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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강해설교: 삼손이야기(6.16주일낮)
오세영
- 1735
- 2019-06-17 08:04:43
삼손하면 힘의 상징적 인물입니다.
삼손이 가졌던 힘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사자를 염소새끼를 찢듯 죽였다는 것이고 혼자서 블레셋 1.000여명을 새 나귀뼈로 물리치기도 했습니다.
그런가하면 블레셋 사람들이 성을 에워싸며 삼손을 포위하자 성문 두 짝과 문설주와 기둥 그리고 문빗장까지 어깨에 메고 헤브론까지 걸어갔다는 것입니다.
과연 사람의 힘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막강한 힘입니다.
성경의 삼손은 무엇을 의미 할까요! 왜 삼손을 등장시켰을 까요!
수 많은 사사 중에 삼손과 같은 인물을 만드시고 그 삼손을 통하여 무엇을 말씀하려고 하실까요! 우리는 이것을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삼손은 무엇을 말 하는지!
삼손은 그리스도인을 상징하는 사람입니다.
주님 안에 부름 받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삼손과 같은 존재임을 알아야 합니다.
삼손을 그 누구도 제압 할 수 없듯이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 받는 그리스도인의 힘은 오히려 삼손을 능가합니다.
주님은 그리스도인들이 뱀과 전갈을 밟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또한 귀신을 쫓아내며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였습니다.
거기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아담이 그러했듯 땅을 다스리고 정복하라 하였습니다.
담대하되 대장부처럼 담대하라 하셨고 계시록 말씀처럼 이기는 자가 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강함은 혈과 육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의 믿음이며 영적인 것입니다.
주님은 믿음을 가진 우리들에게 산이라도 옮길 것이며 뽕나무를 뽑아 저 먼 바다까지 던질 수 있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성도들에게 허락하신 것들이 실로 막강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은 참으로 강한 모습입니다.
여기에 사랑의 힘은 가장 강한 힘이어서 구약 삼손의 힘을 훨씬 능가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다"고 하며 풍부에 처할 줄도 알고 빈핍에 처할 줄도 알았습니다.
또한 감옥에 처할 줄도 알아 찬송과 기도를 드렸고 기뻐했습니다.
그는 배고픔과 돌로 치임과 갇힘과 같은 환란을 능히 이기는 강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믿음이 아니고는 세상을 이길 수 없다는 말씀처럼 세상을 이기는 자가 삼손보다 더 강한 자입니다.
거기에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를 부인하는 이들이며 날마다 자기십자가를 지고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죄를 이기며 마귀를 제압하는 이들입니다.
기근이나 핍박이나 적신이나 위협이나 죽음이라도 그를 낙심시키지 못합니다.
이런 강함이 있는 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러기에 언제나 이기는 자이며 강한 자였던 삼손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상징적 모습입니다.
삼손이 머리털을 밀리며 힘을 잃지 않는 한 사람이 당 할 수 없었던 것과 같이 믿음을 가진 하나님의 사람들을 당할 자 누구이겠습니까! 세상이 감당 할 수 없습니다.
삼손이 힘을 잃은 것은 그가 죄에게 서서히 잡혀가다 결국 죄에게 패배했기 때문입니다.
힘의 근원을 밝히는 것은 절대적 금기 사항인데 삼손은 들릴라의 꾀임에 조금씩 물들어가다가 끈질긴 들릴라의 유혹과 요청에 삼손은 절대 말해서는 안 되는 비밀을 털어놓게 되었습니다.
죄는 아담과 하와라도 에덴 동산에서 추방당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죄에 대하여, 삼손이 비밀을 말하여서는 안 되는 것처럼 그렇게 중대한 문제로 생각해야 합니다.
죄를 습관적으로 짓는다든가 죄에게 쉽게 끌려가는 것은 이미 머리털이 밀린 삼손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죄는 조금씩 우리를 유혹해 옵니다. 삼손은 그 유혹을 끊지 못했습니다.
