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남목사님 인터뷰한 시사IN 정희상 선임기자를 만나고

장운양
  • 2175
  • 2019-05-31 03:46:11
나는 시사IN의 정기구독자다. 처음에는 5.14일자 608호에서 정희상 선임기자의 "우리 부대가 5명을 때려죽였다"라는 제목의 이 경남 목사님과의 인터뷰를 접하고 많이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나에게 이경남 목사님은 섬세하고 따뜻한 시인의 이미지가 강하다. 그동안 꽤 지나긴 했지만, 감게에서의 인연도 있었고 가슴 속에 훈훈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분이다.

그런데, 인터뷰 기사 첫페이지에 실려있는 이경남 목사님의 사진은 참 난감했다. 종종 들렸던 블로그 대문에서 익숙하게 접했던 이경남 목사님과 거의 다른 얼굴이였다. 너무 힘이 들어가 있었다. 단지 나이를 먹어가기에 달라지는 느낌이 아니였다. 이 경남 목사님을 떠올리면서 난 한번도 거칠다는 인상을 느낀 적이 없었는데, 시사인의 사진은 그렇게 찍혀 있었다.

그동안 감게에서 이 경남 목사님의 글이 계속해서 논쟁을, 내 관점에서보자면 전혀 불필요한 논쟁을 촉발시키곤했다. 일단 논지의 관점을 떠나서, 시인이 투사가 되었다? 라는 생각에 잠겨보기도 했고, 이 분이 518을 전혀 다른 측면에서 보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을까? 가 많이 궁금했다.

그런데, 내 입장에서 이 시사인 인터뷰가 나오고 나서 두 가지가 계속해서 나를 괴롭혔다. 하나는 인터넷판 뉴스에 실린 수많은 댓글들의 반응을 접하고 나서 였고, 다른 하나는 한 달이 넘도록 고 김의기 선배에 대한 기록을 정리하고 있던 입장에서의 불편함이였다.

작금의 이경남 목사님 입장에서 고 김의기 선배의 삶과 죽음을 견주어 보게되면 엄청나게 마음이 무겁고 불편해 진다. 그래도 적어보자면, 북한군 게릴라들이 선동한 광주의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고 김의기 선배가 산화했다? 이경남 목사님은 광주민주화운동은 운동이고 북한군 침투 게릴라 선동은 선동이라고 분리해서 볼 것을 말씀하시지만 그 근거가 전혀 납득이 불가할 뿐만 아니라 이를 제기하는 본인 스스로의 내면에서도 불편하게 다가가고 있는 것은 아닐가? 싶다.

관건은 감게에 올라왔던 시사IN기사에 대한 수정을 요청한다는 글이였다. 이것이 좀 납득이 가지 않았던 것이 보통은 인터뷰기사를 기자가 작성하면 지면이나 인터넷 판에 싣기 전에 당사자에게 먼저 보내고 나서 검토하는 단계를 거친다. 이것이 중요한 것은 인터넷판은 얼마든지 수정이 가능하지만, 시사IN처럼 종이매체와 인터넷판을 겸하는 경우에 한번 인쇄된 기사를 수정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그 이유를 정희상 선임기자를 만나고 파악하게 되었다. 기자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인터뷰에 임하는 이의 입장이 마음껏 개진되도록 배려할 수 밖에 없다. 당연히 모든 것을 실시간으로 기록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인터뷰는 녹음과 함께 진행될 수 밖에 없다. 이후 기자의 메모와 녹취가 정리되면서 인터뷰 기사가 탈고되는 것이다.

우편으로 집으로 배달된 종이로 인쇄된 시사IN기사와 인터넷 판 수정된 기사를 보면 미묘한 차이가 발생되는 지점을 읽을 수 있다. 한마디로 행간을 읽어내는 작업과 비슷하다. 감게에서의 글이나 언론 방송을 통해서 접하는 이경남 목사님의 모습과 실제 소탈한 만남을 통해서 접하는 모습이 많이 다를 수도 있겠다 싶다.

