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지나친 호란

도현종
  • 1458
  • 2019-07-29 04:59:49
감리교회 어디로 가야하는가? 갈길은 멀지않다.그러나 주님을 떠나면 이호란처럼 비참하게 갈뿐이다. 시스템의 부족이 아니다. 성령 충만함의 부족이다.

중국 역사상 최초의 천하 통일이라는 위업을 달성한 진시황은 인간적으로 어두운 그늘이 많은 존재였다.

진시황은 타국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어머니와 둘이서 타국에서 살면서 행여나 잡혀가 죽지는 않을까 하는 생사의 관문을 시도 때도 없이 넘나들었고 13세에 아버지를 잃고 최고 권력자 자리에 올랐다. 남편을 잃은 젊은 요녀 어머니는 젊은 혈기를 다스리지 못하고 진시황의 생부인 여불위와 옛정을 되살리는 불륜에 탐닉했다. 

생부인 여불위는 성장해 가는 아들의 시선이 두려워 과거 자신의 애첩이었던 태후와의 관계를 끊으면서 자신을 대신할 노애라는 건장한 사내를 갖다 바쳤다. 태후는 이 사내와 마구잡이로 놀아났고 자식을 둘이나 낳았다. 점점 간이 커진 어머니와 사내는 급기야 아들의 권력까지 넘보기 시작했다. 그것도 모자라 인물이 잘생긴 이들과의 간통 사건이 수없이 이루어진 사실을 알게된 아들 진시황은 이들을 제거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진시황은 또 암살 노이로제에 시달렸다. 무려 세차례나 암살 위기를 넘겼다. 이 때문에 자신의 침소를 절대 비밀에 붙이는 등 인간을 불신하는 성향이 그를 지배했고 결국 인간의 역할이나 작용보다는 시스템을 더 믿는 쪽으로 발전했다.

진시황은 그 자체로 콤플렉스 덩어리였다. 아버지의 사랑을 거의 받지 못한 채 최고 권력자에 올랐고 어머니에 대해서는 극도의 증오심을 품게 됐다. 

실세 여불위에 대해서는 늘 두려움을 느끼며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어머니의 난잡한 성 생활은 어머니는 물론 모든 여성에 대해 극도의 환멸감을 갖게 만들었다. 그가 평생 정식 황후를 두지 않은 것도 이와 연관이 있다.

그의 성격은 우울하고 음침했다. 유년기를 늘 혼자서 보낸 탓에 어둡고 생각이 많았다. 모든 것을 혼자 생각했고 상상을 통해 미래를 시뮬레이션하는데 익숙했다. 상의할 대상도 대화 상대도 없었다. 독단적 성격의 형성은 기정사실이었다.

암살 위협도 그의 성격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어둡고 우울한 성격에 보태어 아무도 믿지 못하는 극도의 신경질적인 의심증까지 형성된 것 같다. <사기> ‘진시황본기’에 따르면 함양 부근에 엄청난 규모의 휴식 겸 놀이공간을 만들어 놓고 자신이 행차해 머무를 경우 그 거처를 누설하는 자에는 모두 사형에 처했다고 한다. 진시황의 암살 공포심과 의심증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천하통일 이후에는 자신의 제국을 작동시키기 위한 시스템 마련에 심혈을 기울였고 그 시스템을 몸소 점검하기 위해 엄청난 규모와 장기간에 걸친 제국 순시를 햇수로 13년 동안 다섯차례나 단행하는 의욕을 보였다. 

한차례 순시를 나가기 위한 준비와 그 규모 및 기간을 감안하면 순시에서 돌아오자마자 바로 다음 순시를 준비했다는 것이고 통일 후 죽기 전까지 거의 절반 가까이를 외부에 있었다는 뜻이 된다.

여성혐오와 과부 청은 진시황과 관련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 중 하나다. 정식 황후를 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생모를 제외하고 진시황과 관련된 여성이라면 진시황의 기록에서 어머니를 제외하고 여성에 관한 것은 과부 청이 거의 전부다. 그만큼 과부 청에 대한 진시황의 관심이 남달랐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마어마한 권력을 가진 것도 모자라 여불위와 간통하고 나아가 천한 노애와 뭇 남성들과 음탕한 짓을 아무렇지 않게 저질렀던 어머니와는 너무 대비되는 여인 앞에서 진시황은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여인상을 발견했던 것 같다. 

우리의 고백은 주님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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