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리회 설교(說敎)

함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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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7-30 21:03:28
설교(說敎)

산돌 함창석 장로

한국 기독교 초창기에는 설교를 진리를 가르치고 전한다는 뜻에서 '강도(講道)'라 하였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해설한다는 뜻에서 '강해', '강설', '강론'이라고도 했으며, 주님의 말씀을 권하고 격려하여 힘쓰게 한다는 뜻으로 '권면'이라고도 했고, 아예 '말씀'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설교는 종교의 교리를 설명하는 것이며 어떤 일의 견해나 관점을 다른 사람이 수긍하도록 단단히 타일러서 가르침이다. 회초리로 쳐서 가르쳐 배우도록 주로 ‘이야기하다’나 ‘서술하다’, ‘유세하다’와 같이 입을 벌려 크게 말한다는 뜻이 있다. 유의어로는 강론, 설법, 잔소리 등이 있다.

說은 뜻을 나타내는 말씀언(言 말씀)과 음을 나타내는 글자 兌(열)로 이루어진다. 말(言)로 나타낸다는 뜻이 합하여 ‘말씀’을 뜻한다. 八(팔)은 분산하는 일, 兄(형)은 입의 움직임을 일컬으며 음을 나타내는 兌(탈, 열)은 큰소리를 질러 화락함이고 그것은, 이것은 무엇이라고 구별함을 說(설)이라.

說자의 구성을 보면 그 이유는 言자와 兌(기쁠 태)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兌자는 입을 벌려 웃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기쁘다’라는 뜻을 갖고. 이렇게 입을 벌린 모습을 그린 兌자에 言자가 결합한 說자는 누군가에게 웃으며 말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견해(見解), 주의(主義). 학설(學說) 이다.

敎자는 ‘가르침’이라는 뜻이다. 爻(효 효)자와 子(아들 자)자, 攵(칠 복)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한자어에서 爻자는 두 가지 뜻으로 쓴다. 하나는 ‘배우다’이다. 學(배울 학)자가 그러하다. 다른 하나는 단순한 모양자로 쓰인 希(바랄 희)자가 그러하다. 여기에 쓰인 爻자는 ‘배움’이라는 뜻을 전달한다.

敎자는 爻자에 子자와 攵자를 결합한 것으로 ‘아이가(子) 공부를(爻) 하도록 하다(攵)’라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회초리를 들어 아이를 가르친다는 뜻이 된다. 고대에는 이것을 ‘가르침’이라 했다. 그래서 改(고칠 개)자와는 크게 다르지 않지만 爻자가 있으니 이것은 공부와 관련된 글자이다.

설교는 교리를 사람들에게 전하거나 신도들에게 가르치기 위하여 경전을 풀어 이야기하는 행위이다. 설교 방법에는 성경 본문을 중심으로 설교하는 강해설교, 어떤 제목을 중심으로 하여 설교하는 주제설교를 비롯하여, 윤리적인 설교, 변증적인 설교, 교리적인 설교, 간증 설교 등이 있다.

설교는 주로 프로테스탄트 쪽에서 쓰는 말이며, 구약시대의 예언자의 전통과 회당 예배의 전통을 이어받아 그리스도를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써 증언한 초기교회에서는, 성찬과 함께 없어서는 안 될 예배의 요소가 되었다. 가톨릭교에서는 '강론'으로 불교에서는 '설법'이라고 한다.

설교는 신도들로 하여금 그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의 만남을 체험하도록 함으로써 자신의 죄악을 회개하여 사죄의 은총을 덧입게 하여 새로운 자세로, 새 사람이 된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가게 하려는 데 있다. 설교에는권위가 있어야 하며, 설교자는 모름지기 성령의 능력을 덧입어야만 한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성경)을 근거로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고, 설명하며, 권고하는 일이다. 하나님의 구속하시는 은혜의 복음을 전하여 믿지 않는 사람들이 믿음으로 응답하고 믿는 사람들이 더욱 하나님의 은총을 감사하며 그들의 삶을 구주와 주님이신 하나님에게 맡기도록 하는 데 있다.

세례요한이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기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하였으니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시기를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사도된 바울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라.

권하여 백성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였으니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오.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오.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오.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오. 기록 된 바 참 아름답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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