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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 쓰시겠다는데(동영상:유튜브)
최세창
- 1664
- 2019-05-07 06:35:36
대통령과의 좌담회에서, 한 청년이 대통령을 향해 청년들에게 나아진 게 없다고 하면서, 소매로 눈물을 닦는 모습을 보고 매우 가슴이 아팠습니다. 일을 하고 싶어도 쓰겠다고 하는 기업이 없는 것은 비극입니다. 그러므로 친기업 정책과 친기업 정서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업이 망하는 것은 기업 하나가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업에 속한 모든 임직원과 한 명당 세 명 이상의 가족과 기업에 의거해서 상권을 형성하여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 모든 가족이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일자리를 얻기가 매우 힘들고 어려운 때에, 실력을 발휘하면서 먹고 살아가도록 써 주는 기업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께 쓰임 받는 것은 훨씬 더 감사할 일이요, 감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2.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시는 주 예수님
예수님이 인류 구원을 위한 십자가를 지시려고 예루살렘을 향해 앞서서 가셨습니다. 죄와 불신앙으로 멸망당할 인류의 죄를 사하시고, 성결한 삶을 살게 하시고, 영생을 누리게 하시는 자신의 대속 죽음을 향해 가시는 것입니다. 감람산의 벳바게와 베다니에 가까이 왔을 때에 두 제자를 보내셨습니다.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아직 아무 사람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의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너라” 예수님의 메시아로서의 초자연적 지식이나 영적 통견에 의한 지시는, 메시아 예언인 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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랴 9:9 이하와 창세기 49:11에 근거해서만 올바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스가랴 9:9 이하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는 왕인 메시아가, 겸손하셔서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실 테니 크게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그 성육하여 오시는 하나님은 전쟁을 종식시키시고, 세계에 화평을 전하실 것이고, 그의 정권은 천지에 이르리라는 것입니다. 창세기 49:11의 요지는, 랍비들이 진술한바 나귀 새끼가 메시아가 탈 짐승이라는 것입니다.
선택된 나귀 새끼는 사람이 탄 적이 없는 것이므로, 메시아를 태우기에 적합했습니다. 유대교와 고대 종교에서는 거룩한 목적에 사용되는 짐승은 깨끗하고, 흠이 없으며 쓰인 적이 없는 것이어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두 제자에게, “만일 누가 너희에게 어찌하여 푸느냐 묻거든 이렇게 말하되 주가 쓰시겠다 하라” “주가”의 헬라어 호 퀴리오스 아위투(ὁ κύριος αὐτού)는, 그 나귀 새끼의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창조주요 구원자이신 하나님의 성육이신 예수님은, 인간과 만물의 주인이십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되어, 두 제자가 나귀를 예수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걸쳐 놓고, 예수님을 태우는 경외심과 존경심과 충성심을 드러냈습니다.
구원받은 우리는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이 우리 자신이나 우리의 소유를 쓰시겠다고 하실 때에 내드릴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어차피 죽을 우리 자신과 어차피 쓰여야 할 우리 소유가, 사단이 아니라 영생의 주 예수님께 쓰임 받는 것보다 더 큰 영광은 없지 않습니까? 주가 쓰시겠다는데야 할 말이 없지 않습니까? 그냥 순종하는 것이 좋습니다.
목사님을 내보내려다가, 오히려 밀려 나온 두 장로님이 주축이 된 10여 명이 개척한 교회에 부임했습니다. 면담 때는 30명쯤 되고, 전세금을 한 장로님이 바쳤다고 했습니다.
두 장로님이 예배 때의 대표기도를 번갈아 하는데, 30분 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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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했습니다. 내용은 주로 교역자들을 비난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산은 임의로 세워 제게 통보하고, 2년간 단 한 번도 지출 결제를 받지 않았습니다. 교역자들에 대한 불만과 원망의 화살은 담임 목사인 제게 날아왔습니다. 교역자 없이 교회를 하려다가 교회법에 어긋나기 때문에, 저를 담임 목사로 세운 것도 알게 됐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교회가 부흥되어 새신자의 집에 심방을 가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그러자 개척 멤버들을 무시하고, 새 신자들만 끼고 돈다는 등의 시비를 걸고, 교인들의 집을 찾아다니면서 예배드리러 가지 말라고 하고, 모함까지 하면서 들고일어났습니다. 전세금은 빚이었다고 하면서 헌금에서 가져갔습니다. 강단을 뺏고, 제 서재는 자물쇠로 채웠습니다. 그들에게 사단이 작용하는 것을 꿈과 기도 중의 환상을 통해서 보곤 했습니다. 제 뒤에 세 교역자가 왔다가 각각 얼마 안 되어 그만두고, 장로끼리 싸우더니 교회가 없어지고, 그들도 망했습니다.
