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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회 옥녀(玉女)
함창석
- 1486
- 2019-07-16 18:07:39
산돌 함창석 장로
구석기, 신석기를 지나 토기, 옥기, 동기시대가 열리며 1만년전경 동아시아지역에는 옥을 다루는 여자가 있었다. 그녀의 애칭은 옥녀였다. 옥을 다루는 기술이 뛰어난 나라의 임금은 옥황상제였다. 마찰에 의해 갈아 다루기가 용이한 옥의 종류는 청옥, 백옥, 흑옥, 적옥, 황옥 등 다양하였다.
옥녀에 관한 이야기는 3종류가 있다. 도교, 선교 신앙적인 유형으로 마을을 지키는 산신으로 나타나고 풍수지리로써 옥녀봉이라는 지명, 지형에 관련된 유형이며 윤리도덕과 관련이 있는 인간관계 속에서 자식을 생산하는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순결하게 정절을 지키다 죽는 유형이 있다.
첫째는 마을을 지키는 산신으로 나타나는 유형이다. 마을 뒷산 옥녀봉에는 하늘에서 내려온 여자 산신(옥녀)이 살고 있었다. 이웃 마을 남자 산신이 이 땅을 빼앗으려고 쳐들어왔는데 옥녀가 이 남신을 물리쳤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그곳에다 나무를 심고 당산제를 지내며 옥녀를 위로하였다.
둘째는 옥녀봉의 지형과 지명에 관련된 유형이다. 옥녀는 부모가 돌아가자 삯바느질로 동생을 공부시켰다. 매일 뒷산에 올라가 기도하자 산신령이 감동을 하여 동생을 급제시켜 주었다. 옥녀는 이 소식을 듣고 너무나 기뻐 그만 산이 되었다. 옥녀봉의 모양이 여자가 바느질을 하고 있는 형상이다.
셋째는 옥녀가 정절을 지키다 죽음에 이르는 유형이다. 옥녀라는 미인이 살았는데 혼약을 한 도령이 있었다. 도령이 과거 보러 간 사이에 사또가 흑심을 품고 온갖 요구를 하였다. 옥녀는 더는 사또를 피할 수 없게 되자 강에 투신해 죽었는데, 사또도 급살 맞아 죽고 도령도 죽음으로 뒤따랐다.
옥녀봉은 산을 옥녀에 비유, 단아하고 수려한 봉우리를 두고 붙여진 지명이다. 옥녀봉 관련 설화는 정절, 효행, 권선징악이나 근친상간 등 금기와 같은 우리 민중의 윤리의식을 교훈적으로 전하며, ‘옥녀봉’이라는 산정(山頂)을 증거물로 하여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우리나라 전역에 분포한다.
옥녀봉 전설은 풍수지리설에 바탕을 하여 그럴 듯한 설화가 이루어진다. 천상의 선녀가 인간 세에 하세하여 기막힌 어떤 사연으로 승천하지 못하여 그 한이 어려 산으로 화했다는 옥녀는 전설상의 여주인공이다. 옥녀는 천상의 선녀 또한 인간 세상의 옥같이 귀한 딸을 두고도 그렇게 이름 짓는다.
대개 옥녀봉의 전래 설화는 네 유형으로 분류되는데 이는 풍수가에서 흔히 사용되는 용어이다. 옥녀가 거문고를 탄다는 옥녀탄금형으로 이 근처에는 금(琴)자가 든 지명이 보인다. 옥녀가 머리카락을 풀어헤치고 있다는 형의 옥녀산발형으로 이 부근에는 거울, 빗, 분과 관계되는 땅 이름이 보인다.
옥녀는 외딴집에서 아버지와 단둘이 살았는데 어느 날 아버지가 혼기에 들어서는 딸에게 덤벼들어 범하려 하자 옥녀는 아버지를 피해 옥녀봉 꼭대기에 올라가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다. 옥녀가 떨어져 죽은 곳은 아직도 핏자국이 선명해 비가 오는 날은 바위에서 빨간 핏물이 흘러내린다고 한다.
시대마다 총각과 순결을 나눈 처녀는 그 이름이 옥녀였으며 옥녀는 그 마을에서 가장 아리따운 여인이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의 딸이 적어도 그렇게 되기를 소원하며 옥녀라는 이름을 지어주웠을 것이다. 우리가 살아온 촌락마다 옥녀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들이 있는 것은 자랑스러운 것이다.
아시아권역에서는 동이족 이래 고대국가마다 군장이 갖는 상징적인 유물로는 삼 태극 문양과 곡옥 그리고 청동 검이었다. 왕권을 상징하기도 하여 증표로 하사하기도 하였다. 한반도와 궁궐에는 태극 문양을 그리고, 금관에 구부러진 옥을 달고, 검을 하사하니 역사적으로 정통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