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과 반미주의

이경남
  • 1314
  • 2019-05-23 03:08:54
518과 반미주의
어제 한국예술종합대학에서 강의한 내용의 일부입니다

80년 8월 전두환은 체육관 선거를 통해 대통령이 취임하고 그가 창당한 민정당은 81년 3월 25일 제 11대 총선에서 전 유권자의 54%의 지지라는 국민적인 지지를 받으며 제1여당이 됩니다 놀라운 것은 민정당에 대한 지지율이 광주에서도 똑같았다는 사실입니다 당시 선거에 관권이 얼마나 심하게 개입되었는지를 알게 하는 사례입니다
신군부의 승리로 이때부터 시위자들과 희생자들은 폭도가 되고 고문과 탄압의 고통을 당합니다.
모든 방송과 언론은 광주의 실상을 외면하고 군부에 대하여 용비어천가를 부르며 아부합니다.
반면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묵살하고 권력을 잡은 신군부의 사악성과 광주의 실상이 서서히 입소문을 타고 세상에 퍼지며 분노하고 저항하는 양심 세력의 저항이 국내외에서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518이 끝난 후 광주에서 벌어진 군부의 만행을 세계에 가장 먼저 알린 것이 1980년5월 29일 맨하튼 리버사이드 교회에서 열린 광주 추모회입니다 이것을 주최한 이들은 북미기독인권연맹 사람들로 회장이 미감리교 한국 선교사 페기 빌링스 여자 목사입니다 이녀는 선교사로 내한 태화사회복지관장을 지내며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돕던 사람입니다
또 우리 사회에서 반미 감정이 일기 시작하는데 이는 미국 정부가 민주 세력을 돕지 않고 군부의 등장을 도왔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국에 군사적으로 정치적으로 큰 영향력을 미칠수 있는 미국이 민주화를 요구하는 정치인이나 시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군부의 진압에 동의한 것은 북한과 대립하고 있는 한국에서는 정치적인 민주화보다 꾹가적 안정을 꾀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1)전통적인 권위주의적인 정권이 혁명적인 독제 체제보다 덜 억압적이며 전자가 후자보다 더 자유화되기 쉽고 또한 미국의 국익에 걸맞는다.(레이건 시절 유엔대사.신보수주의 이론가 진 커크 패트릭,) 1975년 월남전 패배와 미국의 이란에서의 인권 외교 실패 후(이란 호메이니 혁명과 팔레비 왕가의 몰락) 군사력 증강등 강경 보수 정책으로 선회(1977년)
다시말해 제 3세계에서 우파 독재보다 좌파 독재가 더 해악적이고 미국만이 아니라 자국민들에게도 더 해로운 결과를 미치기 때문에 급진적인 혁명 정부를 돕는 일은 비도덕적인 일이 된다는 것이다(미국 외교 이념의 보수화 이삼성)

2)공산주의 침력과 전복으로부터 한나라의 안보를 유지하는 일이 인권을 존중하고 민주화를 이룩하는 일에 선행한다. 우리는 우리의 맹방이나 무역 상대국이 단지 우리의 인권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과 단교하고 그럼으로써 그들을 소련의 영향력에 내어 줄수는 없다(지미 카터 대통령,80년 6월 2일 동아일보)

3)미국은 남한의 군사 지도자들에게 어떤 의미없는 압력도 가할 계획이 없다 보복 조치로 미군 철수를 가할 생각도 없다. 서울과 워싱턴의 미국 관리들은 안보가 제일이라고 느끼고 있으며 남한에 간섭하려는 어떤 시도도 이미 분단된 나라를 더욱 악화시킬 것으로 느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어떤 군사적 경제적 외교적 압력도 가할 계획이 없다는 것이 가장 장확한 상황 파악이라 하겠다(80.5.21자 위싱턴포스트)

4)계속 되는 소요 사태와 폭력의 고조는 외부 세력의 오판을 초래할수 있다(위컴 주한미사령관 80.5.22일 20사단 광주 투입을 승인하고 5월 23일 백악관 특별 회의에서 한 발언,뉴욕타임즈 5.23)

5)미국은 5.17 조치의 배경과 불가피성에 대해 긍정적으로 이해하고 있다.국민이 다소 잘못된 길을 가더라도 정치인들은 설득해야 한다(동아일보, 주한미대사 글라이스틴,5월 23일 여당국회의원과의 대화)

6)현재의 한국 사태는 인권 문제가 아니고 동북 아시아의 안정 유지를 바라는 미국의 국가 이익에 관한 문제이다(5월 31일 홀부르크 차관보 주재로 열린 고위정책검토회의 결과 동아일보 6월 22일)
당시 미국의 이런 외교 정책을 책임지고 있던 이들이 브레진스키,홀부르크같은 사람들입니다