그 와중에 저는 ‘하나님은 뭐하고 계시나? 나는 하나님께 미운털이 박힌 건가? 내가 해서는 안 되는데, 목회를 해서 그런 건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아내와 9세와 10세쯤 된 남매를 데리고 음식점에 가서, “아버지는 이제부터 교회 일은 안 하고, 신학교 강의와 주석책을 쓰는 일만 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런 후, 하나님의 종이 마음대로 하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주님의 뜻을 알려고 기도원에 갔습니다. 삼 일째 되는 날 밤에 꿈을 꿨습니다. 선친이 나타나시더니 흑판에 흰 분필을 눕혀서 두껍고 큰 글씨로 ‘개척’이라고 쓰시고, 오른쪽 아래에 ‘이유’를 쓰셨습니다. 이유 내용은 글씨가 너무 작아서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다음에, 목회하시는 형님이 나타나시더니 같은 흑판에 흰 분필을 눕혀서 두껍고 큰 글씨로 ‘자척’이라고 쓰시고, 오른쪽 아래에 이유를 쓰셨는데 글씨가 너무 작아서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주님이 쓰시겠다는데 뭘 어쩌겠습니까? 셋집 마루에서 네 식구가 예배를 드린 게 교회의 시작이었습니다. 돈을 마련해서 보증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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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만 원에 월세 18만 원인 상가를 얻었고, 교회 이름을 픙성교회로 했습니다. 나중에 윤 권사님의 안 믿는 남편이, 교회 이름을 짓기도 전에 꿈에 교회 이름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충격으로 두 달쯤 머리가 붕 뜬 것 같고, 걸을 때에는 땅이 아니라 스펀지를 밟는 느낌이었습니다. 목사의 휴일인 월요일마다 인천으로 강의하러 다녔습니다. 물론, 주석 집필은 계속하였고, 하루 평균 10시간씩 30년이 걸려서 신약 전체를 다 마무리하고 출판했습니다. 1250여 권의 신약 주석서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면서 대조 연구한 결과 8600여 페이지가 됐습니다. 단 한 번도 지루함을 느끼지 않았고, 오히려 주석 집필을 하는 시간은 무척 행복했습니다. 주님께 쓰임 받는 일이라서 그런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더 그런 생각이 든 것은, 지금 누가 거금을 줄 테니 집필하라고 한다고 해도, 도저히 집필할 엄두가 안 나기 때문입니다. 집필은커녕, 베껴 쓰라고 해도 엄두가 안 나기 때문입니다.
신학서나 논문 등은 계속 썼고, 번역도 했습니다. 설교는 지금도 쓰고 있고, 얼마 전부터 유튜브에도 올리고 있습니다. 총 분량은 2만 페이지가 훨씬 넘습니다. 심방과 성령의 은사인 치유와 축귀는 40여 년간 계속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머리로 상상이 안 되지만, 주님이 쓰시겠다고 하실 때에 복종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결과를 볼 수 있습니다. 나귀 새끼와 임자들은, 인류 구원의 십자가를 향해 가시는 주님을 태우는 영광을 상상조차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군마가 아니라, 나귀 새끼를 타신 것은 평화의 왕다운 모습입니다. 제자들과 무리는 가시는 예수님의 길에 왕을 영접하는 행위인 겉옷을 폈고, 이미 감람산에서 내려가는 편까지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의 본바 모든 메시아적인 능한 일로 인해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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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이로다” 오랫동안 대망해 온 메시아 왕국을 바야흐로 건설할 메시아로 환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세계를 정복하여 통치하는 메시아 왕국을 건설할 정치적이며 군사적이며 현세적인 메시아로 착각한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인류 구원을 위해 십자가의 대속 제물이 되셔야만 하는 평화의 왕이시며, 사랑의 정복자이신 줄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대속 제물이 되시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시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선생이라고 부르면서, 유대교의 메시아로 여겨 찬양하는 무리를 책망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예수님은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르리라”라고 하셨습니다. 돌들이 소리지른다는 것은 하박국 2:11의, “담에서 돌이 부르짖고 집에서 들보가 응답하리라”를 반영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임할 심판을 가리킨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 말씀을 하신 것은, 메시아의 입성을 믿음으로 기뻐 찬양하며 환영하는 사람들의 구원과 안 믿고 배척하는 바리새인들의 멸망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3. 맺음말
주 예수님의 마지막 예루살렘행은, 인류 구원을 위한 십자가의 대속 제물이 되시기 위한 길입니다. 피조물인 사대 성인과 성인군자와 현자와 지자, 인간의 성취인 부와 권력과 업적, 금은보화를 총동원해도 이룰 수 없는바 구원자 하나님의 성육이신 주 예수님만이 이룰 수 있는 인류 구원을 위해 십자가를 향해 가시는 것입니다.
그 놀라운 구원을 받는 데에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 선악과 시비가 뒤바뀌는 양심이나 도덕이나 율법이나 종교 행위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주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3을 보면,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설교의 성경 본문: 누가복음 19:28-40)
28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서서 가시더라 29감람원이라는 산의 벳바게와 베다니에 가까이 왔을 때에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30이르시되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아직 아무 사람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의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너라 31만일 누가 너희에게 어찌하여 푸느냐 묻거든 이렇게 말하되 주가 쓰시겠다 하라 하시매 32보내심을 받은 자들이 가서 그 말씀하신 대로 만난지라 33나귀 새끼를 풀 때에 그 임자들이 이르되 어찌하여 나귀 새끼를 푸느냐 34대답하되 주께서 쓰시겠다 하고 35그것을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새끼 위에 걸쳐 놓고 예수를 태우니 36가실 때에 저희가 자기의 겉옷을 길에 펴더라 37이미 감람산에서 내려가는 편까지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의 본바 모든 능한 일을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38가로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 39무리 중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 하거늘 40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르리라 하시니라
필자의 사이트: newrema.com(T. 426-3051) 저서: 신약 전체 주석/ Salvation Before Jesus Came/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설교집 27권/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다수의 논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