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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회 반전(反轉)
함창석
- 1219
- 2019-06-06 04:17:49
산돌 함창석 장로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들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그러나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가 없어짐이 쉬우리라.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드는 자도, 무릇 버림당한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예수께서는 바리새인의 위선을 책망하신다.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라는 예수님의 평가는 바리새인들의 자존심에 먹칠을 한 것이다. 예수님은 그들의 외식을 아시고 노골적으로 그들의 문제를 지적하신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다음 이야기로 넘어간다.
스스로 옳다 하는 dikaiou'nte는 dikaiovw의 어근으로 ‘의롭게 보이다, 정당화하려고 애쓰다.’의 뜻으로 하나님의 의와는 관계없이 하나님 앞에 의롭다고 자처하고 있었다. 그들의 교만한 이러한 행동은 사람들에게는 통했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는 것이었다.
가난한 자를 경홀히 여기는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 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그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느니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나사로가 있는 곳을 내가 갈 수 없다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예수님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회개할 생각이 전혀 없는 바리새인들 때문에 이어진 비유이다. '나사로'라는 이름도 유일한 것이다. 이 비유는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에서 강조됨과 동시에 더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지옥의 문제를 언급하심으로 최후의 심판까지 연결한 것이다.
첫째, 19-26절의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았던 부자와 빌어먹을 만큼 가난하게 살았던 나사로의 위치가 역전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의 전개는 누가복음6:20, 24의 '평지 복음'의 내용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와 비슷하다.
둘째 27-31절 이 땅에서 부귀영화를 누렸던 부자는 이미 생전에 율법과 선지자들을 통해 회개치 않을 경우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다시 다른 사람이 와서 말한다고 해서 회개하지 않을 것을 말한다. 현재의 부자는 특권층 바리새인들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