모든 죄가 죄이지만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가 있다하듯 힘을 잃어 죄에게 종노릇해서는 안 됩니다.
죄에게 종노릇하지 않는한 바로 회개하며 바로 설 수 있습니다.
누구나 처음부터 죄에게 종노릇하는 것이 아닙니다.
뱀이 발꿈치를 물듯 그렇게 죄는 물어오며 결국 발목을 잡아 꿈쩍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삼손이 허물어져 가는 과정에서 볼 수 있듯 죄에게 틈을 보이고 기회를 주면 결국 잡히게됩니다.
나실인의 비밀을 털어놓은 삼손은 머리털이 밀리며 두 눈도 뽑혔고 결박을 당하였으며 연자 맷돌을 돌리며 놀림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또한 갇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세례요한이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며 그리스도인지 확인하게 됩니다.
그 때 주님은 못 보던 자가 보게 되고 걷지 못했던 자들이 걷게 되고 듣지 못한 자가 듣게 되며 한센병 환자가 깨끗하게 되고 죽은 자가 살아난다 하셨습니다.
또한 포로 된 자를 자유케하고 눈 먼 자를 보게 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신다하셨습니다.
이러한 말씀이 오늘 삼손의 이야기 속에서 풀어지게 됨을 보게 됩니다.
삼손이 힘을 잃었을 때 앞을 못보게 되었습니다.
이는 말하지 못하고 걷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결박당하였고 옥에 갇히는 자가 되었습니다.
영적 힘을 잃었을 때 찾아오는 현상들입니다.
결국 주님께서 세례요한에게 답변한 내용들은 실제 육적 상황을 통하여 영적인현상을 대답하신 것이었습니다.
머리털이 밀린 삼손은 잠에서 깨어나 힘을 써보려 했지만 평범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성경은 삼손이 하나님의 신이 자신에게서 떠난 것을 알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신이 떠난 삼손은 블레셋 군사 한 명도 상대 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였습니다.
성도들에게 성령이 역사하지 않는다면 평범한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는 세상을 이기지 못합니다. 그의 눈은 어두워 죄를 분별하지 못하며 자신을 부인하지도 못합니다.
그는 세상의 염려와 근심 환란에 포로가 되게 됩니다.
결국 환란과 고난의 감옥에 갇힌 자처럼 살아가게 됩니다.
이전에 성령 안에서 누렸던 기쁨과 평안 등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신이 떠난 불쌍한 삼손처럼 힘없이 조롱 속에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삼손의 머리가 다시 자라게 되었습니다.
또한 삼손은 간절히 회개하며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여호와여 이번 한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저 원수들을 물리치게 하시옵소서” 삼손의 진실한 회개와 함께 머리털이 자라고 있습니다.
회개한 삼손은 자신에게 다시금 힘이 임재 함을 느끼게 됩니다.
이처럼 진정한 회개는 죄에게 다시금 끌려가지 않는 힘을 느끼게 하고 분명한 마음을 갖게 합니다.
회개하였다면 자신에게 강력한 힘이 있어 더 이상 죄나 마귀 또한 세상에 끌려가지 않는 자신을 알 수 있습니다.
삼손은 3천명이 모인 우상의 신당을 버티고 있는 두 기둥으로 자신을 안내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회개한 자신에게 강력한 힘이 임했음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두 기둥을 껴 앉고 무너뜨리는 일에 나서게 된 것입니다.
회개한 심령마다 주님의 강력한 힘이 임하게 됩니다.
그는 그 힘을 알 수 있고 그 힘이 그를 승리의 길로 다시금 이끌게 됩니다.
절대금기였던 나실인의 비밀을 말하여 머리털이 밀린 삼손에게 하나님은 다시금 찾아오셔서 머리털을 자라게 하신 것처럼 성령의 충만함을 잃어 육적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할지라도 다시금 머리털을 자라게 하듯 소생시키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며 주님께 나아가 힘 있는 삼손과 같은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