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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강해: 영육의 원리 (8.18 주일 설교요약)
오세영
- 1307
- 2019-08-19 17:17:04
빌립보 감옥에 갇힌 바울과 신라는 사실 무척 억울하기도 하고 쓰라린 밤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누명을 쓰고 감옥에 있는 것이며 많은 매를 맞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한 밤중에 기도와 찬송을 드리게 되었고 그러던 중 지진이 나며 옥문이 열리고 손발에 매였던 것들이 저절로 풀어지게 되었는데 모든 죄수들에게도 기적적인 일이 일어났습니다.
분명 기도와 찬송이 있었기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지진이나 감옥의 문이 열리거나 매인 것들이 풀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그저 기도하고 찬송을 하였습니다.
기도와 찬송을 드렸던 것은 그 자체가 감사 한 것 밖에 없었습니다.
주를 위해 핍박과 고난을 받는 이가 복이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감옥에서 기이한 일들이 벌어진 것은 기도를 그렇게 하였다기보다도 바울과 신라가 가지고 있는 믿음의 힘입니다.
고통 가운데서도 찬송과 기도를 감사로 드릴 수 있다면 과연 지진이 나며 옥문이 열릴만 합니다. 이것이 영육간에 있어 힘의 원리인 것입니다.
바울과 신라가 가지고 있었던 믿음은 능히 기이한 일들이 일어나게 할 수 있는 힘이 있었습니다. 주님은 겨자씨 알 만한 믿음만 있어도 이 산을 들어 옮길 것이라 하였습니다.
뽕나무를 뽑아 바다에 던지우게 될 것이라 하셨습니다.
바울과 신라가 그 상황에서 믿음을 보인 것이 바로 찬송과 기도 였습니다.
인도의 성자 썬다씽이나 성 프랜치스코의 일대기를 보면 참으로 기이한 일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바울과 신라가 갇힌 감옥보다도 더 깊은 감옥에서 빠져나오기도 하고 사나운 짐승들이 그 앞에서 순종하기도 했습니다.
영적 세계가 육적 세계를 다스리고 정복하는 것입니다.
바울과 신라가 처한 상황은 사실 우리 모든 인생들이 만나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역시 지진이 필요하고 감옥의 문이 열려야 하며 손발에 매인 것들이 풀어져야 합니다.
그 만큼 인생의 길이 험악하고 고난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고통의 밤이 깊다하여도 영적 힘 즉 믿음이 충만하면 문제 될 것이 전혀 없습니다.
고통의 밤 그 상태에서도 감사와 기뻐 할 수 있을 뿐아니라 결국 지진이 나고 감옥의 문이 열리고 손발이 자유로워지는 일들이 눈앞에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바울과 신라와 같은 고난의 밤이 주어질 때, 그 때가 간절히 기도하고 찬송할 때 입니다.
인생의 깊은 밤을 만났을 때 주님은 더욱 가까이 계시고 함께 하십니다.
마치 자녀가 아플 때 부모의 마음이 더 애절한 것과 똑 같습니다.
주님께서 우리가 괴로울 때 안타까워 하시면서도 그 고난을 허락하시는 것은 오직 우리를 더욱 긴밀하게 만나주시기 위함입니다.
고난 가운데서 감사함으로 기도와 찬송을 할 수 있다면 누구에게나 문이 열리고 풀어지며 자유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역사하시는 순서는 항상 이러한 것입니다.
먼저 영적인 힘이 충만하게 하시고 그리고 육적인 변화를 일으키십니다.
영적인 세계에서 승리하면 육적인 세계는 자연적으로 순종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가난한 자 같지만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주님은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한 일을 할 뿐 만아니라 더 큰 일도 하게 되리라 하셨습니다.
주님은 갇힌 자를 눌린 자를 포로된 자를 자유하게 하시기 위하여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이러한 자유가 내 심령에서 먼저 일어나야 합니다.
고난의 밤을 만났다하여도 기도하고 찬송하는 믿음이 되었다면 즉 감사하고 기뻐하는 능력이 있다면 누가 그의 가는 길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그는 고난 자체 가운데서도 능히 이기고 있지만 실제 그를 억압하는 모든 것을 제어 할 수 있는 상황이 때를 따라 벌어집니다.
주님은 우리의 인생길에서 이렇게 역사하시는 분입니다.
나와 동행하시고 내 안에 계시며 나와 함께 먹고 마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고난의 밤을 만났을 때 더욱 힘써 주님을 부르십시오!
이것이 그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하셨습니다.
영적 세계가 육적 세계를 지배하는 것입니다.
영적 능력이 충만하면 육적인 모든 것들이 순종하게 됩니다.
바다를 잔잔케 하신 주님께서 바다를 보며 두려워하였던 제자들을 믿음이 없다고 책망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