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교회의 생활(사도행전 2:42-43) (1-2)

최세창
  • 1330
  • 2019-05-13 18:57:28
【42】“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로 시작된다.
이 구절에 대해 예레미아스는 원시그리스도교의 예배가 서술되어 있다고 한다. 즉, (1) 사도들의 가르침, (2) 헌금(참조: 행 6:1), (3) 의식적(儀式的) 공동 식사, (4) 기도가 그것이다.①
이 견해를 반대하는 헤혠(E. Haenchen)은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고 있다. (ㄱ) 기도는 그리스도의 예배에 있어서 예배를 마무리짓는 역할만 하지는 않았다. (ㄴ) 사도행전 3:1에 의하면, 그리스도인들은 성전에서 유다인들의 공동체와 함께 기도를 드렸다. (ㄷ) 사도행전은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상 전체를 요약적으로 묘사하려고 노력하였다. 또한, 그는 사도의 가르침은 사도행전 4:48, 5:21, 33에 의하면, 의식적 공동 식사와 결부된 예배 때만 국한하여 베풀어진 것이 아니라, 성전에서도 행하여졌다는 점과 교제가 예배 때에 헌물을 드리는 것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일반적인 물품 및 금품을 모으고 나눠주고 하는 행위 전체를 포괄한다는 점과 떡을 떼는 것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공동 식사를 지칭하는 것이라는 점과 기도는 특히 유다교 공동체와 함께 드리는 것이었다는 점 등을 들고 있다.
두 학자의 견해를 종합해서 이해하는 것이 무난하다. 그 당시에 고정된 순서를 가진 정형화된 그리스도교 예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누가의 표현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의 집약인 교회 생활, 특히 일종의 예배를 묘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사도(아포스톨론, ἀποστόλων: 1:2의 주석을 보라.)의 가르침을 받아”의 “가르침”(디다케, διδαχῇ)은 주로 율법에 기록된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복음에 합당한 생활에 관한 교훈을 의미하는 것이다.
“서로 교제하며”의 “교제”는 코이노니아(κοινωνίᾳ)이며 {“파피루스에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에는 저자의 이름만 밝혔고, 같은 견해를 가진 학자들이 네 명 이하일 경우에는 본문의 괄호 속에 이름만 밝혔음.
1) in E. Haenchen. J. R. W. Stott도 예배로 해석한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쓴 고문에서는 ‘동업자’, ‘생의 동반자’, ‘결혼 계약’ 등으로 쓰였다”(A. T. Robertson). 또한, 이 낱말은 ‘공통적인 목적에 있어서 공통적인 관심과 참여가 내포된 개인들 사이의 관계’, ‘노동과 고통에 동정심을 가지고 동참하는 것’, ‘복음의 확장에 있어서의 밀접한 연합’(M. R. Vincent), ‘헌금’(롬 15:26, 히 13:16), ‘기독교인 상호간의 교제’, ‘그리스도 또는 성령과의 교통’, “소유를 나누는 것”(E. F. Scott) 등의 의미로도 사용되고 있다}(빌 1:5의 주석). 여기서는 주님과 그리스도인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교제를 의미하는 것이다.
“떡을 떼며”에 대해 (1) 보통 식사라는 설(J. A. Bengel, “Chrysostom ”②), (2) 성찬이라는 설,③ (3) 애찬이라는 설(H. Alford), (4) 성찬이 포함된 애찬이라는 설④ 등이 있다.
예수께서 최후의 만찬을 유월절 식사 중에 행하신 점과 초기의 성찬이 후기의 성찬식처럼 정형화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미루어 다수의 학자들의 견해인 (4)설을 취해야 할 것이다.
“기도”(프로슈카이스, προσευχαίς)는 하나님께 접근하는 모든 마음과 태도와 말과 행동을 포괄하는 말이다.
기도는 주님 안에서 하나님과 그리스도인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교제의 한 방편이기도 하다.
위의 네 가지 요소에 걸리는 “전혀 힘쓰노라”는 프로스카르테룬테스(προσκαρτερούντες)이며 ‘확고하게 지속하다’, ‘흔들림이 없이 계속하다’를 의미한다.
그 당시에 성령 충만한 사도들을 통해 놀라운 기사와 이적이 많이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2) in 이상근.
3) M. Henry, J. Wesley, A. C. Hervey, J. R. W. Stott, W. Neil.
4) G. E. Ladd, R. C. H. Lenski, S. D. Toussaint, 黑崎幸吉, 이상근, F. F. Bruce, The Book of Acts.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나타난 것에 대해, 누가는 【43】“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라고 하였다.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πάσῃ ψυχῇ φόβος)의 “두려움”(φόβος)은 초자연적 현상을 보게 된 인간의 본능적인 반응이다. 이 두려움은 단순한 공포가 아니라, 놀라움의 특성을 지닌 두려움을 의미한다. 또, 하나님께 대한 존경심과 공경심을 가진 두려움이며, 하나님 앞에 의무를 다하지 못할까 염려하는 두려움을 의미한다(막 4:41, 눅 1:65, 벧전 1:17).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의 기사들(테라타, τέρατα)과 표적들(세메이아, σημεία: ‘표적들’)은 성경에서 흔히 같이 나타나는데(출 7:3, 9, 신 4:43, 사 8:18, 단 6:27, 마 24:4, 행 2:19, 4:30, 5:12, 고후 5:12),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일반적으로 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직접적인 간섭으로 생기는 초지각적인 현상을 의미한다.
“기사와 표적”의 차이점은, 전자가 주로 자연계에 보이는 이적임에 비해, 후자는 인간계에 나타나는 이적이다. 전자가 인간의 눈길을 끄는 외적 면에 치우치는 반면에, 후자는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것 이상의 진리의 상징 등의 영적 면에 치우친다.
아무튼, 기사이든 표적(징조)이든 간에 최대의 것은 타락한 인간과 세계가 십자가에 못박혀 운명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는 사실이라 할 수 있다.
사도들의 설교와 가르침 그리고 기사와 이적의 권위는 성령의 충만함(행 2:4, 엡 5:18)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 영권을 갖추기 위해서는 기도와 말씀에 착념해야 하고, 말씀을 순종하는 생활을 해야 하는 것이다.

출처: 최세창, 사도행전(서울: 글벗사, 2005, 1판 1쇄), pp. 132-134.

필자의 사이트 newrema.com(T. 426-3051) 저서들: 신약 전체 주석/ Salvation Before Jesus Came/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다수의 논문들/ 설교집 27권/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이전 최세창 2019-05-13 부족한 것들...
다음 함창석 2019-05-13 감리회 노동(勞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