이경남 목사님은 겉으로는 강직한 모습이신 듯 싶지만 섬세하고 따뜻한 시인의 기질이 쉽게 사라지지 못하고 대면하는 현실들은 부딪쳐야만 하는 경우들이 빈번하니 사진의 얼굴이 저에게 그렇게 다가왔을까요? 목사님이 시사IN과 인터뷰를 하시기 전에 JTBC의 세차례의 요청에 그렇게 대응하셨듯이 더 심사숙고가 필요하시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나의 판단으로는 이경남목사님은 시사IN과의 인터뷰를 하시지 않는 것이 더 바람직했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인터뷰내용은 만만치가 않은 무게감이 있어서 중앙일보에서 까지 따로 해설기사가 나올 정도였지만, 그동안 감게에서 보아온 이경남 목사님의 논지와 시사IN의 인터뷰 기사는 2014.8~2015.8의 심연을 건너버린 입장에서 이경남 목사님의 총체적으로 수렴된 입장과 병립하기 어려웠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더 올리자면, 아마도 사모님께서 정희상 선임기자에게 전화통화를 하면서 의도하지는 않으셨겠지만 큰 결레를 하신 듯 싶습니다. 추후에 서로 따뜻하게 통화하시고 푸셨으면 좋겠습니다. 이경남 목사님은 의도하지는 않으셨겠지만 현재 좌정하신 자리가 매우 위태로워 보입니다. 결국 양쪽 모두에서 비판받는 것이 선지자의 갈 길이라고 각오하셨다면 제가 드릴 말씀은 없지만, 다시 20년 전의 전태일 문학상을 받으셨던 그때를 자주 상기하셨으면 합니다.

아래의 글은 그대로 현상이 아니라 맥락에서 보고 싶은 바램으로 이경남 목사님 블로그를 읽고 메모하면서 정리한 글입니다. 감게의 독자 분들에게도 참고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적지않은 품을 팔아서 함께 올려 봅니다.



................................................................................이경남 목사님 블로그 518관련 글 메모 정리 ...............................................

매년 5월이 오면 나는 광주가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지난 20년 가까이 나는 내 마음의 소리를 들으면서도 차마 그곳으로 발을 옮기지 못하였고, 올해도 역시 그랬다. 그러나 언젠가는 반드시 5월의 광주를 찾아가고 싶다. 가서 그날 어둠이 내린 하늘을 향해 부르짖던 의 아벨과 선지자 스가랴의 피의 절규처럼 울려 퍼지던, 지금도 하늘과 땅에서 울려 나오고 있을 죽어간 자들의 슬픈 목소리를 듣고 싶다.

나 혼자만이 아니다. 그때에는 사랑하는 자식을 죽음의 구덩이에 보내고 그로 인해 한없이 마음 태우셨을 노년의 부모님과 나의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들도 함께 가고 싶다. 그리고 거기에서 나는 나의 총명한 자녀들에게 광주의 아픔은 물론이고, 죽은 자들의 진실과 사악한 권력의 위험을 가르치고 싶다.

끝으로 아직도 살아서 지난 날의 망상을 버리지 못하고 준동하는 전두환씨를 비롯한 5공의 권력자들에게, “이 나라에서 당신들이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여 자숙하라”는 충고를 하고 싶다

(20년 만의 고백 – 한 특전사 병사가 겪은 광주-1999년 ‘당대비평’ 겨울호) 2014.4.20. 기록


“광주의 비극은 군인들의 폭력으로부터 발생한 것입니다” 이 경남목사는 20일밤 계엄군에 의해 무차별 폭행을 당해 의식이 없는 시민을 업고 인근 교회로 피신시켰다. 부대에서 이탈하여 교회에서 하루 밤을 세우고 아침에 복귄한 이 경남목사는 지휘관으로부터 심한 구타를 당해야했다. ‘전시’상황에서 즉결 처형을 안 당한 것이 다행이었다. 동료 부대원들의 시위대를 향한 폭력과 살상을 지켜 본 이 목사는, 최근 불거진 ‘5.18 간첩 연계설’은 터무니 없다고 일축한다.

“계엄군이 광주를 완전 포위했던 당시 상황에서 전혀 현실성 없는 이야기입니다. 그저 괴담 수준의 주장이지요. 계엄군의 최초 발포가 있은 21일 오후, 시민들이 자체 무장을 시작하자 계엄군은 광주 시내에서 일시 퇴각한다. 인근 야산에 주둔하던 부대가 다시 모처로 이동하던 24일, 이 목사는 또 하나의 비극을 경험한다. 시골 마을에서 광주 보병학교 부대와 공수 11여단 간의 오인 사격이 벌어진 것이다. 군인 11명이 사망한 이 사고로 이 목사도 중상을 입고 국군병원으로 이송된다.

