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낳으시고 기르시는 하나님(2019년 어버이주일 설교 요약)
오세영
- 1922
- 2019-05-09 22:03:24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오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없어라“
어버이날을 상징하는 어머니 마음이라는 노랫 말입니다.
짧은 가사지만 어머니라는 분이 자식을 낳으시고 기르시기까지의 수고와 희생을 잘 담아낸 가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어버이의 사랑과 수고 그리고 희생은 누구나 보았고 눈으로 확인 할 수 있어 실감이 나기도 하여 어버이에 대한 은혜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인생을 속 깊게 살지 않아도 부모님의 은혜를 인간은 잘 기억하고 보답하고자 노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여 우리의 영원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수고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수고에 대하여 생각한다는 것은 좀 생소하기도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슨 수고를 하신다는 말이냐 하고 반문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에 대한 수고가 얼마나 큰지 아버지를 이해하면 이해할수록 깨닫게 됩니다.
성경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 인간을 낳으셨다고 표현하십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은 우리를 자라게 하시는 분이니 기르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육신의 부모가 자식을 낳고 기르시는 것과 사실은 동일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진정 육신의 부모가 자식을 위해 수고하고 애쓰는 것과 같이 우리 인생들을 낳으셨기에 온전히 기르시기 위해 애쓰시는 분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애쓰심을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공감하게 될 것입니다.
철없는 인생들이 그 크신 하나님께 순종하고 충성하며 더 나아가 하나님 아버지를 진정으로 사랑하기 까지는 성장해야 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주님은 이러한 것들을 잘 아시기에 우리를 위해 얼마나 수고하고 애쓰시는지 모릅니다.
육신의 자녀를 키우는데 있어 손이 좀 덜 가는 자녀도 있고 더 많은 손이 필요한 자식도 있습니다.
그러나 보편적으로 영적 세계에서는 너무도 하나님을 모르기에 주님이 겪으시는 고초가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어리석고 강퍅하기까지 하며 듣는 것도 둔하고 눈도 어두워 하나님 아버지의 인내와 기다림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우리 중 누구라도 육신의 부모와는 비교 할 수 없는 사랑과 수고 그리고 인내로 양육하시고 있는 하나님을 알기만 한다면 그는 감격하게 될 것이고 기꺼이 순종하는 삶이 되도록 자신을 내어 드릴 것입니다.
육신의 부모가 얼마나 나를 기르기 위해 수고하고 애쓰셨는지 그것을 알기까지 많은 시간이 흘러야 하듯 하늘 아버지의 수고와 애쓰심을 알기 까지는 또 어떤 세월이 필요할 것이며 주님의 특별한 계시가 있어야 할 것인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탕자를 낳은 아버지는 그가 아버지의 사랑을 알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함을 아셨습니다.
탕자가 무리한 요구를 하고 집을 나가고 재산을 허랑방탕하게 탕진하고 거지가 되고 병든 몸이 되어 돌아오기까지 기다려야 하고 인내해야 함을 알고 있기에 탕자를 무한한 사랑으로 품어 주신 것입니다.
탕자를 사람 되게 만들었던 아버지의 사랑은 너무도 놀라운 모습입니다.
그 아버지는 재산을 내어주고 아들을 기다리는 고독과 아픔을 안고 수 많은 세월을 기다렸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아들을 만드는 길이었기에 그 아버지는 모든 시간을 묵묵히 기다리며 관대함을 잃치 않았습니다.
주님은 우리 인간을 너무도 잘 아십니다.
우리를 기르시는 과정이 얼마나 고달픈 시간인지 잘 아십니다.
아브라함 야곱 요셉 모세 다윗 등 그 어떤 사람도 탕자의 아버지와 같은 심정으로 양육되었습니다.
탕자와 성서의 인물들을 기다리셨던 것처럼 똑같이 우리를 기다리시는 하나님 아버지 이십니다.
하늘 아버지는 이렇게 우리를 기르시는 분입니다.
어느 추운 겨울 선교사 부부가 자동차를 타고 다리를 건너갑니다.
그 때 다리 아래서 아이 우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자동차에서 내려 다리 아래로 내려서니 한 엄마가 옷을 다 벗고 우는 아이를 몇 겹으로 감싸고 품에 꼭 안은 채 죽어 있었습니다.
선교사 부부는 아직 살아있는 아이를 데리고 미국으로 얼마 후 가게 되었고 죽은 엄마는 다리 옆 양지 바른 곳에 묻어 주었습니다.
미국에 간 아이는 피부색이 다른 동양인의 서러움을 겪으며 자라는 과정에서 그만 탈선하게 됩니다.
부모를 원망합니다. 어느 해 선교사 부부는 이제 청소년이 된 문제아 아들을 데리고 한국으로 오게 됩니다.
그리고 그 다리를 찾아 무덤 앞에 세웠습니다.
청소년이 된 아이는 영문을 몰라 하는데 그 겨울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아이의 눈에는 눈물이 흘렀고 이내 통곡으로 변하게 됩니다.
그리고 추운 날씨에 찾아갔는데 옷을 하나씩 벗어 무덤을 덮으며 엄마를 부릅니다.
“엄마 얼마나 그 때 추웠어요!” 추위도 잊고 한 없이 울던 소년은 양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돌아와 전혀 새사람으로 자라나 마침내 훌륭한 선교사가 되어 헌신하게 됩니다.
오늘 어버이 주일을 맞아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기다림 그리고 우리를 기다리시며 겪으신 마음의 고초와 수고를 꼭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내가 너를 낳고 인내하며 기다린 수고가 네 육신의 부모와 비교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심을 알아야 합니다.
부모의 마음에 대못을 박는 자식들이 많치만 대부분의 인생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에 대못을 박습니다.
주님을 십자가에 두 번 못 박는 자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무지함과 완악함, 죄악 가운데 끌려가는 삶이 바로 그런 결과를 가져 오는 것입니다.
자식을 살리기 위해 여인의 부끄러움도 개의치 않았던 엄마, 그리고 추위를 견디며 죽어갔던 엄마, 그 엄마보다 하늘 아버지의 사랑이 부족한 것이겠습니까!
인간세계에서 벌어지는 그 어떤 미담이나 감동적 사랑이야기도 독생자를 십자가에 바친 사랑과 견줄 수 없고, 하나님의 사랑은 그 십자가에만 머물렀던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시간에도 변함없이 흐르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이러한 사랑으로 우리를 지금 기르시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성경과 성령님의 인도를 주의 깊게 들어야 합니다.
주님은 하나님을 알기에 너무도 미련한 우리에게 그 분을 알려 주시기 위해 지금도 노심초사 하십니다.
마치 자기를 위해 죽은 엄마의 이야기를 알 수 있어야 하듯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수고 그 애쓰심을 알아야 합니다.
나를 위한 하나님의 기다림은 그 자체가 아픔이고 수고이며 고통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몰라주면 답답하듯 어리석은 우리 인생들에 대한 아버지의 마음을 여름날의 생수처럼 시원하게 해 줄 수 있는 자녀들이 되도록 더욱 힘써 주님을 알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