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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81주년 존 웨슬리회심기념주일(5.26) 설교요약
오세영
- 2025
- 2019-05-25 07:59:57
1738년 5월 24일 존 웨슬리 목사께서 올더스게이트 거리의 한 기도회에서 로마서 서문을 듣던 중 깨달았던 그 순간은 감리교회가 태동되는 시간이 되었고 기독교 역사에 큰 획을 긋는 순간이었습니다.
칭의의 은총이 오직 믿음으로만 되어 진다는 것을 웨슬리가 마음으로 깨달았던 순간이었습니다.
웨슬리는 그날의 경험이 있기 전까지는 자신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음을 고백하였습니다.
또한 진리를 알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교류하였던 것에 종지부를 찍어도 좋을 만큼 그는 분명한 답을 얻게 된 것입니다.
믿음의 가정에서 철저한 훈련을 받았고 신성회를 청년시절부터 조직하여 경건의 훈련에 매진하였던 웨슬리였지만 그는 죄의 짐을 온전히 벗을 수 없었고 마음의 평화와 안식 그리고 기쁨이 없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영적으로 갈급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그 은총이 자신과는 무관하게 느껴지기만 했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에 확신이 없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다 함을 얻는 진리를 깨닫기 까지 죄의 짐은 벗어지지 않았으며 목회와 선교사 활동엔 아무런 열매도 없었으며 갈등과 분쟁만 목회 현장에서 나타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회심하던 그날 그는 그리스께서 자신을 위해 죽으셨고 주님께서 자신의 죄를 이미 짊어지고 가셔서 더 이상 죄의 짐에 시달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어느 때나 이러한 지식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날 밤 가슴이 뜨거워지도록 강력하게 역사하신 성령의 임재와 함께 그는 분명한 믿음의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머리로만 알았던 십자가의 진리가 마음으로 믿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성령의 역사로 알아지는 믿음의 확신을 가슴이 뜨거웠다고 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증거 하시는 분이 성령이시기에 성령이 아니고는 그 누구도 그리스도를 알게 할 수 없습니다.
성령의 조명과 임재 가운데 어둠이 벗어지며 영적 귀가 열리는 것입니다.
그는 주님의 죽으심이 자신과 온 인류를 위한 것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이 십자가의 진리가 믿어지는 순간 그는 아무공로 없이 오직 그리스도의 한량없는 사랑의 은혜로 자신의 죄가 사함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진리를 깨달은 웨슬리는 가슴이 뜨겁도록 주 예수님에 대한 확신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의 영혼은 더 이상 목마르거나 공허하지 않았습니다.
하늘의 평안과 안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를 이처럼 다른 사람으로 만든 것은 새로운 진리가 아닙니다.
다 이루었다 하시며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예수님이 자신의 죄를 짊어지시고 죽으신 것을 비로소 믿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능력이나 신앙의 출발은 이와 같은 믿음에서 시작됩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마다 값진 향유를 부은 마리아와 같은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 가슴에 뜨거운 사랑이 그를 변화시키고 열매 맺게 합니다.
웨슬리 회심 주일을 맞이하여 우리는 믿음의 능력과 그 역사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웨슬리와 같은 회심의 경험이 진정 성령으로 믿음이 임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웨슬리는 이것을 산 믿음이라 하였습니다.
산 믿음은 가슴속 깊이 까지 그리스도의 사랑이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믿음은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에 무한한 힘을 가져다줍니다.
그 마음의 힘으로 부터 그는 비로서 선을 향하여 달려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에 눈을 열었기에 사랑하기를 힘쓰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향한 뜨거운 사랑과 믿음이 그를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듯 그렇게 변화시키게 됩니다.
사람이 노력하여 변하지 않습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새로워지고 변화 받을 수 있습니다.
복음을 깨닫고 믿음을 가진 심령마다 그 마음에 강력한 에너지를 사실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 가슴 벅찬 복음의 능력이 그리스도인을 변화시키고 새롭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변화는 믿음 이외의 아무것으로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회심하기전 그날 밤 웨슬리의 발걸음은 사실 기진맥진하여 올더스게이트 거리를 걸었던 것입니다.
미국 조지아주 선교지에서 선교사역을 실패하고 돌아온 웨슬리였습니다.
자신의 실패를 씁쓸해 하기도하고 무기력하기만 한 믿음을 한탄하였던 것인데 이제 그는 한 없이 충만하고 힘이 넘쳐나게 된 것입니다.
오늘 웨슬리 회심기념주일을 맞이하여 무엇보다도 믿음으로만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이 진리에 다시금 눈을 열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고 중생하게 된다는 것을 믿고 그것이 성령으로 성취될 때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웨슬리는 그날 밤 새 세상을 만났습니다.
우물가의 여인도 삭개오도 주 예수님을 통하여 새로운 세상을 만난 이들입니다.
새사람의 출발은 값없이 주시는 십자가의 은총을 마음으로 믿을 때 시작됩니다.
또한 믿음으로 인한 거듭남은 그를 날로 새롭게 하고 성숙해 가도록 만드는 에너지를 가지게 됩니다.
믿음을 가졌는데 무기력 할 수 있을까요?
복음을 깨달아 십자가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 옛사람의 모습을 벗지 못할까요?
믿음과 함께 행함이 주어지게 됩니다.
그 행함은 울어도 안 되고 노력해도 아니 되며 힘써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값없는 십자가의 사랑을 마음으로 받고 확신 할 때만 가능합니다.
하늘로 부터 온 믿음은 과연 산이라도 옮길 수 있고 뽕나무라도 뽑아 먼 바다에 던질 수 있을 만큼 강력한 것입니다.
이러한 힘만이 태산처럼 버티고 있는 우리의 자아를 옮길 수 있고 뽕나무처럼 깊게 부패한 본성을 뽑아 저 바다까지라도 던져버릴 수 있습니다.
믿음에는 이러한 힘이 있고 이것이 죽은 믿음이 아닌 산 믿음인 것입니다.
웨슬리는 주여 주여 하는 믿음을 책망하였습니다.
물론 우리 주님의 책망은 말 할 것도 없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야고보는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과 함께 행함이 주어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야고보 기자는 한 샘에서 단물과 쓴물이 겸하여 나올 수 없듯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행함을 당연시하는 말씀이지요.
믿음은 에베소 기자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 믿음의 근원이 하늘에서 온 것이기에 세상이 줄 수 없는 능력을 주는 것입니다.
어떤 종교개혁자도 칭의의 교리를 깨닫고 웨슬리처럼 행함을 강조한 사람은 없습니다.
웨슬리가 다시금 행함이나 율법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처절한 경험을 통하여 믿음과 행함의 관계를 확신한 결과 입니다.
성령으로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을 때와, 같은 내용 같은 진리이지만 성령 안에서 알게 된 진리는 너무도 차이가 있었던 것을 그는 누구보다도 깊이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