5.18의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이 경남목사에게는 아직도 제대로 청산되지 못한 5월 광주에 대해 절절한 아쉬움이 남아있다. ”두 전직 대통령이 반란 수괴로 감옥에 갔었지만 요식행위에 불과했다고 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죄악에 대한 엄정한 단죄를 기뻐하셨습니다. 가해의 책임자들에 대한 역사적 심판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5.18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한편 패널로 자리한 김종희 뉴스앤조이 대표는 ‘아직도 이부 목사들이’ 광주사태는 북한 간첩과 연계된 폭도들이 자행한 일‘이란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는 광주 항쟁 직후 교회의 지도자들이 전두환 국보위 위원장을 축복하는 조찬기도회를 열어 면죄부를 주었던 역사 인식의 연장선이며 한국교회가 철저하게 반서해야 할 문제’라며 보수 기독교의 행태를 꼬집었고, MC 김응교 숙명여대 교수는 ”가해자들이 더 이상 피해자들에게 상처 주는 일은 멈추기 바란다“며 극우 세력들의 역사왜곡을 비판했다.

(CBS크리스찬NOW 2013. 5.17 대담) 2014.4.20. 기록

이것은 해외에서도 마찬가지다

광주의 참상을 전해들은 미국의 그리스도인들은 1980년 5월 29일 뉴욕 맨허튼의 리버사이드 처치에서 수많은 한국인과 미국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광주 희생자 추모예배를 드린다. 또한 북미한국인권동맹은 한국의 민주화에 대한 미국 정부의 책임을 촉구하기 시작한다.

”한국에서의 인권 투쟁을 지원해왔던 우리는 절망하거나 냉소주의에 굴하지 않고 이 일에 변함없이 성실해야 한다. 미국 민중과 정부는 한국의 사태와 한국인의 자유를 위한 투쟁의 미래에 깊은 책임을 지고 있다. 그들의 독재자들에 대한 우리 정부의 지원 조치가 한국인들을 당황케 하고 구역질 나게 했던 만큼.... 이제 우리가 한국인들을 방어하는데 강력한 조치를 위하지 않는다면 지난 35년간 미국과 한국 사이에 쌓은 신뢰와 선의의 유산들은 신속히 사라질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국 민중들의 요구에 반하여 한국 장성들의 변명의 구실이 되었던 바로 그 안보도 잃고 말 것이다“(1980년 9월 광주사태 보고서 157p, 북미 한국 인권 동맹 의장 페기 빌링스 미감리교 한국선교사 태화복지관 관장 10년 역임)

광주민중화항쟁에 대한 한국 군부의 야만적인 진압과 미국 정부의 불량한 신보수주의 오교 정책 속에서도 우리는 이런 선명한 역사 인식과 양심을 가진 이들과 그들의 활동을 발견한다. 이것은 우리의 죽은 양심을 살리는 한줄기 빛이다. 그리고 이런 빛의 역사를 오늘에 이어가는 것이 분별있는 지식인들과 양심있는 성직자들과 민주적인 정신을 가진 정당들에게 주어진 사명일 것이다.

”아버지 붙잡지 마세요. 다른 집 자녀들은 다 희생하고 있는 데 왜 자기 아들만 보호하려고 합니까? 평소 소신이 왜 변합니까? 아버지 설교 말씀에 역사가 병들었을 때 누군가 역사를 위해 십자가를 져야만 이 역사가 큰 생명으로 부활한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저를 붙잡지 말아 주세요“(1980.5.26. 옷을 갈아 입고 다시 도청으로 나가면서 아버지 류연창 목사(광주성결교회)에게 류동운이 한 말. 당시 한신대 2학년,27일 복부 관통상과 전신화상을 입고 군화발에 짖이겨진 채 사망)

주제: ”5.18 역사 왜곡과 보수주의“
일시: 2013.5.30. 오후 3시
장소: 의원회관 제1국제 회의실
토론자 : 안종철,최민희,오승룡,조희연,진성준(사회자),장완익,이경남,이인석

(2014.4.23.기록)



▶ 제대하시고 바로 학교에 복학하셨을 턴데 혹시 특전사에 계신 것을 다른 학생들도 알고 있었나요?

