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전 전 현직 감독들에게 전하는 메세지

장운양
  • 2237
  • 2019-08-29 13:34:19
참으로 존경하는 목사님의 교회에서 수요예배를 드리고 저녁은 먹었냐고 물어 보시는데 약간 갈등하는 것을 보시고서 교회 근처 식당으로 가서 말씀을 들었다. 최근에 역사책에 더 관심을 가지시는 듯 했다. 교보에 들려 구입하신 책 세권 톰 라이트 그리고 선한용 교수님의 어거스틴 고백록과 근래에 펴내진 해설서 등 모처럼 만에 반갑고 귀한 대화를 나눴다.

하지만 상암동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매우 헛헛하고 안타까웠다. 대화를 나누면서 당연히 감리회소식에 글을 쓰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가 되었고 기독교대한 감리회가 도대체 어느 지경까지 왔는지에 대해서 많이 혼란스러웠고 목사님이 말씀하신 왜? 어느 감리교회든 새벽기도회를 담임목회자가 매일 매일 설교를 해야만 하는 지에 대한 말씀이 사무치게 공감이 된다.

이제 1시간 후면 가까운 감리교회에 새벽기도를 드리러 갈 시간이다. 나는 집에 돌아와서 미국으로 떠난 큰딸이 남겨준 가장 귀한 선물 유진 피터슨 목사님이 10년동안의 기도와 감격과 감동과 탄식으로 번역하신 메세지 구약 예언서를 펼쳤다. 그리고 문득 지난 가을 강릉에서 목회하는 친구 목사가 당당에 연재했던 글이 섬광처럼 스쳤다. 나는 다시 에스겔서 23장을 펼쳤다. 본문을 그대로 기록한다.

욕정에 사로잡힌 두 음녀 에스겔서 23장

하나님의 메세지가 내게 임했다. 사람의 아들아. 두 여인이 있었다. 그들은 한 어머니에게서 났다. 그들은 어려서부터 이집트에서 창녀일을 했다. 사내들이 그들의 유방을 애무하고, 그들의 어린 젖가슴을 만지작거렸다. 그들의 이름은 언니가 오홀라요, 동생은 오홀리바다. 그들은 내 딸들이었고, 각기 아들딸을 낳았다.

오홀라는 사마리아고, 오홀리바는 예루살렘이다. 오홀라는 내 슬하에 있을 때부터 창녀짓을 하고 다녔다. 그녀는 앗시리아 사람들에게 욕정을 품었다. 푸른 제복을 말쑥이 차려입은 지휘관들, 특사와 총독들, 멋진 말을 탄 젊은 미남자들에게 말이다. 오홀라의 욕정은 제어불능이었다.

그녀는 앗시리아 엘리트들과 음행하고, 그들이 섬기는 우상으로 자신을 더럽혔다. 오홀라는 지칠 줄 몰랐다. 어렸을 적 이집트에서 시작한 창녀짓을 줄기차게 계속하며 사내들과 잠자리를 같이했고, 사내들은 그녀의 젖가슴을 가지고 놀며 정욕을 쏟아 냈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그토록 탐하는 앗시리아 사람들에게 그녀를 내주었다. 그랬더니 그들이 그녀의 옷을 찢어 벗기고, 그녀의 자식들을 빼앗아 갔다. 그리고 결국 모욕을 주며 그녀를 죽였다. 이제 그녀는 여자들 사이에서 '수치'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그녀에게 떨어진 역사의 심판이다.

그녀의 동생 오홀리바는 그 일을 다 지켜보았으면서도, 언니보다 더 심하게 욕정을 좇으며 창녀짓을 일삼았다. 그녀도 앗시리아 사람들에게 욕정을 품었다. 특사와 총독들, 말쑥한 제복을 입고 멋진 말에 올라탄 지휘관들, 곧 앗시리아의 엘리트들을 향해 그렇게 했다. 그녀도 언니만큼이나 더러워질 대로 더러워졌다.

