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의 정치적 배경

이경남
  • 1728
  • 2019-05-22 22:06:14
어제 한국예술종학교에서 강의한 내용의 일부이다

광주민주화항쟁은 박대통령 사망 후 상반된 상황 이해를 가진 두 세력(A판과 B판) 간의 갈등으로 일어난 일입니다.기존의 공화당 정치 세력들과 신군부의 입장은 국가 안정의 시급성을 주장하며
1)유신 체재 유지
2)군부 집권의 연속성을 주장합니다

80년 5월 17일 전군주요지휘관 회의 건의안은 군지휘관들이 이미 12.12로 군실권을 장악한 신군부 사람들의 위세에 눌려 굴복 당한 것을 말하는데
1)비상 계엄 전국 확대
2)각급 학교 휴교 조치
3)국회 해산
4)국가 보위 비상 대책 회의 설치를 요구합니다

반면에 분별있는 교수나 언론인 그리고 양심적인 성직자들이나 이들의 영향을 받은 의식있는 대학생들과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 환경 가운데 눌려 있던 노동자들의 입장과 구호는 달랐습니다
1)비상 계엄 해제
2)유신 헌법 철폐
3)민주주의 회복
4)정부주도 개헌(이원집정제) 반대같은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요구가 있는가 하면
5)노동 3권보장
6)족벌 사학과 어용 교수 퇴진같은 실제적인 요구들이 나타납니다
이것이 각종 시위와 구호들로 어지러웠던 80년 봄 우리 사회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군부는 80년 5월 18일 자정을 기해 비상 계엄 전국 확대 선포를 하며 이런 국민적 요구를 단번에 제압합니다 일종의 군사적 전체주의가 나타난 것입니다
1)모든 정치 활동 중지
2)대학 휴학
3)옥내외 시위, 집회 금지
4)전현직 국가 원수 비방 금지
5)직장 이탈 및 파업 불허
6)언론사 사전 검열 및 지도급 정치인과 재야 인사 체포

이것은 우리 사회에서 유신체제나 군부 통치를 연장하려는 A판의 세력이 군부 통치를 종식하고 민주 체제를 요구하던 B판의 세력을 물리적인 힘으로 제압한 사태입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군부는 악 반대로 민주화 세력은 선이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존재하는데 아닙니다 이런 신군부 사람들이 정치 일선에 등장하도록 빌미를 준 소위 민주화 운동 그룹들의 문제점도 살펴야 합니다

첫째 이것은 말로는 민주화나 정치 발전이라는 고상한 명분을 내세우면서도 속으로는 자기 권력욕에 사로잡혀 있던 정치인들의 탐욕과 이중성이라는 야권 내부의 모순과 분열을 말합니다
신민당이라는 정통 야당의 기반을 가지고 있는 김영삼씨는 의당 자기를 야권 지도자 차기 주자로 인식했고
오랜 연금이나 일본 미국등에서 망명 생활로 인해 국내 정치적 기반이 약한 김대중씨는 국민 연합이라는 조직을 만들고 자기 지지 세력을 모으며 김영삼과 경쟁하고 있었습니다
김종필씨의 경우 구여권 세력을 자기 지지 기반으로 가지고 있으나 부패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고 그에 대한 지지율은 김영삼이나 김대중씨만 높지 못하였습니다

둘째 유력한 야권 지도자의 하나인 김대중씨의 정체에 대한 군부의 의구심과 불신입니다
12.12 사태 이전 육군참모총장이자 계엄사령관이었던 정승화씨나 보안사령관 전두환씨는 한 비밀 보고서 X 파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1974년 8월 평양 대동강변 김일성 별장에서 김일성과 일본의 국제적인 정치인인 우스노미야 도쿠마등 일본 국회 방문단과 3일 간 13시간에 걸쳐 대담한 내용의 녹취록인데 거기에는 김일성과 김대중의 은밀한 관계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김일성과 김대중은 사상적 동지였고 실제적으로도 김일성은 김대중 정치 활동의 후원자입니다
김일성은 세 차례에 걸쳐 포드 대통령에게 김대중씨를 남한의 대통령이 되도록 지지해줄 것과 그가 대통령이 되면 남한을 향한 군사적 도발이나 적화 통일 시도를 멈추겠다는 비밀 문서를 친서로 보냈습니다

이런 것을 밝힌 기자는 당시 우리 나라에서 인사이드월드라는 잡지를 발행하고 있었는데 하루는 박지원이가 5억을 가지고 와 좀 도와 주십시오 하더랍니다 그러나 거절합니다 당시 그의 잡지사가 적자 경영하며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7억에 인수하겠다는 제한을 합니다 그러나 이것도 거절합니다 그러자 세 번째에는 현금 10억을 내 놓으며 우리 나라에서 내 돈 안 먹은 언론인 있으면 나와 봐 하더랍니다 그래 이 기자분이 너무 슬픈 이야기다 그래도 박지원이 돈 먹지 않은 언론인 한 사람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하며 돈 뭉치를 집어 던집니다
결국 김대중씨는 이분을 2년간 감옥에 보내는데 그러자 이분이 나와서는 더 기가 막힌 내막을 폭로합니다
그를 노벨상 수상자로 민주 투사로 이해하며 호평을 하는 우리들로서는 참 듣기 민망한 내용들입니다
이 기자분은 김대중씨가 전두환 군부에 의해 사형 선고를 받자 그를 살리려고 카터도 만나고 레이건도 만나 그를 석방시키고 미국 자기 집 옆에 거처를 마련해 김대중씨의 망명 생활과 정치 재개를 돕던 사람인데 가까이 지켜 보며 실망을 하게 되고 그래 반김으로 돌아선 사람입니다
이런 것이 정치인들의 실상입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 사람들은 악 반대로 김대중 김영삼 민주화 정치인들은 선 이런 이분법적 구분이 아직도 남아 있는데 아닙니다 신군부나 하나회 사람들의 악뿐 아니라 반대편의 정치인들의 악도 보어야 현대사가 제대로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햇볕만보면 안되고 그 햇볕의 결과로 찾아온 핵 위협도 봐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핵을 보는 사람은 햇볕을 안 보고 햇볕을 보는 사람은 핵을 안보는 것입니다 518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시 하나회 멤버들이 중심한 신군부 사람들의 악뿐 아니라 대척점에 서있던 야권 정치인들의 문제 그리고 북한의 김일성까지 보아야 518이 제대로 보인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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