알고 있었죠. 1999년에 『20년만의 고백』 이라는 글을 썼고 ‘당대비평’이라는 잡지에 기고를 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2000년도에 전태일문학상을 주더라고요. 이 『20년만의 고백』 이라는 글을 쓰기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광주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어요. 쉽게 떠들어댈 내용이 아니라서 가슴 속 깊이 간직해 있다가 1999년 5월에 3개월간 집사람이 집을 비운 사이에 이제는 글로 쓸 수 있겠다 싶어서 컴퓨터에 앉아서 쓰는데 쓰면서 많이 울었어요.

당시에는 몰랐는데 뒤늦게 겪은 일들이 어떤 의미였는지 회상하면서 글을 쓰니까 너무 기가 막혀서 이틀 동안 글을 쓰면서 많이 울었죠. 포탄과 총탄에 맞아서 부상을 당하고, 생사의 고비를 넘은 광주에서의 일들로 인해서 제 안에 많은 내면의 변화가 일어났어요.

▶ 20여 년 동안 많은 마음고생이 있으셨을 턴데,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전역을 하고 복학한 이후에도 어려운 일들이 있었어요. 그러다가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던 아내를 만났는데 아주 성숙하고 안정된 사람이었어요. 집사람을 만나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되고 대학원 공부를 하면서 신학적인 정돈도 되었죠. 그 후에 결혼하고 강원도 철원에서 목회를 하면서 신앙적인 유익한 체험들을 많이 했습니다. 이곳에서 많은 변화와 신앙적인 성숙을 경험했어요.

▶ 망월동 묘지에 가보셨어요?

KBS, MBC에서 요청해서 몇 번 가본 적이 있습니다. 2000년 5월에 광주도청에서 100분 토론에 초청받아서 패널로 참여했는데 그 이외에도 신문사, 방송사에서도 요청이 있어서 4~5번 정도 다녀왔습니다.

2007.5.18. 노컷 뉴스 CBS 손숙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

(2014.8.27.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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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사에는 절대선도 절대악고 없다는 생각이 든다 5.18 진압 후 광주 시민은 폭도가 되고 군부는 국난을 극복한 구국의 영웅이 된다. 그러나 오래 못가 광주 청문회와 이후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의 민간 정부가 들어서자 군부는 내란을 음모한 반란 수괴가 되고 시민은 민주 항쟁 투사요. 숭고한 열사들이 된다. 이런 역사의 반전이 일어난 후에 20여년 만에 다시 이런 사진이 나왔으니... 아 이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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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사건을 줄곧 민주 항쟁의 측면에서 이해하고 글을 쓰고 인터뷰한 나에게도 이 사진을 비롯한 수십장의 현장 사진들은 부정할 수 없는 Fact라는 생각이 든다.
( 이경남 목사님의 생각의 관점이 결정적으로 달라지고 있음이 확인되는 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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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를 계기로 광주가 북의 공작에 의한 폭동이라는 지만원 박사의 극단적인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 장운양 전도사가 해설하자면 이 대목은 畫蛇添足이다) 지금 정부뿐 아니라 방송과 언론 학계의 주류 사회가 이 사실을 외면하고 있지만 이 사진들은 앞으로 우리 사회에 반동적인 매카시즘의 광풍으로 확산될 위험이 있고 반대로는 좌편향으로만 흐르고 있는 지식인들의 경솔한 경향에 어느 정도 이념적 균형을 가져오는 유익도 줄 것이다. (이것은 사족 정도가 아니라 마족이다)

성서는 감추어진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마태복음 10장 26절)고 말한다. 광주 청문회를 통해서 당시 상층 군부와 현장 군인들의 감추어졌던 야욕과 만행이 드러났다면 이 사진들은 우리에게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진실 즉 남한 사회의 내부적인 갈등과 혼란을 틈타 북의 게릴라전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또 군부나 시민 모두가 동일한 사건을 얼마나 자기 편의적으로 이해했는지 깨닫게 할 것이다.

