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마음이 들었었다.

민관기
  • 1363
  • 2019-08-18 12:21:11
89. 양화진 선교사 묘역 100주년 교회에서의 헐버트목사 추모식에서의 일이다.


일찍 서둘러 11시 행사에 10시 반경 도착햇다.
사회자의 안내로 식이 시작되자. 애국가, 순국선열과 애국지사 그리고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 국기에 대한 맹세를 비롯한국민의례가 있었다. 이제 앉아서 다른 순서를 기다리는가 싶었는데 사회자는 헐버트 목사님의 모국 국가 제창이 있겠다 한다. 노래는 누구가 한다. 그냥 서있었다. 노래는 역사청소년합창단의 청소년 둘이 해양경찰관현악단의 연주에 맞춰 노래를 부른다.


미국이란 나라 이름을 그 동안 십만번은 생각해봣을테이고, 5만번은 읽어 봣고, 만번은 써봤으며, 천번은 어떤 이와 주제로 대화를 나눠봤을 미국. 그 나라의 국가는 내 생전 30번은 들어봤으나 누구의 모국 국가 연주로써 듣는건 처음이다.
더욱이 헐버트 목사 추모식에도 10번은 참여해왔으나 미국가를 연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 모. 추모식의 당사자 나라 국가이니 예의상 하는것이니 들어주는 것이 예의라 생각하고 그냥 있는데, 듣는순간 웬지 모를 뭉클함이 가슴속으로 스며들어 왔다. 난생 처음 있는 있는 일이라 순간 약간 당황을 하였다. 어후~ 내가 왜 이러지? 가슴을 후벼파고 일렁거리고 눈시울도 약간 젖어드는 나를 보며 그 나라 국민이었던 헐버트 목사를 다시 한 번 생각했다.


그래. 그 나라 국민으로 그 나라가 대한인 편을 안드는 가운데 행한 목사님의 그 고뇌와 수고가 한 순간 밀려왓다. 황제의 특사로 미국에서 헤이그에서 활동하였고, 황제의 명령으로 홍콩 독일은행에 예치된 황제 내탕금 5만원(쌀1원 당시)을 찾으려다 이미 인출하여간 왜에 대한 분노. 끝내 황제의 명을 수행하지 못한 것을 평생의 한으로 삼고 대한을 위해 산 그의 생애 63여 년간이 순식간에 내 머리를 흘러 지나갔다.

헐버트는 1949년 자신의 조국보다 더 사랑한 대한으로 국빈방문하기 전 스프링필드유니언이란 잡지의 기자와 인터뷰를 했다.

"한민족은 세계에서 가장 빼어난 민족 중 하나다"란 놀라운 인터뷰 였는데 그 이유를 이렇게 들었다.
1. 한민족은 보통 사람도 1주일이면 터득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문자 한글을 발명했다. 한글은 각 글자마다 하나의 소리만 있는 우수한 글자다.
2. 한민족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만든 거북선으로 일본군을 격파하여 세계 해군역사를 빛나게 했다.
3. 오래 전 한 왕에 의해 고안된 '역사기록문화'이다. 왕은 역사기록청을 만들어 국사를 편견없이 적게하고 매 3년마다 기록을 정리하여 세 부씩 만들어 각기 다른 장소에 보관토록했다. 이 기록물은 절대적 기본 역사서로 기능하고 있으며, 이러한 기록문화는 세계사에서 유일하다.
4. 한민족은 세계사에서 가장 빼어난 '이민족 흡수문화'를 보여주었다. 기원 전 1122년 기자箕子가 5천명의 중국인을 이끌고 넘어왔을때 한민족은 이들을 토착화하여 한민족으로 만들었으며, 어떠한 내분도 없이 1천년 역사를 이어갔다.
5. 헐버트는 자신이 가장 고귀하게 여기는 가치로 1919년 3.1혁명때 보여준 한민족의 충성심이다. 비폭력으로 전개된 만세항쟁은 한민족이 야만적인 민족이 아님을 증명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사전에 만세항쟁 계획을 알면서도 일본 당국에 밀고하지 않은 것은 그들의 민족에 대한 충성심이 어떠한지를 여실히 증명하였다. 3.1혁명은 세계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애국심의 본보기이다.


헐버트가 죽음 50여일 앞두고 우리도 간과한 선조들의 위업을 들어 한민족을 세계에서 가장 빼어난 민족이라고 천명한 것이다. 미국의 국가를 들으며 느껴졋던 마음의 그것은 헐버트 목사님의 이러한 인식하 우리 민족과 함께한 그 정신과 실천에서 였을 것이다.


하여, 난 앉아서 생각해 봤다. 그래 내가 아무리 목사님을 존경한다하여도 자신의 본국 입장과 다른 주장을 하고 자신의 나라 대통령에게도 조선에 대한 약속을 지키라고 주장하고 약속을 안지킨다고 거짓말쟁이라고 하는 그의 삶속에 모든 것을 온전히 몸으로 느끼지는 못하고 그냥 겉으로만 목사님을 이해해 왔던 것은 아닐까 추모식 내내 생각에 잠겼었다.


행사는 감리회 서울연회 원성웅감독을 대행하여 신현주 총무가 기도하였고 해리스 미대사 그리고 김원웅 광복회장 등의 추모사 그리고 탈북청년 이화여대 국문과 김다혜양의 목사님에게 보내는 편지 낭독. 그 내용은 2015년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양화진 방문중 "스크랜튼 선교사와 헐버트 선교사님"을 만나게 되었다며, 자신은 북한 학생시절 "선교사들은 조선에 와서 어린이들을 잡아다 파는 나쁜 사람들이라는 교육"을 받고 자라 선교사님들을 통해 완전히 다른 것을 알게되었으며, 목사님에게 빚을 진 우리들로써 열심히 공부하겠단 서신 낭독이었다.
또한, 헐버트기념사업회의 자문위원으로 활동중인 감리회 백영찬 장로가 감사패를 전달받았는데 이는 기념사업회 역사상 처음있는 일이었다 한다. 사실 기념사업회는 처음 시작한게 장로교 평신도이어서 사업회나 헐버트의 위상과 홍보나 그 방향이 큰 진전을 못보고 있던중 감리회 장로가 자문위원이 된 이 후로 추모식에 감리회 인사들이 대가 참여하고 순서를 맡고 후원을 하여 사업회의 활성화에 크게 기여하여 왔다. 사실, 감리회가 이렇게 나서기 전에 불과 십수명이 교회 안도 아닌 밖에서 조촐하게 추모식을 하다가 지금은 수백명이 참여하고 각 국가기관에서 후원하고 참여하니 기념사업회는 앞으로 더 큰 발전이 있으리라 기대가 된다. 백영찬 장로님 수고하셨고 축하드립니다.


그렇게 추모식은 마무리 되었고 끝나고 나오며 신현주 총무님에게 앞으로 감리교회 출신 독립유공자의 추모식은 감리교회의 완전한 주도로 함이 좋지 않겠는가 말씀을 드렸고, 같이 참석한 한휘언 동대문교회 장로님에겐 아까 미국가를 부를때 난생처음 뭉클했었어요했더니 뭐라고 뭐라고 하셨는데 기억이 안난다.


이번주 동대문교회 항일성지 선포식 자리에 가서 한장로님에게 다시 여쭤봐야 겠다.
글을 쓰다보니 마이 늦었다. 손정도 목사님 포럼에서 있었던 일도 쓰고 싶었는데 이만 줄여야겠다.
이따 쓰자. 괜히 바쁘네. 하는 일도 벨랑 없으면서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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