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 좁은 길

도현종
  • 1259
  • 2019-05-07 19:06:18
예수 사랑하는 목적외에는 방법이없다. 그분의 인도하심에 의하여 제대로 가야할 좁은 길이다. 인기가 없으면 없어지는 팬이아니다.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를 소원한다. 좁은길이 행복이다.

사마천은 이렇게 말하였다.
'소매가 긴 사람은 간교한 춤을 잘추고 돈이 많은 사람은 물건을 흥청망청 산다'는것이다. 한자의 금보다 한치의 돌이 더욱 아름다운법이다.

1.감리교회 형벌은 더욱 다양해진다. 이대로 흘러가면

형벌이 얼마나 다양했던지 형벌과 관련이 있는 한자들이 부지기수다. 예컨대 ‘민(民)’은 원래 한쪽 눈을 침으로 찔러 멀게 만드는 형벌이었다. ‘중앙’이라는 뜻의 ‘앙(央)’은 상형문에서 머리에 형틀을 씌워놓은 모양이다.
훗날 ‘중앙’으로 빌려 썼지만…. 어린아이를 뜻하는 ‘동(童)’은 형벌로 외눈이 된 노복에 성부가 된 동(東)을 합친 글자이다. 또 신(辛)은 문신을 하는 형구(刑具)이다. 재(宰)는 집안에 문신도구가 놓여있는 모양으로 다른 이를 감시하는 작은 직책을 뜻한다. 훗날엔 관직이라는 뜻으로 변했다. 고을, 마을을 뜻하는 현(縣)의 원래 뜻은 끔찍하다. 나무에 사람의 머리를 끈으로 묶어 매단 모양이니 말이다.

2.감리교회 법망은 더 어둡도록 촘촘하다. 이대로 흘러가면

“법망이 촘촘할수록 범죄는 많아진다” = <상서(尙書)> ‘여형(呂刑)’은 “주나라 시대에는 5가지 형벌, 즉 묵·의·비·궁·대가 있었다”고 했다. ‘묵’은 이마에 먹물로 문신하는 형벌이다. ‘경’이라고도 한다. 요즘으로 치면 성범죄자에게 발찌를 채우는 형벌이라고 할까. ‘의’는 코를, ‘비’는 다리나 발뒤꿈치를 자르는 형벌이다. ‘궁’은 성기를 자르거나(남성) 메우는(여성) 형벌이고, ‘대(大劈)’는 참수를 뜻한다. 이 다섯가지 형벌에 해당되는 죄는 무려 3000여 가지에 달했다. 주나라 때 형법을 제정한 목왕에의하면 “경형(묵형)과 의형에 속하는 죄가 각각 1000가지, 빈형에 속하는 죄가 500가지, 궁형에 속하는 죄가 300가지, 대벽에 속하는 죄가 200가지이다. 그러니 오형에 속하는 법조항은 모두 3000가지이다.”

사마천은 “법망이 촘촘할수록 백성들의 간교함과 거짓은 도리어 악랄해졌다”고 했다.

“법령이란 다스림의 도구일 뿐이다. 진(秦)나라 때 법망은 치밀했지만 간사함과 거짓은 싹이 움트듯 일어났다. 관리들이 불은 그대로 둔채 끓는 물만 식히려 했기 때문이다. 법망은 배를 집어삼킬만한 큰 고기도 빠져나갈 수 있을 정도로 너그러워야 한다.”

3.감리교회 거세당한다. 이대로 흘러가면

위대한 역사가 사마천(司馬遷)이 끔찍한 육형을 당한다.

궁형을 당한 사마천은 울분을 풀면서 불후의 저작을 완성했다.

그가 당한 궁형은 역사상 가장 극적인 형벌로 꼽힌다. 그리고 그 형벌은 또 가장 극적인 반전의 드라마로 역사에 길이 남는다. 사마천. 그는 천문과 지리, 그리고 역사를 담당해온 집안에서 태어났다. 탄탄대로를 걸을 수 있었다. 하지만 기원전 99년 이른바 이른바 ‘이릉(李陵)의 화(禍)’를 당하고 만다.