두 여자 모두 같은 길을 간 것이다. 그러나 오홀리바는 언니를 능가했다. 그녀는 허리에 화려한 띠를 두르고 머리에 멋진 관을 쓴, 바빌론 사람들의 모습에 새겨진 적색 벽부조를 보더니, 중요한 인물 같은 그 모습에 반해 욕정을 누르지 못하고 바빌론으로 초대장을 보냈다.

바빌론 사람들이 한걸음에 달려와서 그녀와 간음하며 안팎으로 더럽혔다. 그들이 그녀를 철저히 더럽힌 뒤에야, 그녀의 마음이 그들에게서 멀어졌다. 오홀리바는 아예 드러내 놓고 음행을 하며, 치부를 온 세상에 드러내 보였다. 나는 그녀의 언니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녀에게도 등을 돌렸다. 그러나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그녀는 전보다 더 심하게 창녀짓을 임삼았다. 어린 시절 이집트에서 막 창녀생활을 시작했을 때를 생각하며 더 추잡하고 저속하고 난폭한 남자들 - 욕정에 사로잡힌 종마들 - 과 욕정을 불태우고 싶어 했다. 그녀는 이집트에서 남자들이 자기의 어린 젖가슴을 애무하던 시절을 그리워했다.

그러므로, 오홀리바야, 주 하나님의 메세지다. 내가 너의 옛 정부들, 네가 싫증 냈던 그들을 충동질하여 너를 치게 하겠다. 바빌론 사람과 모든 갈대아 사람, 브곳과 소아와 고아 사람, 모든 앗시리아 사람 - 젊은 미남자들, 특사와 총독들,

엘리트 고관과 유명인사들 - 이 사방에서 너를 치러 올 것이다. 모두 멋지고 혈기왕성한 말을 타고 올 것이다. 완전무장한 그들이 전차와 병력을 이끌고 북쪽에서 밀고 내려올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심판의 임무를 맡기겠다. 그들이 자신들의 법에 따라 너를 처단할 것이다.

그들이 맹렬한 공격을 퍼부을 때 나도 가차 없이 너를 대적할 것이다. 그들은 네 사지를 절단하고, 네 귀와 코를 잘라 내고, 무차별적으로 학살할 것이다. 그들이 네 아들 딸을 종으로 붙잡아 가고 남은 자들을 불태울 것이다. 네 옷을 찢어 벗기고, 네 장신구들을 빼앗아 갈 것이다.

너는 더 이상 창녀짓을 꿈꾸지 않고, 더는 이집트 생활을 추억하지 않을 것이다. 주 하나님의 메세지다. 나는 너를 네가 증오하는 자들에게, 네가 퇴짜놓은 자들에게 넘겨줄 것이다. 그들이 너를 증오하여 너를 발가벗기고, 음행하던 네 몸뚱이를 백주 대낮에 공개적으로 전시할 것이다.

너의 음란한 짓이 만방에 폭로되리라. 네 욕정이 너를 이 지경으로 이끌었다. 너는 이방 민족들과 바람을 피웠고, 그들이 섬기는 우상으로 스스로를 더럽혔다. 너는 네 언니를 그대로 따라했으니, 네 언니가 마셨던 잔도 받아야 할 것이다.

이는 주 하나님의 메세지다.

너는 네 언니의 잔을 마시게 되리라. 협곡처럼 깊고 대양처럼 넓은 그 잔을 남김없이 비우고, 따돌림과 조롱을 당할 것이다. 너는 취해 비틀거리다 자빠질 것이다. 네가 눈물 흘리며 마시게 될 거대한 그 공포의 잔은, 네 언니 사마리아가 마신 잔이다.

