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4국회 해석독도 손정도 목사 포럼 망햇다. 나의 바람.

민관기
  • 1371
  • 2019-08-19 21:53:02
나는 814 오후 2시 손정도 목사 포럼이 있단 소식을 중앙교회 소재 손목사기념사업회방문을 통해 알고 참석하였다.
참석전부터 강사가 장로교 둘. 감리교 하나였기에 좀 탐탁치 않았으나, 장로교 목사들까지 나서 손목사님을 칭송한다니
기분도 괜잔았다. 글쎄~ 뭐라고 할까들하며 참석했다.


1부 국민의례 : 개판이다.
*. 애국가는 1절 - 애국가는 국가유공자 계열의 행사에선 무조건 4절까지 불러야 한다. 예의 상실. 어이 상실.
*. 선국선열에 대한 묵념 - 순국선열이다. 또한 묵념은 순국선열과 애국지사와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으로 해야 한다.
보통은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만 하나 이것도 무식한 짓인데 순국선열도 아니고 선국선열은 무슨 해괴한 개념인지 정말 모르겠다. 개념 상실

정확한 워딩을 알려주겠다. 참고해라.
[순국선열과 애국지사 그리고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이 있겠습니다]이다. [혹, 주최 단체에 따라 세월호희생자나 민주영령에 대한 묵념을 추가하기도하고 어떤 단체에선 호국영령을 빼기도한다]
[순국선열은 왜에 의해 직접 죽임을 당한 선열]
[애국지사는 병사나 자연사 기타의 죽음을 맞이한 독립유공자 영령을 말한다]
[호국영령은 615 희생자를 뜻한다]

나는 일찌기 선국선열란 글자는 이 세상 태어나 첨본다.

2부 기념식 : 지나가고

3부 포럼 : 사회 - 이세홍 목사(장로교)
*. 발제 1 - 이상규(백석대 석좌교수 장로교측)
1) 손목사가 김성주의 어린시절 돌봐준 것 부인 곧, 북정권에서 제일 존경하는 목사인 손정도를 폄훼했다. 일단 손정도의 본인 기록에 김일성의 이름이 단 한번도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으로 손과 김의 관계를 부정했으며, 손과 김의 관계는 오로지 김일성의 기록에만 있기에 "김일성 초기생애에 관한 많은 특성들은 북한의 통치자로서의 정치적 조작의 산물이다"란 서대숙의 말을 인용했다.
2) 손목사의 만주선교를 민족운동 차원이라 말하는 것은 과도한 민족주의적 해석이라 매도했다 - 해석은 만주선교사 임무 수행중 가츠라공작 암살모의사건에 연루되어 피체 고문 진도유배 당했다. 하며 그는 만주선교의 요구란 해석의 글을 보면 민족독립운동에 대한 요구가 없는 것이 그 이유라 밝혔는데 이 또한 매도한 것이다. 왜냐면 선교요구를 하는 보고서이고 기독신보라는 국내 발행 신문에 독립운동 얘기를 대놓고하는 무식한 자가 어디있었겟는냐는 것이다.
있어도 숨기는 것이 독립운동의 기본이다.

여타의 것이 있지만 짧게 줄인다. 이 사람의 결론은 손과 김의 관계 부정이다. 이렇게 결론을 맺는다.
"손과 김간의 교류에 대한 북한측 자료를 다시 검토하고 손목사의 기여와 역할을 새롭게 정립하는 계기가 되었으면한다"


*. 임희국 교수(장신대 역사신학) - 해석의 임정 참여를 중심으로
1). 다 맞는데 안 맞는 개황당한 주장을 했다.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처음 민주공화제 채택이라 해놓고 그 이유를 의정원의 다수가 장로교 목사와 장로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이것은 국내 장로교회 헌법 원리가 채택된것이며, 조소앙이 장로교 헌법을 연구해 참조하였을 수도 있다고 했다.
의정원 10개조 헌법정신이 장로교회 헌법의 정신을 이어받았다 주장하며 주석을 달아 [이 부분에 대한 자세한 서술은 연구과제로 남겨두기로한다]라고해 책임을 회피했다.