(분명 이경남 목사님은 이 사진들때문에 스스로 인식론적 해체를 경험하면서 북게릴라전이니 5.18광주를 바라보는 시민의식이 협소했다는 자기반성에 대한 예언까지 구약성서의 맛이 가버린 선지자들의 태도로 돌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겉으로는 지만원 박사의 주장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하면서 글의 논지는 2014.8.27.이후와 완전히 달라진다. 좀 더 구체적으로 2014.8.27.과 2015.8.13. 이 사이 거의 만 일년 동안 이경남 목사님은 어떤 자리에서 어떤 사람들을 만났고 시나브로 무엇을 간과하고 계셨던 걸까요?)


또한 보수 진보를 떠나 우리 모두에게 우리의 판단과 신념이라는 것이 얼마나 주관적인 편견과 정보의 한계에 매여 있었는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도 하게 만들 것이다.(거의 부채도사 수준의 판단이 계속되고 있다. 글은 점점 과대망상으로 가고 있다. 돈키호테 수준의 확증편향이다.)

이런 사진 수 백장이 공개되었는데도 국가기관이 공식적으로 조사를 시작하지 않는 것은 명백한 직무 유기이고 언론 방송이 침묵하는 것은 오만한 편견이자 구토스런 위선이고 진실을 두려워하는 허약함이기도하다

( 이 논지가 납득이가려면 최소한 관상학과 골상학에 대한 학문적 이해가 필요할 듯 하다. 흔하게 이야기하는 도플갱어 수준을 넘어서려면 말이다. 도대체 2014.8에서 2015.8 사이에 이경남 목사님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함부로 추정할 수 없지만 지만원의 사진들 뿐만 아닌, 이전과는 전혀 다른 태도의 동선이 있었음은 충분한 합리적 추론으로 상정할 수 있을 듯 하다)

Fact앞에서는 그것이 아무리 우리의 利害와 상충하더라도 우리의 理解를 내려 놓는 정직함을 가져야 한다. 사진에서처럼 북한 특수군의 개입이 사실이라면 광주 항쟁에 대한 재조사와 재평가는 불가피하겠지만 그렇더라도 당시 군부 집권 연장을 꾀하던 군 상층부의 잘못된 야욕과 진압군 폭력에 맞서 죽음으로 항거한 광주 항쟁의 민주화 운동으로서의 본령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수사법을 전형적인 양비론의 물타기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
광주 청문회와 5공 비리 사건을 통해 자신을 미화한 권력자들의 우상이 산산이 깨어졌듯이 광주를 민주화 운동의 입장에서만 이해하며 신화화한 우리들의 또 하나의 우상을 깨뜨리고 완전한 선도 완전한 악도 없는 인간사의 실상을 보게하는 명백한 증거가 될 것이다.
(이제 이후의 글들과 입장에서는 명백한 증거가 될 것이다라가 아니라 명백한 증거가 되었으면 한다 라는 바램의 피력이 본격적으로 이경남 목사님 글에서 A판과 B판 대립의 형식논리적 접근이 출현하는 토대가 되고 있는 것이 이 글이다. 누가 우리 선량한 이경남 목사님을 2014.8과 2015.8사이에 망쳐 놓은 것일까? 지만원의 영향은 분명하지만 그것으로만으로는 다 설명되기 힘든 지점이 너무 많다 ㅠㅠ)

이경남 목사님이 많이 흔들리시다가 관점의 변화가 혼종되고 흔들렸던 시기?
(2015.8.13.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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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정부에게 발포나 폭격같은 그런 문제만 아니라 이 북한국 개입도 조사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이것이 5.18을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공정한 자세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5.18은 군정 연장을 꾀하는 신군부와 진압군들의 난폭한 폭력에 맞서 싸운 민주 항쟁으로서의 성격을 가지지만 동시에 이런 국가적인 혼란 속에서 북의 게릴라들이 개입 사태를 교란 악화시킨 또 다른 측면도 있어 보인다.

지금 택시 운전사에 열광하는 우리 국민들이 5.18을 오직 민주 항쟁의 측면에서만 이해하며 북한군 개입 주장을 배척하고 조롱하며 외면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또 정부나 국정원같은 국가 기관이 북한군 개입의 문제를 정치적인 판단으로 은폐하는 것도 아주 교활하고 사악한 일이다. 그리고 이런 사태에 우리 나라의 방송 언론과 소위 양심적인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그 이념적 편향성에 따라 선동 동조 침묵하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악이요. 위선이라는 게 내 판단이다.

