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와 용서(설교동영상들:유튜브)

최세창
  • 1553
  • 2019-05-20 18:18:16
1. 시작하는 말

용서는 많은 사람 사이에 널리 회자되는 만큼이나 많이 오용되는 미덕입니다. 용서와 용서에 관련되는 것만큼 보다 더 깊이, 보다 더 폭넓게 이해되고 행해져야 할 미덕도 흔치는 않습니다.
몰라서 잘못을 했거나 비방했거나 가해한 일에 대해서는, 당연히 용서해야 한다는 생각들을 합니다. 고의나 악의로 비방하고 상처를 준 일에 대해서는, 용서를 구하면 쉽지는 않지만 용서해야 한다는 생각들을 합니다. 그리고 서로 용서하고 용서를 받으면, 모든 게 다 잘 끝난 것이라는 생각들을 합니다. 그러한 단순한 생각 때문에, 사람들은 너무 쉽게 자기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이나 이해관계에 따라서 남을 비난하거나 배척하거나 상처를 주곤 하는 것입니다.

2. 용서한 바울 사도에게 남은 상처

모르면모르되 바울 사도보다 더 상처가 많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교역자들과 그의 전도로 믿은 사람들과 그의 기도로 치유나 축귀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에게서까지도 비방과 배척과 핍박을 받았습니다. 나중에는 많이 달라졌지만, 바울 사도를 혹독하게 비방하고 가슴 아프게 한 교회는, 바울 사도가 개척하여 세운 고린도 교회이었습니다. 바울 사도에게서 복음을 듣고 믿어 구원받은 그 교인들은, 바울 사도가 다른 지역에 복음을 전하러 간 뒤에, 사이비 사도들과 지도자들에게 미혹되어 바울의 사도권과 복음을 가짜라고 했습니다. 인신공격도 했고, 외모 곧 몸도 말도 시원찮은 인간이라고 조롱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 사도는 자신의 심령을 상하게 하는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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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이나 증오를 하지 않았습니다. 미움과 증오는 자신을 더욱 괴롭히는 것입니다. 그는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죄의 용서를 받은 사랑을 잊지 않고, 그들을 용서하고 일하며 살았습니다. 그런 그 바울 사도의 머릿속과 가슴속에는, 무수한 상처가 남아 있었습니다. 갈라디아서 6:17을 보면,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라고 했습니다.
가해자가 알아야 할 사실은 피해자가 용서했다고 하더라도, 피해자가 받은 상처는 남는다는 것입니다. 용서하면 받은 상처로 인한 아픔이 덜해지지만, 받은 상처의 흔적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피해자가 미움과 원한과 증오를 청산하고 용서해도 상처의 흔적은 남는 것입니다. 용서받은 가해자도 상처를 준 상처가 남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아예 상처를 주지 않도록 힘써 말씀을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용서를 비는 사람에게 어떤 피해자는 다 잊었다고 말하는데, 다 잊어버린 걸 어떻게 잊어버렸다고 말하는지 이상하지 않습니까? 용서해야 할 내용을 잊었다면, 용서할 자격이 없어진 것입니다. 가해자나 피해자나 상처를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용서하고, 용서받기 위해서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상처의 반복을 막고, 원상 복구와 보다 더 진전된 화평한 관계 형성을 위해서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꽁해서 자기 마음을 괴롭히고, 영혼을 병들게 하는 심각한 이차 피해를 만들라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용서한 바울 사도는, 기억하고 있는 상처를 토로했습니다. “너희는 외모만 보는도다 만일 사람이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줄을 믿을진대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같이 우리도 그러한 줄을 자기 속으로 다시 생각할 것이라” 외모 곧 신체와 말주변과 말의 내용이 시원찮다고 하는 그들의 비난과 조롱,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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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사도권을 부인하는, 자칭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하는 자들 및 추종자들의 잘못을 지적해 주는 것입니다. 이미 알고 있던, 주님께 받은 바울의 사도로서의 권세와 주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사명을 다시금 기억해 내라는 것입니다.
시험을 보러 가는 아이에게 엄마가 말했습니다. “제발 대통령들 닮지 말아라.” 아이가 잘 알아들었다는 표정으로 대답했습니다. “시험을 못 봐도 정직하게 실력껏 보란 말씀이시죠?” 엄마가 기가 막힌 표정으로, “그게 아니고, 시험지 앞에서 자꾸 ‘모른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딴소리하지 말라는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개인이나 집단이나 용서를 위해 기억해야 할 중요한 것은, 누가 어떻게 가해했는가 하는 내용과 가해에 대해 누가 어떻게 대응하여 무슨 공을 세웠는가 하는 내용과 누가 악용하여 무슨 이득을 얻었는가 하는 내용과 사과나 회개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주님이 맡겨 주신 사도권이 교회를 파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세우기 위한 것임을 밝혔습니다.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인들에게 자신의 사도권과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강조하는 것은, 자존심이나 권리 행사나 이권 때문이 아닙니다. 교인들의 영원한 구원과 영원한 멸망이 걸린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사도로서 전한 복음을 듣고 믿어 구원받은 교인들이 복음의 진리에서 이탈하고 있는 것을 막고, 다시금 주님만을 바라보고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모든 교역자는 이 고귀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철저하게 주님의 종노릇인 복음만을 전하고 가르쳐야 하고, 교인들은 복음만을 청종해야 합니다.
사이비 지도자들은 자신을 내세우며 목자와 교인들, 교인들과 교인들 사이를 반목하게 하고, 혼합 교리를 가르쳐 교회를 파괴했습니다. 반면에, 바울 사도는 자기를 부인하고, 성령을 좇아 복음으로 교회를 화평케 하고, 성장케 하려고 힘썼습니다. 그러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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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사도는 이 막중한 사명을 위해 주님께 받은 자신의 사도권을 지나치게 자랑하여도 부끄럽지 않다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자기에 대해 알 것을 알지 못하고, 생각할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우습게 여기며 조롱하는 이들에게, 편지로만 겁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바울을 가리켜, 대면하면 겸비하고 떠나 있으면 담대한 자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하고, 편지들은 중하고 힘이 있으나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말이 시원치 않은 자라고 폄훼하기도 했습니다. 휴스(P. E. Hughes)는 “바울의 적들은 그의 온유를 나약으로, 인내를 겁약으로, 친절을 우유부단으로 해석했다.”라고 주석했습니다. 또, 바울의 관용을 위선으로, 사랑을 비겁으로 해석했습니다. 이해력도 통찰력도 없는 사이비 지도자들은, 바울을 비난하고 조롱함으로써 자기들의 위상이 높아진다고 착각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그 주님과 복음의 적들에게, 고린도후서와 이전에 보낸 편지들을 단지 겁주기 위한 허풍으로 여기지 말라고 했습니다.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하여 편지들을 썼고, 또 쓰고 있는 것이며, 따라서 교회를 위해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사도로서 단호한 태도를 취할 것임을 미리 밝히는 것입니다. 뭐라고 했습니까? “이런 사람은 우리가 떠나 있을 때에 편지들로 말하는 자가 어떠한 자이면 함께 있을 때에 행하는 자도 그와 같은 자인 줄 알라”
바울 사도는 면전에서는 무서워서 할 말을 못하고, 편지로나 하는 겁쟁이가 아닙니다. 바울 사도는 복음의 진리를 고수하기 위해 많은 교인들 앞에서 수제자인 베드로를 면책하였고, 집권자들 앞에서 담대히 복음을 변증하였고, 줄기찬 환난과 핍박과 고난을 이겨 냈고, 순교할 때까지 한결같이 선교 사명을 수행한 복음의 투사입니다. 사도행전 20:23 이하에 뭐라고 했습니까?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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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은혜의 복음이란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을 위한 죄의 용서와 성결한 삶과 천국의 영생이 아닙니까?
실상, 바울 사도가 그 모든 가해자들에게 하는 언행이 용서입니다. 그 가해자들은 용서를 받아들이면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용서하다’로 번역된 카리조마이(χαρίζομαι)는 ‘은혜를 베풀다’, ‘유익하게 하다’라는 뜻입니다. 죄인에게 유익 또는 은혜가 되는 것은 묵과나 덮는 것일 수도 있고, 조언이나 충고일 수도 있고, 책망이나 징벌일 수도 있습니다. 이사야 55:7을 보면,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라고 했습니다.