너는 그 잔을 깨끗이 비우고, 산산조각 내어, 조각까지 씹어 먹으리라. 그리고 마침내 네 젖가슴을 쥐어뜯으리라. 내가 말했다. 주 하나님의 포고다. 그러므로 주 하나님이 말한다. 네가 나를 아주 잊고서 등 뒤로 밀쳐놓았으니, 이제 너는 네 행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음란에 빠져 창녀짓을 저지른 값을 치러야 한다.

그때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아, 오홀라와 오홀리바를 심판하지 않겠느냐? 간음에서 살인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지금껏 저지른 모든 역겨운 짓을 그들 앞에 들이대어라. 그들은 우상과 간통하고, 내 자녀인 그들의 아들딸을 제물로 잡아 우상의 상에 올리기까지 했다!

거기에 더하여, 그들은 나의 거룩한 성소를 더럽히고 나의 거룩한 안식일을 범했다. 제 자식을 우상에게 제물로 바치던 날, 그들은 나의 성소에 침범해 들어와 그곳을 더럽혔다. 그것이 바로 그들이 한 짓이다. 나의 집에서 !
그뿐 아니라, 그들은 먼 곳까지 특사를 보내 사내들을 초청했다.

두 자매는 좋다고 달려온 그 사내들을 맞으려고, 몸을 씻고 화장하고 야한 속옷을 입었다. 그들은 향과 기름으로 - 나의 향과 기름으로 - 단장한 호화로운 침대에 몸을 기대고 누웠다! 술 취한 어중이 떠중이들이 몰려와서, 다투어 가며 두 자매의 팔에 팔찌를 끼우고 머리에 관을 씌웠다.

내가 '그 두 자매는 이제 퇴물이다!' 하고 말해 주어도, 그들은 막무가내였다. 창녀를 찾아 헤매는 자들처럼, 밤낮을 가리지 않고 두 자매의 문을 두드렸다. 그들은 그렇게 오홀라와 오홀리바, 그 한물간 창녀들을 이용했다.
의로운 자들이 그들에게 심판을 선언하고, 간음죄와 살인죄를 물어 실형을 선고할 것이다.

그렇다. 간음과 살인이 그들이 평생 해온 짓이다.

하나님이 말한다. 폭도를 모아 그들을 덮치게 하여라. 공포와 약탈이 일어나리라! 폭도가 그들을 돌로 치고 난도질 하게 하여라. 그들의 아들딸들을 다 죽이고, 집을 불태워라!

내가 이 나라에서 음란을 끝장내고, 모든 여자들이 너희를 보고 경각심을 갖게 할 것이다. 욕정에 사로잡힌 너. 그 값을 치를 것이다. 우상과 난잡한 짓을 벌인 너.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를 것이다.

그제야 너는 내가 주 하나님인 줄 알게 될 것이다."

사실 이 에스겔서의 본문들은 여성신학자들에게는 또 다른 차원으로 해석되고 있고 거기에는 귀한 인싸이트들이 번득거린다. 로즈마리 류터는 책에서는 대놓고 이 시대에서는 두 여성이 아니라 두 남성으로 남창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한 측면이 있다고 거침없이 일갈했다.

이 본문에 대해서 나는 내 생각을 언급하고 싶지 않다. 아주 군더더기없는 탁월한 해석과 성찰과 영성으로 엑기스를 뽑아낸 강릉의 벗 [김명섭목사의 말씀학교]가 왜 신학교 시절 신학도가 철저하게 성서를 공부하고 또한 다양한 독서를 통해서 이 성서의 말씀을 치열하게 here and now 견인해내야만 하는 지를 제시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강릉의 나의 벗은 이것이 참 힘겹고 어려운 길이지만 충분히 가능할 수 있음을 목회에 녹여내서 평신도들로 하여금 성서에 대한 일목요연한 이해와 함께 스스로 성찰하고 결단을 촉구하게 하는 기감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 말미에 직접 그 현장감있는 영상을 통으로 꼭 시청하시기 바란다. 전 현직 감독 한 명도 빠짐없이






[김명섭목사의 말씀학교]