또한, "31운동의 장-감리교회 참여는 우발적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장로교 헌법정신에 명시된 신앙정신의 사회정치적실천이었다 본다"라는 많이 이상한 소리를 남겻다. 기타도 많지만 줄인다.
""의정원의 민주공화제 구상은 국내 장로교회의 헌법원리에 상응한다고 본다"


*. 이덕주 교수(감신대 전 교수, 한국교회사) - 손정도와 안창호의 신뢰와 협력..
대체로 사리에 맞는 주장을 하였으나 부록으로 첨부한 도산과 해석의 생애 비교연표에서
"1895년(13세) 오신도와 결혼"이라 기록하여 청중들에게 재미난 웃음을 제공했다. 오신도는 손정도 엄마다.
"도산과 해석의 죽음을 <별세>"라고 표기했다. 독립유공자에 대한 능멸과 멸시의 표현이다. <서거>라고 해야 마땅하다. 이교수는 한국교회사중 독립운동 계열 연구의 일인자라 하는데 국가 유공자의 죽음 표현을 서거라 하지 않고 일반인의 죽음처럼 별세라한다? 이거 좀 많이 이상한거다.

한편, 이교수는 논찬(윤경로 한성대 전 총장 - 장로교 통합)자인 윤총장이 31혁명 어쩌구하자 "자신은 31혁명이란 호칭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했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운동과 혁명의 차이를 몰라서이기도 일 수 있지만 그의 깊은 속에선 31 격하가 가지는 의미인 임정을 별것 아닌 일반 독립운동 단체격으로 격하시켜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건국절화하려는 의도는 있지 않은가하는 상당한 의심을 내가 하였다. 뉴라이트 계열 발기인을 했단다. 그가. 맞소? 이교수.


&. 2시부터 시작해 4시반이 되어서야 3명의 발제와 논찬자의 순서가 마무리되고 한 10여 분 질문시간이 있었다. (이것도 말이 안되는게 자기들은 40분 이상씩 주장해 놓고 - 글을 말로 짧게 요약하는 능력이 모두 부족해 보였고, 이상한 주장을 늘어놓고 질문은 10 여분 거참했지만..


내가 첫질문을 두가지의 지적과 함께 했다. 질문 딱 30초 하겠다하고 사회자의 허를 받았다.(마이크가 없어 큰소리로)
*. 지적은 손원일은 장남이지 막내가 아닙니다. 발제자가 손원일을 막내라 발언했기에 지적.
*. 어찌 아들 손정도가 엄마 오신도가 결혼을 했다는건가요? 지적 = 둘다 답을 들을 필요도 없는 당연한 지적이다.

질문 : 해석 도산 전문연구자들 이신거 같은데. (이 말은 안하고)
"해석과 도산이란 두 분의 호 뜻은 독도라고 생각합니다".라고 일방적으로 말하고 앉았다. (어느 분이 '아멘'이라 크게 소리질럿다) 두 분의 생애를 관통하는 민족운동 정신의 발로가 어디였었는가에 대한 진지한 실천적 고민들을 안했다는 증거가 호에 대한 연구나 언급이 전혀 없었다는 것에서 이미 들어낫기 때문에 나는 그들의 답을 들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사실, 해석과 도산에 대한 나의 호에 대한 뜻은 명증하다. 당시 최고의 민족지성들이 왜의 조선 침탈 1호가 독도였음을 안다는 것은 기본이었다 생각하기에 나는 이 감게에도 두어번 손정도목사의 호 해석은 독도를 말하는 것이라 글의 제목으로도 오늘도 썻지만 이전에도 썻었다.


해석은 바다의 돌이며.
도산은 섬산이다. 독도라는 것이 타당하지 않은가?

그러고보니 지적과 질문 다 대답을 들을 필요가 없는 것들이었다. 지적 질문은 30초. 답은 0초.



근데, 왜 망했냐고요?
1) 손정도라는 대북무기 잃었다.
2) 장로교회가 임정의 뇌수가 되었다.

이런거다. 그 곳에서의 발제에도 있었지만 1907년 이기풍을 해외선교사로 파송했다라고 주장했다. 제주도가 무슨 외국이라고. 그런데 그들은 그렇게 주장하고 쓰고 또 인용한다. 장로교회의 고질병중 하나인 역사침탈이 심각해진 상황이다. 여타 장로교인들은 그 날의 자료를 무한정으로 인용해 쓸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참고) 장로교회의 역사왜곡은 상상을 초월한다 : 손정도 목사의 만주선교사 파송을 숭실대 100년사에선 자신들이 했다 주장하고 1페이지에 대문짝만한 사진과 함께 실었다. 자기들의 동문이면 동문이지 무슨 선교사로 자신들이 파송을 하나? 이런 개소리들은 아주 매우 장로교회 문서들에 등장한다. 얘들아~ 짜증난다. 아프론 내가 가만히 안 있으면서 니들을 가마니 있게 해주께. 기다려라. 응~.

내가 바라기는 그 날의 포럼이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져 가기를 바란다.

-끝-
으로 이 발제를 지켜본 미국에서 온 동포 목사는 크게 실망했다라며 나와 백영찬 장로에게 연락처를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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