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입장 표명이나 감리회 정책과 관계되지 않은 내용 등 "감리회 소식"과 거리가 먼 내용은 바로 삭제됩니다.
호부견자(虎父犬子)
도현종
- 1261
- 2019-05-20 23:36:24
예수의 진정한 제자들에게는 결국 예수 사랑외에는 길이없다. 성서의 길외에는 타협해서는 안된다.
"안중근 의사의 둘째 아들은 '영웅'이 아닌 '친일파'의 길을 걸어가게된다."
조국을 위해 목숨 바친 안중근 의사의 아들은 '친일파'의 길을 선택했다.
1909년 10월 26일, '우리의 원수' 이토 히로부미가 안중근 의사에 의해 처단되는 순간이다.
1910년 2월 14일, 불법 재판을 이어오던 일본 법정은 결국 안 의사를 '테러리스트'로 규정해 사형을 선고했다.
그리고 3월 26일 졸속으로 사형을 집행했다.
당시 일본은 안 의사의 유해도 돌려주지 않은 채 임의로 매장해버렸다. 그의 유언대로 하얼빈 공원에 묻힐 경우 그곳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이 벌어질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죽어서도 원하는 곳에 묻히지 못한 안중근 의사. 그러나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남겨진 가족들은 민족에겐 '영웅의 후손'이었지만 일제에게는 눈엣가시이자 경계 대상일 뿐이었다.
안 의사의 가족은 일제의 끊임없는 협박과 감시를 견디다 못해 중국으로 거처를 옮겨간다.
장남 안우생(안분도)은 중국 만주에서 7곱살에누군가에게 독살당하고 말았다.
이후 상하이에서 눈치를 보며 살아가던 안준생은 결국 1939년 10월 16일 조선호텔에서 이토의 둘째 아들 이토 분키치와 만내게된다.
그에게 "제 부친께서 어리석은 생각으로 당신의 아버님을 죽게 만들었다"면서 "아버지를 대신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분키치는 "나의 아버지도, 당신의 아버지도 지금은 하늘에 있기 때문에 사과의 말은 필요 없다"고 대답했다.
영웅의 아들이 추악한 친일파 , 변절자가 되는 순간이었다.
일본 신문들은 '테러리스트 안중근의 자식이 아비 대신 용서를 구했다'고 전했다. 준생은 미나미 총독의 양아들이 되었다. 이토 히로쿠니와 함께 일본 곳곳을 돌며 '눈물의 화해'를 재현했다. 일본은 환호했고 한국은 땅을 쳤다.
분노한 백범 김구 선생은 안준생을 민족 반역자로 규정하고 처단할 것을 명령했다. 그러나 중국의 애매한 태도로 인해 처단에 실패했고, 안준생은 미나미 지로 총독의 양아들이 돼 넉넉한 용돈을 받으며 살아갔다.
'영웅' 안중근 의사의 아들로 태어나 '친일'의 길을 선택한 안준생. 그는 광복 후 중국에서 살다가 6.25 전쟁 중이던 1951년 가족들 앞에서 병으로 사망했다.
친일파적인 그의 더러운 고백이다.
호부견자(虎父犬子)라더군요. 호랑이 아비에 개 같은 자식. 그럼 나더러 어쩌란 말입니까? 내 형은 7살 나이에 자기가 왜 당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남의 독을 먹고 죽어버렸죠. 나도 그렇게 내가 안중근의 아들이어서? 왜 나는 안준생으로 살 수 없었죠?왜 나는 내 삶을 선택할 기회도 없이 이런 운명에 던져져야 했죠? 아버지는... 아버지는 자신이 선택한 거잖아요. 그래서 죽은 거잖아요.그런데 왜 나는 내 선택이 아닌 아버지의 선택 때문에 이런 삶을 살아야 합니까?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