보라색가운과 지팡이펜던트의 우상(에스겔 23장)



0. 에스겔 23장 메시지요약

에스겔서가 전하는 본래적인 메시지는 하나님의 심판 속에 담겨있는 변함없는 사랑이다. 신실한 남편을 저버리고 간음한 오홀라와 오홀리아의 모습을 통해 앗수르와 바벨론에 멸망한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전하고 있다. 고난에는 뜻이 있고 심판에는 목적이 있다. 패역한 남유다와 예루살렘을 향한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통해 모든 이들에게 반면교사 즉 패역한 자의 최후를 알게 하시는 본보기를 삼으신다. 고난과 심판을 통해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시려는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를 증거하고 있다. 에스겔은 매서운 고난과 무서운 심판을 통해 하나님의 숨겨진 뜻을 깨닫는 지혜를 촉구하고 있다.



1. 오홀라와 오홀리바의 행음

① (1절~4절) “오홀라는 사마리아요 오홀리바는 예루살렘이니라”

▶ 행음(간음)은 곧 우상숭배다. 우상숭배는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가리킨다. 행음은 단순히 성적인 일탈이 아니라 남편이나 아내가 순결한 언약을 파기하는 배반을 뜻한다. 오홀라와 오홀리바는 신실한 약속을 저버리고 앗수르와 바벨론을 섬긴 북이스라엘(사마리아)와 남유다(예루살렘)이다. 왜, ‘오홀라’와 ‘오홀리바’ 라고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을까? 하나님의 언약을 저버리고 다른 것을 더 사랑하며 행음하는 모든 이들을 통칭한다.



② (5절~8절) “내게 속하였을 때 행음하여 그 연애하는 자 앗수르를 사모하였으니 ”

▶ 이스라엘은 거룩한 하나님과의 언약을 맺은 순결한 신부였다. 에스겔은 이스라엘의 행음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고발한다. 6절 “그들은 자색 옷을 입은 방백과 감독이요 준수한 소년, 말 타는 자들이라” 자색 옷은 값비싼 보라색 염료를 사용하는 부와 권세를 상징한다. (눅16:19)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이스라엘은 빼어난 외모와 세속적인 권력을 하나님보다 더 소중하게 여겼다. 이는 오늘날 본래적인 사명을 저버린 채 세속적인 물욕, 명예욕, 권력욕에 빠진 보라색 옷을 입은 감독들에 해당된다.



③ (9절~10절) “그러므로 내가 그를 그 정든 자 곧 그 연애하는 앗수르 사람의 손에 붙였더니”

▶ 하나님의 징벌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대상의 지배 곧 노예로 전락하게 하신다. 돈을 사랑하면 돈을 노예가 되고 명예를 사랑하면 명예의 노예가 된다. 결국 사라지는 것, 두고 가는 것들을 사랑하면 자신의 사랑하는 것들로 인해 부끄러움과 치욕을 당하게 된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다. 오늘날 거룩한 직분보다 그 감투만을 좇다가 치욕을 당하는 교회지도자들의 모습을 본다. 사도바울은 이런 모습을 가리켜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는 어리석은 자”라고 책망한다.





2. 거룩한 예루살렘의 타락

① (11절~21절) “그 아우 오홀리바가 이것을 보고도 그 형보다 음욕을 더하며 그 형의 간음함보다 더 그 간음이 더 심하므로 그 형보다 더 부패하였졌느니라”

▶ 남유다 예루살렘은 북이스라엘이 행음함으로 앗수르에게 멸망한 것을 보고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더 심각한 우상숭배에 빠져 바벨론에게 멸망하고 말았다. 남유다의 타락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더욱 통탄하시는 까닭은 남유다는 거룩한 예루살렘성전이 있는 곳 곧 택하신 백성들이었기 때문이다. 반면교사였던 북이스라엘의 전철을 따라간 남유다처럼, 오늘날 한국의 개신교회는 중세 로마카톨릭교회 보다 더 타락한 교회라는 오명을 받을 정도로 세속적인 교회로 전락했다.