( 계속해서 이경남 목사님의 번짓수가 요원해 진다. 한미 정보요원 미 육군 501정보단 출신 김용장 씨와 505보안부대 수사관 출신 허장환 씨가 말하는 '신군부 5·18 기획설'을 톺아보게 되면 이경남 목사님이 말하는 ‘북한군’과 ‘신군부’는 그 주도적 원인의 차원에서 묘하게 겹쳐지는 지점들이 적지 않다. 아직까지는 설이여서 내년 40주년을 앞두고 명확하고 적확하게 밝혀져 가겠지만.... ㅠㅠ )

(2017.9.9.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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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민들의 민주화 열망에 대한 순수한 동기와 그들의 명예를 우리는 지키고 존중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개입하여 광주시민들을 혼미의 소용돌이 속으로 유도하고 그들의 민주화투쟁을 마치 국가전복을 목표로 하는 민중봉기의 형식으로 작전조작하였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가 없다. 광주시민들의 순수와 열망이 북한의 대남공작에 도적맞은 것이다. 광주시민이나 5.18관계 단체들이 아직도 북한의 개입을 부인한다면, 그것은 일종의 스톡홀름 증후군이다.

북한의 개입이 없이 순전히 광주 시민들 만으로 궐기를 하였다면 광주사태의 모양새는 그렇게 거칠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이제 광주사태에 대한 역사를 다시 써야 한다. 광주의 민주화투쟁을 국가적으로 공식인정하고 저들의 명예를 존중하되, 북한의 개입을 부인하지 말고 온 국민이, 특히 광주시민들이, 새로운 인식으로 정리해야 한다.

(2017.10.4. 기록)

진실의 부력
폭동과 내란으로 매도 되었던 5.18이 시민 항쟁과 민주화운동으로 재평가를 받은 것, 단순 해운 사고로 축소되었던 세월호의 진상이 서서히 밝혀지고 있는 것... 우리는 이런 것을 진실이 그 스스로의 모습을 드러내는 진실의 힘 진실의 부력이라고 말한다. 아래 글은 영국영화 Bloody Sunday(피의 일요일)에 대한 영화평으로 영화사측의 요청에 의해 씨네21(한겨레)에 실었던 글이다.

요즘 우리나라 언론 방송들-JTBC,SBS,MBC,CBS의 노컷뉴스 한겨레나 경향같은 매체들이 5.18 북한 개입의 문제에 대하여 미국 기밀 해제 문서를 근거로 부정하며 진실인양 호도하고 있으나 아니다. 이 문제 역시 그간 감추어졌던 진실이 다시 떠오르고 있는 것. 진실의 힘 진실의 부력이라는게 내 판단이다. 당시 우리 사회 그 혼란의 와주에 은밀하고 교활하게 이루어진 북한 게릴라 개입의 문제는 미국 문서가 아니라 북한 문서를 통해 가려질 문제로 보는게 맞을 것이다.

당시 광주 상황을 우리도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에 광주의 선교사들과 김수환추기경에게 연락해 광주 대교구장 윤공희씨를 통해 정보를 얻을 수 밖에 없었다(그라이스틴 주한미대사) 그런데 이런 보고에 근거해 만들어진 미국무부 문서가 우리 사회에서는 마치 성경처럼 오류가 없는 절대 문서로 둔갑하고 있는 게 참 고이하다.

혹 이런 주장이 거역스럽게 느껴지는 분이시라면 그 누구라도 좋으니 비난이 아니라 공개적으로 토론하는 자리를 열어 주셨으면 좋겠다. 거짓을 반박하지 않으면 거짓이 진실이 된다. 뉴스타파에서 만든 518 다큐 제목인데 이 말이 북한 개입의 문제에 대하여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게 내 판단이다. 그래서 이런 글을 공개적으로 쓰고 있다. ( 북한 게릴라군 투입을 이젠 아예 단정을 하고 계심. 확증편향이 심해지면 인지부조화가 초래됨 –아들러)

(2018.5.30. 기록 )

5·18 기념재단 등이 5·18민주화운동 당시 북한군이 투입됐다는 왜곡 사실을 퍼트린 지만원(78)씨로부터 3년 2개월 만에 억대의 손해배상금을 받아냈다 30일 5·18기념재단에 따르면 지씨는 지난 22일 손해배상 선고 금액과 이자를 포함해 모두 1억8백만원을 5월 단체 등 피해 당사자들에게 냈다.


