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은 것에 진력하라(5.19 주일 낮 설교요약)

오세영
  • 1382
  • 2019-05-20 16:17:14
성경: 눅10:38-42

예수님이 나사로 집을 방문하셨을 때 칭찬 들었던 사람은 식사 준비와 손님 접대에 무척이나 바쁘고 열심이었던 마르다가 아니라 예수님 발아래에서 말씀을 들어 한가롭게만 보였던 마리아였습니다.
바쁘고 분주했던 마르다는 육적인 사람이며, 주님께 집중했던 마리아는 영적인 사람이라 표현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육신의 일에 분주한 마르다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어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육신의 일에만 열중하다가 결국 불평불만을 늘어놓게 되었습니다.
주의 음성을 들었고 그래서 주님의 나라를 보게 된 마리아는 순전한 나드 한 근(300데나리온)을 예수님의 머리에 부어드리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의 결과는 하늘과 땅 입니다.
원망과 미움에 대조되는 온전한 헌신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주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면 마르다와 같은 사람이 되고 맙니다.

교회에서도 마리아와 마르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는 마리아를 만드는 곳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자칫 마르다를 만드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행해지는 수많은 봉사와 일들이 오히려 마르다를 만들게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보통의 그리스도인들이 교회 생활에서 점점 힘을 잃어가고 허탈감에 빠지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교회를 출석하지 않고 있는 한 사람이, 자신은 과거에 여선교회 대표회장으로서 교회를 섬겼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지난날의 헌신과 수고가 오히려 그를 교회에서 이탈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마르다처럼 일과 행사 속에서 문제가 생겼던 것이며 자신의 수고에 지치게 된 것입니다.
교회는 마리아와 같은 사람을 만들기 위해 많은 것들을 단순화 시켜야 합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배, 행사, 프로그램에 의해 움직이며 이것이 교회생활이요, 신앙생활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마르다과만 생겨질 뿐입니다.
그리스도께 집중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오직 그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도록 해야 합니다.
이러한 훈련이 삶 자체로 이어져 단순한 인생길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목표가 아닌 사람은 삶이 단순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부각시켜야 하기 때문에 수많은 모임과 행사 등에 매어 분주하게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는 사람을 만나거나 모임을 가지기전 진지하게 주님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몇 가지 모임을 가지고 있어도 그 모임 찾아다니기 바쁠 수 있습니다.
내게 주어진 인생이라고 내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세월을 아끼라(엡5:16)는 말씀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마르다처럼 너무도 많은 일에 얽매어 있는 것입니다.
그 많은 일들이 지금 주님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마리아처럼 주님의 음성이 들려오지 않는다면 모두 끊어야 하고 절제해야 합니다.
마르다가 일에 치어서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던 것처럼 오늘도 이러한 일들이 너무도 많은 사람들에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인류는 전통적으로 농경사회를 이루며 살아왔습니다.
그러한 삶 속에서 에녹과 같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해가 지면 육신의 모든 일을 쉬고 묵상하며 하나님을 바라 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 날에는 과학 그리고 문화적 영향으로 낮과 밤이 바뀐 사람들이 많습니다.
컴퓨터 스마트폰 5G가 나오면서 마치 4차원의 세계에서 사는 듯 현대인들을 분주하고 혼란 속에서 살아가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마리아와 같은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요한복음에서 나사로 집에 예수님이 잔치와 함께 초대 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마르다의 행동이 당연한 것 인듯하지만 실상은 마리아의 행동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 내 인생의 길을 걸어서는 안 됩니다.
마리아처럼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래서 그 분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게 된다면 많은 것을 내려놓고 정리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삶을 단순하게 하며 오직 그리스도께 모든 것을 집중시키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마르다 눈에는 육적인 것들이 너무도 많이 보여 그것 처리하기 바뻤지만 마리아는 오직 주 예수님만 보이게 된 것입니다. 그 가운데서 그는 주님이 원하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마리아가 예수님 머리에 300데나리온의 향유를 붓게 되었을 때에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인의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셨습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을 알게 된 이들마다 이 여인처럼 자신을 철저히 드리는 헌신이 이루어지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한 번 밖에 없는 내 인생은 철저히 주님과의 동행이지 일과의 동행이 아닙니다.
오늘도 내일도 마리아처럼 주님만 보여야 합니다.
잔치 집에 초대된 주님이셨고 마리아는 초청한 사람 중 한 사람이었음에도 먼저 주님을 바라보았는데 그것은 대단한 집중력이며 분별력 이었습니다.
반면 마르다는 자신의 잔치 집에 초대된 예수님을 보며 육신적으로 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이 보였습니다.
주님이 그 자리에서 무엇을 원하셨단 말입니까!
수가성 여인에게 말씀하실 때 끼니를 걸으신 주님께 제자들이 양식을 드리자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양식이 있다”고 하셨는데 그 양식은 배고픔을 달래주는 육신의 양식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주님 발아래 앉아야 하겠습니다.
분주하고 해야 할 것이 마르다처럼 많이 보인다고 해도 마리아처럼 주님 발아래 앉을 수 있는 좋은 편을 택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 믿음의 사람이고 능력입니다.
예수님을 초청해 놓고 육신의 양식과 잔치에 앞서 주님 발 앞에 앉는 다는 것은 사실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오늘 날도 우리가 주님 앞에 앉지 못하고 세상 일정과 분주함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 가장 집중하는 것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 들에게 가장 좋은 것은 말씀을 묵상하는 것과 기도 입니다.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는 가운데 그 말씀이 내게 능력이 됩니다.
좌우의 어떤 날선 검보다도 예리하게 나를 베어내어 그리스도 앞에 앉게 합니다.
기도의 시간을 통하여 자아가 깨어지고 비워지게 됩니다.
말씀과 기도의 시간을 통하여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되고 주님의 아름다운 세계를 보게 됩니다.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 할 때 리브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말씀과 기도 묵상과 함께 리브가를 얻어 사라의 죽음으로 상심한 이삭이 위로 받았듯 우리를 진정 위로해 줄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또한 이삭이 늘 기도하며 묵상하는 사람이었음을 알게 하는 성경의 내용 입니다.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율법을 묵상하고 기도하던 나다나엘을 주님은 보셨습니다.
제 구시 기도시간에 성전 미문 앞에 앉아 구걸하던 나면서부터 못 걸었던 사람을 향해 베드로와 요한은 “은과 금은 내게 없지만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명령하였습니다.
만약에 베드로와 요한에게 제 구시 기도시간이 날마다 주어지지 않았다면 그러한 명령을 내릴 수 있는 담대함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오순절 마가 다락방의 일회적인 성령강림이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주님 발아래에서 그 음성을 듣고 주님의 나라를 매일 보는 이들마다 승리와 영광의 시간이 충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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