② (22절~24절) “내가 심문권을 그들에게 맡긴즉 그들이 그 심문권대로 너를 심문하리라”

▶ 남유다의 성읍과 예루살렘성전은 바벨론의 칼과 창에 돌 위에 돌 하나 남김없이 무너지게 된다. 바벨론은 심판의 도구 곧 심판의 막대기일 뿐이다. 남유다의 멸망은 결코 힘이 없어서 바벨론에 의해 망한 게 아니라 하나님을 저버린 우상숭배 곧 행음의 결과라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다. 감리교회가 지난 십년간 법정소송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사실 세상 법정이 사회법에 의해서 교회를 판단을 받는 것이 아니다. 사회법정은 철저하게 교회법인 교리와 장정에 따라 감리교회를 판단하고 있다. 우리의 불의와 죄악으로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는 현실이다.



③ (25절~35절) “네가 이같이 당할 것은 네가 음란히 이방을 좇고 그 우상들로 더럽혔음이라”

▶ 거룩한 예루살렘 성전이 수치와 조롱을 당하게 된 원인을 기록한다. 이방의 우상숭배로 스스로 더럽혔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주님의 몸된 교회는 외부의 박해로 몰락한 적이 없다. 핍박 속에서 도리어 더 강성해졌다. 다만 주님의 교회가 비참하게 몰락하는 까닭은 내부의 부패로 타락했다는 사실이다.

▶ (35절) “네가 나를 잊었고 또 나를 네 등 뒤에 버렸은즉” 남유다가 멸망한 진짜 이유를 분명하게 증거 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려서 자신의 구원자인 하나님을 등 뒤에 던져 버렸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 사랑하는 아내인 이스라엘을 저버린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하나님을 업신여겨 등 뒤로 던져 버렸다. 이스라엘의 멸망은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이 부족한 탓이 아니라 자업자득임을 증거한다.





3. 행음을 심판하시는 목적

① (36절~42절) “내게 낳아준 자식들을 우상을 위하여 화제로 살랐으며...당일에 내 성소를 더럽히며 내 안식일을 범하였도다”

▶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이 저지른 죄악의 실상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된다. 하나는 하나님과의 관계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웃과의 관계다. 자신의 이기심을 채우기 위해 자식마저도 이용하는 모습은 즉 이웃과의 관계가 무너진 것을 예표한다. ‘성소와 안식일’을 더럽힌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기준이다.



② (43절~47절) “그 군대가 그들을 돌로 치며 칼로 죽이고 그 자녀도 죽이며 그 집들을 불사르리라”

▶ 방백과 장로 곧 이스라엘의 종교와 정치지도자들의 죄악으로 인한 심판의 결과가 당대의 자신들에게만 미친 것이 아니라 그 자녀(후손)과 그 집들을 불사르게 되었다. (창3:17~18) 아담이 범죄로 인해 땅이 저주를 받아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며 황무하게 되었다. (민14:33) “너희 자녀들은 너희의 패역한 죄를 지고 너희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 사십년을 광야에서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한국교회 지도자들의 타락은 자신만을 망치는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와 한국교회의 미래를 무너뜨리고 있다.



③ (48절~49절) “이와 같이 내가 이 땅에서 음란을 그치게 한즉 모든 여인이 경성하여 너희 음행을 본받지 아니하리라”

▶ 고난에는 뜻이 있고 심판에는 목적이 있다. 패역한 남유다와 예루살렘을 향한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통해 다른 모든 이들에게 반면교사 즉 패역한 자의 최후를 알게 하시는 본보기를 삼으시기 위함이다. 49절 “너희가 나를 주 여호와인줄 알리라” 고난과 심판을 통해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시려는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가 있음을 증거하고 있다. 고난과 심판을 통해 하나님의 숨겨진 뜻을 깨닫는 지혜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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