지씨는 2016년 3월 15일 '뉴스타운 호외 1,2,3호'를 통해 5·18민주화운동을 북한군 특수부대의 배후 조종에 따라 광주 시민들과 북한이 내통하여 일어난 국가 반란 폭동이라고 주장했다.이에 5월 단체 등 당사자들은 지씨를 상대로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해 2017년 8월 11일 8천200만원을 지급하라는 승소 판결을 받았다.

이후 손해배상금 지급을 미뤄오던 지씨는 최근 5·18기념재단 측이 은행 계좌와 사무실 집기류 등에 대한 압류 조치를 하자 배상금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5·18기념재단 관계자는 "소송은 돈이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지씨가 사과를 하면 그것으로 끝날 일이었다"며 "하지만 지씨가 끝까지 사과하지 않아 손해배상금을 받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왜곡 세력들에게는 무거운 경고이자 경종을 울리는 주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지씨는 5·18 북한군 개입설을 인터넷상에서 퍼뜨리는 데 그치지 않고 시민군을 북한군 제0광수로 지목한 '5·18 영상고발 화보'를 출판하면서 이와 관련한 손해배상 소송을 광주고법에서 진행하고 있다. 또 시민군을 북한군이라고 지칭한 혐의(명예훼손)로 서울중앙지법에서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위 사건에 대해서 이 경남 목사님은 이렇게 의견을 밝히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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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문제에 있어서만은 지만원 박사의 주장이 옳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광주법원이 이런 정치적 판결을 하고 있다면 전두환씨 문제도 여기에서 다루어서는 안된다 재판의 생명은 공정성인데 이런 명백한 사실마져도 왜곡하는 법원이라면 그건 과거 인혁당이나 민청학련 사건을 만들어내던 유신 법정 군사법정과 다를바 없는 사악한 조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소위 민주화 운동 세력에 의해 자행되고 교수 방송 언론인 성직자 이런 지식인 그룹이 이에 동조하고 침묵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내가 보다 못해 이런 글을 쓰고 있다. 혹 이글이 불편하시거나 오류라고 여기시면 지도해주시기를 바란다. 기꺼이 받아들이겠다.

(기꺼이 제 입장을 밝히자면, 위 기사가 보여주고 있듯이, 이제 함부로 북한 개입설 북한 게릴라군 침투 등의 어처구니없는 발언들은 법적인 철퇴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도래한 국면이라고 보여 집니다. 따라서 이경남 목사님도 앞으로 북한군 개입을 어설프게 물타기하는 방식이라도 적시하시지 마셨으면 합니다. 결국 사모님까지 부담스런 상황이 초래될 것이 명약관화함으로 )

(2018.8.7. 기록)

북한 개입을 주장하는 이들은 광주의 항쟁을 폭동 난동이라고 매도하며 시민 항쟁의 성격을 부정하고 반대로 민주화 운동으로 평가하는 이들은 북한 개입설은 가짜라며 비난하고 조롱하고 배제하고 있는 것이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입니다. 518을 우리가 민주화 운동으로 기리는 것은 당시 군정과 유신 체제를 지속하려는 군부의 야욕과 그 행동대로 활동한 군인들의 만행에 광주 시민들이 저항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518의 민주화 운동 혹은 시민 항쟁으로서의 본질과 정신을 존중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반면 북한 개입의 문제도 면밀히 조사 밝혀야할 국가 안보적 문제 군사 전술적 문제라는 것이 제 판단입니다. 1998년 7월 월간조선 김용삼 편집장은 황장엽씨와 김덕홍씨와 인터뷰하며 518에 북한이 개입되어 있다는 글을 쓴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기사는 안기부의 요청으로 기사화되지 못하였습니다. 황장엽씨나 김덕홍씨는 거짓말을 할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언론 방송이 518 북한 개입을 부인하고 민주당이 518특별법 개정안을 통해 이런 문제제기 조차 형사 처벌하려는 것은 무책임을 넘어 정치적으로 진실을 은폐하는 사악한 일이고 자유 한국당마저 사리분별을 못하고 이런 일에 동조하는 것은 자기의 정치적 정체성마져 팔아 먹는 천치같은 일이란게 내 판단입니다.

(2019.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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