‘이릉의 화’는 이릉 장군이 불과 5000명을 이끌고 흉노족을 토벌하러 갔다가 중과부적으로 투항한 사건이다. 한나라 조정은 항복한 이릉을 대역죄인으로 성토한다. 그러나 사마천은 이릉을 변호하다가 ‘궁형’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선고를 받는다. 차라리 사형이 나았다. 궁형은 선비로서는 씻을 수 없는 치욕이었다. 사마천은 울부짖는다.

“궁형을 당하는 것보다 더 큰 치욕은 없습니다. 저 또한 거세되어~천하의 비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하루에도 창자가 9번 끊어지는 듯하고 집안에 있으면 갑자기 망연자실합니다. ~아아! 몸이 망가져 이제 쓸모가 없게 되었습니다.”

사마천은 피를 토하면서 역사 전개의 이유를 밝힌다.

“주 문왕은 유폐 당했을 때 <주역(周易)>을 풀이했고. 공자는 진(陳)과 채나라에서 고난을 당했을 때 <춘추(春秋)>를, 초나라 굴원(屈原)은 쫓겨나는 신세가 되어 <이소(離騷)>를, 좌구명(左丘明)은 실명한 이후에 <국어(國語)>를 지었습니다. 손자는 발이 잘린 뒤 <손자병법>을, 한비(韓非)는 진(秦)나라에 갇혀 <세난(說難)>과 <고분(孤憤)>을, 여불위는 촉나라로 좌천된 뒤 <여씨춘추(呂氏春秋)>를 간행했습니다. 시(詩) 300편도 현성(賢聖)들이 스스로의 비분을 촉발하여 지은 것입니다.(發憤之作)”

“지난 날을 서술하여 미래에 희망을 걸어본 것입니다.(故述往事 思來者)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고 고금의 변화에 통달하여 일가의 말을 이루고자 했습니다.(欲以究天人之際 通古今之變 成一家之言) 이런 극형을 당하고도 부끄러워 할 줄 몰랐던 것입니다.”

옳은 역사를 배우는 것은 결국 백성의 미래에 대비하고자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는 역사라는 것이 과거사일 뿐인데, 과거에 집착할 까닭이 있느냐는 야유에 대한 대답이다. <사기>를 읽으면서 늘 감탄하는 대목이다.

사마천의 ‘발분의 저작’인 <사기>가 ‘백성의 역사’라는 것이 돋보인다. 이것이 같은 동시대의 정사인 반고(班固)의 <한서(漢書)>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4..감리교회 올바른 성서의역사를 써야한다.

세치 혀로 6국의 재상을 지낸 소진(蘇秦)과 진나라 통일을 이끈 명재상 이사(李斯)는 여염에서 일어나 ‘일인지상 만인지하’의 자리에 섰다. 개백정인 주해(朱亥)와 번쾌(樊쾌), 노름꾼 모공(毛公), 백수건달 한신(韓信), 비단장수 관영(灌), 마부 하후영(夏侯) 등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

특히 지금으로 치면 개그맨·코미디언인 순우곤(淳于곤)·우맹(優孟)·우전(優)의 풍자를 열전(‘골계열전’)에 포함시켰다.

소외되었던 여성들도 열거된다.여태후. 한나라 시조인 고조의 뒤를 이은 것은 어린 아들 효혜제였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천하를 다스린 여태후(呂太后)였다. 사마천은 여태후를 ‘실질적인 천자’로 보아 ‘본기’의 반열에 올린 것이다.

‘항우본기’에 나오는 말이다. 항우의 멘토인 범증의 한탄이다. 항우가 홍문(鴻門)에서 유방을 죽일 수도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자 벌컥 화를 내며 한 말이다. ‘애녀석(竪子)’은 다름 아닌 항우를 일컫는다. 얼마나 화가 났으면 그랬을까. 감탄을 자아낸다.

궁형이 사마천의 백성을 향한 사랑을 넘어설수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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