 5000년전의 절대 연대값을 얻어 '소로리 볍씨'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임이 판명됐다. 소로리 볍씨가 1만 5000년전 것으로 판명되자 학계에서 의문이 제기됐다.
1만 5000년전은 간빙기의 끝 무렵인데 아열대식물인 벼가 야생벼인지, 재배벼인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냉해실험을 통해 벼가 자랄 수 있는 온도를 실험한 결과, 벼가 자연상태에서 최저 발아온도가 섭씨 20도이나 실험결과 13도에서도 70%이상이 발아되어 생성되는 연구 결과를 얻게 되었다.
볍씨를 분석한 허문회(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서학수(영남대학교 교수), 박태식(작물시험장 박사), 조용구(충북대학교 교수) 등의 연구에 따라, 소로리 볍씨는 재배벼 특징을 갖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고, 여기에 따라 이융조(충북대학교 교수)는 재배벼 이전의 순화벼로 국내외 학계에 발표하였다.
2003년 10월 22일, 세계적 권위를 갖고 있는 영국 BBC 방송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가 소로리 유적에서 과학자들에 의해 발견되었다'라고 하는 타이틀로 보도하였으며, 인터넷판으로 다시 그 내용을 전 세계에 보도하여, 이제는 소로리 볍씨가 세계 최고(最古)의 볍씨인 것으로 공인받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