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계시의 책으로서 성서의 권위 를 회복함이 교회갱신의 길

현종서
  • 1594
  • 2019-05-01 06:16:34
현대신학이 인간 이성의 결과물에 맞추어가는 신학을 하고자 할 때 성경이 말하는 복음과 다른 복음을 말할 위험이 크다.

그 예가 다원주의를 말하는 신학이요, 포스트모던적 정치신학이요, 거짓과 우상숭배자, 독신자들과도 무조건평화를 말하는 신학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계시가 담긴 성서를 삼차원적인 세계관으로 보아 시간과 공간에 제한된 고대문서의 하나로 성경이 기록되던 당시 그들의 의식을 반영하는 원시적인 가르침임으로 현대과학과 철학(인간 이성의 산물)에 훈련된 현대인들이 성서의 기록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모순되므로 발전된 자연과학, 사회과학 자연과학,인문과학에 모순되지 않고 또는 그 결과물에 맞추어가는 신학, 달리 말하면 인간의 이성의 산물에 적응 또는 순응하여 철학화 또는 이념화한 신학을 성경의 가르침 위에 두자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철학을 성경위에 두자는 신학이요, 희랍철학사상을 히브리사상 위에 두자는 것이요,인간 이성을 하나님의 계시위에 두자는 것이다.

이러한 자세는 인간 이성에 지나친 신뢰를 두는 자세이나, 인간이성의 노력과 그 결과물인 이념을 따라 실천함으로 인간개조와 유토피아를 가져올 수 없는 것임을 세계 1,2차 대전을 겪으면서 인간이성에 대한 무한신뢰가 체험적으로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바 있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신학계는 현대 과학지식도 반영하면서 정통신학을 설명해 내려고 신정통주의 신학을 하면서 자유주의 신학과 정통주의 신학의 중도의 길을 걷고자 하였다. 그후에 철학계에서는 인간이성이외의 무엇이 인간의 행동을 지배하게 되느냐 물으면서, 프로이드의 성충동(프로이드)이 또는 무의식(칼 융)이 인간의 의식세계에 영향을 주고 그것이 행동으로 연결된다고 보았고 더 나아가 그런 심리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경제,정치적인 관점에서 인권존중이나 공평한 부의 분배, 계급없는 사회(맑시즘)에 인간 행복의 길이 있다는 등, 인간문제에 대한 이성의 새로운 해석과 해법이 계속 제시되면서 인간의 문화는 탈바꿈을 계속 시도하면서 굴러가고 있다.

그러나 성경의 근본적인 가르침인 창조,주관 섭리자시요, 전지 전능, 무소부재, 영생 생존의 하나님이시며 그분은 인간구원의 길을 마련하고 계시하시며 그 길을 따르므로 인간이 이상하는 행복을 준비하고 계시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지금이라도 자기가 자기 인생을 만들어가는 것이라고만 생각하는 착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뜻을 따름으로 피조물 인간본연의 길, 하나님과 더불어 가장 행복한 길을 가자는 것이다.

성경의 가르침은 인간이성이 그렇게 철대적 기능이나 기준이 되지 못함을 밝혀주는 데 아담이 범죄한 이후, 타락한 성품이 자손에 유전되어 인간은 날 때부터 죄성을 가지고 나게 되었다는 것이 원죄설이다. 개혁자들도 한결같이 인간은 한 사람의 예외 없이 전적인 타락하에 있어 스스로 구원받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고 보았다. 성경의 가르침을 재해석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웨슬리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전적으로 타락했다면 인간의 이성기능도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영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일반적 기능에 있어서도 그 인식능력은 동일한 영향하에 저하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성을 진리 탐구와 인식과 성취, 해설의 최고의 수단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 타락한 이성으로 최고의 진리를 탐구해 간 것의 최고봉이 일반 종교와 그 철학 수준인 것이다.

인조인간은 인간답게 다 만들어 놓았는 데 그속에 생명을 주입할 수 없다. 생명주입은 오직 창조자 하나님께서만 하실 수 있는 것이다. 거듭남은 하나님께서 살리는 영을 주입하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구원의 복음도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이다. 그게 가능하다면 수많은 종류의 복음이 생겼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만들어 주신 하나의 구원복음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복음을 믿는 길 그것이 유일한 인간 구원의 길 인 것이다.

현대신학이 자유주의 신학(인간이성을 최상의 도구로 알고 사용하는 이념화 신학)화 하여 일반인들이 알기 어려운 현대철학자나 자연과학자나 인문과학자나 사회과학자의 신이론을 소개하며 그것에 맞춘 새로운복음을 만들어내려한다. 그리고 그런 행동을 창조적인 것으로 보고 칭찬한다. 하지만, 그런 사상과 용어들을 정확히 알아 사용할 지라도 결국 그 속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함 없이 담아내야 복음선교적 현대신학일 것이다. 그러한 신학을 사도바울이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성경의 복음이 옛시대의 산물이니 현대인들이 이해 하도록 복음적 이론을 창조해 나가야 하겠다는 자세야 말로 사탄의 유혹을 따르는 자세이다.

타락한 인간성안에 있는 교만하고 주제 넘은 이성의 자기긍정이요 자존망대인 것이다. 구원의 복음은 인간의 창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물로써 인간의 피조물로 대치 불가능한 것이다. 우리 인생들은 숨어 있고 덜 밝혀진 계시적 진리를 성령의 감화와 감동과 조명을 통해 발견하여 일반 상식인들이 보다 더 잘 이해하도록 설명하고 타 전문인들이 복음을 깨달았다면 그들의 전문지식을 동원하여 깨달은 복음의 진리를 그들의 전문용어로 설명하도록 하게 한다. 그리고 그러한 원재료들을 활용하여 현대인들에게 보다 설득력있게 복음을 기독교적인 가치관과 세계관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 신학자들이 해야 할 몫인 것이다.



Institute of KMC Evangelical the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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