이런 것은 제 3세계의 정치 문화는 서구와 다르며 그래 이들에게 민주주의를 이식시키려는 시도는 비현실적인 것이라는 신보수주의 진 커크 패트릭의 주장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이런 보수주의적인 외교 노선이 결국 광주 학살을 묵인하고 군부를 지원한 것이라며 한국 지식인 사회에서 반미주의의 근거가 되고 결국 대학생들에 의해 부미방 사건이나 미문화원 점거같은 사태가 발생하고 그때 그렇게 행동했던 이들이 지금 문재인 정부의 핵심 인사들이 되어 우리 정부의 반미주의 외교를 주도하고 있는데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80년 당시 미국의 역할은 한국 내부의 정치적 갈등에 간섭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살해 당하고 군 내부가 반란에 휩싸이고 다양한 정치 세력들 간의 소요에 휩싸여 혼란에 빠진 남한에 대하여 군사적인 보호를 제공하는 일이었습니다
1980년 6월 10일 열릴 국가정보위원회(NIC)에 올린 CIA 문서는 남한에 대한 미국 정부의 방위적 책임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습니다

“H. 남한에서 폭력적인 시위들이 되풀이 되어 조용하던 지역들에 퍼져 나간다면 김일성은 혁명적인 위기를 조장할 시도로 대규모의 간첩들과 게릴라들을 침투시킬 1966-1968년의 무장 투쟁 책략으로 회귀하려는 유혹을 받을수 있습니다 김일성은 1960-61년의 혼란을 이용해서 이승만 통치를 뒤엎도록 이끄는데 실패한 교훈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그는 후에 말하기를 소요를 적절하게 계획하고 지시할 50명의 핵심 막시스트 레닌주의자들이 거기 있었다면 남한에서의 혁명은 1960년 봄이나 1961년 5월에 성취할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I.남한이 혼란과 사실 상 내전의 상태로 전락하여 한국의 명령과 규율이 붕괴되지 않는한 DMZ을 가로질러 재래식 병기로 공격할 조금의 기회도 더 이상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김일성은 한국을 통일하는 수단으로서의 남침을 포기했고 그의 기획된 힘의 사용을 혁명적 수단(게릴라전)으로 시종일관 제한했습니다 북한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그들이 남한을 재래식 무기로 공격하는 것의 주요 저지력은 항상 미국의 해공군력이었지 미 육군의 지상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북한 사람들은 1976년 8월의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에 대한 미해공군의 시위들이 회상되어서 1980년의 미국이 가지고 있는 가공할 지지력을 무시하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우리의 판단에 하나의 예외가 있을수 있습니다
남한에서의 혼돈 상태와 군 명령과 규율의 붕괴에 의해 창조된 기회에 의해 일어난 미증유의 압력 하에서 김일성은 DMZ를 가로질러 공격을 감행하는 도박을 할 준비가 되어 있을수 있습니다
4년전 김일성과 오진우 무력부장같은 그런 북한 군부 내의 베테랑 멤버들과 몇몇 소장파 전문 관리들 사이에 군에 관한 생각에 있어 명확히 알수 없는 견해 차이가 있었습니다
김일성과 대부분의 노년층 군 지도자들은 오래 걸리는 게릴라 전쟁의 공식 정책을 옹호하는 한편 북한 군 명령 체계의 다음 단계에 있는 반대파들은 현대적 병기들과 신속한 결단을 통한 전광석화같은 전쟁을 강조햇습니다
많은 것이 미국의 경고의 진실성에 대한 북측의 평가에 따라 좌우될 것입니다
미국의 경고는 이렇습니다
미국 정부는 “대한민국의 상황을 위협하는 어떤 외부의 시도에 대하여 한미 방위 조약 상의 의무에 따라 강력하게 반응할 것이다”라는 경고 말입니다“

당시 인권 외교나 도덕 정치를 말하던 카터 정부가 최종 진압 작전에 동의 한국 사회에서 민주화 운동의 예봉을 꺾고 신군부의 편을 들어준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나 80년대 남한 사회의 혼란 가운데 이런 중심을 가지고 엔터프라이즈호 코럴시호등 두 척의 항공모함을 군산과 부산 앞 바다에 급파해 북한의 오판을 막은 미국의 군사적 대응은 적절한 일입니다
그리고 카터 행정부도 그후 레이건 행정부도 사형 선고를 받은 김대중씨의 처형을 막고 석방하도록 압력을 가해 그를 살려내는 좋은 영형력을 행사했습니다
전두환의 신군부는 김대중씨의 석방을 군부 정권에 대한 미국의 승인과 교환하는 조건을 제시했고 레이건 정부는 이를 받아 들입니다
이건 미국 정부가 전두환씨의 등장을 도운게 아니라 남한 내부의 정치적 상황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는게 제 판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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