3. 맺음말

용서 운운하는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할 실화가 있습니다.
시카고의 한 작은 교회에서, 굶어 죽은 세 살짜리 아이의 장례식을 치르느라. 목사님과 참석한 사람들이 눈을 감고 기도할 때였습니다. 더러운 옷을 입은 알코올 중독자가 죽은 아이의 발에서 신발을 몰래 벗겨 가지고 나가서, 35센트에 팔아 술을 마셨습니다. 그 알코올 중독자는 죽은 아이의 아버지였습니다. 이 사실을 안 모두가 분노하며 “인간도 아냐!”라고 했습니다.
20여 년의 세월이 흐른 후, 시카고 제일장로교회에서 수천 명의 성도가 모인 집회가 열렸습니다. 부흥사가 청중을 향해 외쳤습니다. “여러분! 20여 년 전, 굶어죽은 딸의 장례식장에서 딸의 신발을 훔쳤던 파렴치범이 있었지요? 그가 바로 저였습니다. 만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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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꺼기 같은 저를 다시 살리시고, 하나님의 일꾼으로 삼아 주신 분이 바로 제가 믿는 위대하신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그가 바로 능력 있는 복음 전도자였던 멜 트라더(Mel Trader) 목사입니다. 그는 주로 인생 막장의 알코올 중독자를 대상으로 전도해서, 수천 명을 주님께 인도했습니다.
주 하나님을 믿어 죄 사함을 받아 거듭난 우리는, 용서의 빚진 자들입니다.

(설교의 성경 본문: 고린도후서 10:7-11, 이사야 55:7)

7너희는 외모만 보는도다 만일 사람이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줄을 믿을진대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같이 우리도 그러한 줄을 자기 속으로 다시 생각할 것이라 8주께서 주신 권세는 너희를 파하려고 하신 것이 아니요 세우려고 하신 것이니 내가 이에 대하여 지나치게 자랑하여도 부끄럽지 아니하리라 9이는 내가 편지들로 너희를 놀라게 하려는 것같이 생각지 않게 함이니 10저희 말이 그 편지들은 중하고 힘이 있으나 그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말이 시원치 않다 하니 11이런 사람은 우리가 떠나 있을 때에 편지들로 말하는 자가 어떠한 자이면 함께 있을 때에 행하는 자도 그와 같은 자인 줄 알라
7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필자의 사이트: newrema.com(T. 426-3051) 저서: 신약 전체 주석/ Salvation Before Jesus Came/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설교집 27권/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다수의 논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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