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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심령(8.25 주일낮 설교 요약)
오세영
- 1631
- 2019-08-28 07:46:54
산상수훈의 설교는 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셔서 맨 처음 하신 말씀이기에 더욱 의미심장합니다. 그 중에서도 팔복의 말씀을 먼저하셨고 또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는 말씀은 팔복 중에서도 맨 처음 하신 말씀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동산에 모인 그들에게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에서는 가난하자가 복이 있다고만 하셨기에 종종 가난한 자의 의미가 잘못 이해할 수 있는데 주님께 모인 사람들은 가난한자 병든자 죄인이라 생각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을 것이기에 육신적으로 가난한 자들이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육신적으로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해석하게 되면 온전한 해석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육적인 가난이 결국 심령의 가난으로 이어질 수 있음도 알아야 합니다.
신앙생활하면서 심령을 가난하게 하고자 하는 마음과 노력이 끊임없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마치 세탁해서 입은 옷을 또 세탁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종종 심령을 점검하며 가난한 마음으로 만들지 못하면 우리는 강퍅하게 되고 굳은 심령이 됩니다.
가난이란 말이 히브리적 의미로는 “의존”이라는 의미를 갖는데 파산되어 모든 것을 잃고 거리로 나가야 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의 심령이 가난해지면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게 되는 겸손함이 있습니다.
가난한 심령을 가지면 주 예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기에 자신을 내려놓게 되고 욕심을 버리게 됩니다.
돌이켜 어린아이가 되어 주님 말씀을 순수하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가난한 심령은 어린아이가 되어 진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수요기도회 때 우리는 마침 산상수훈의 말씀 중 오른 뺨을 치면 왼뺨을 돌려대고 속옷을 달라 하면 겉옷까지 주고 억지로 오리를 동행하고자 하면 십리를 동행해 주라는 말씀을 나누며 새로운 은혜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여러 가지로 해석하고 있지만 결국 이 말씀은 우리가 얼마나 가난한 심령, 그래서 순수하고 깨끗한 심령이 되어야 지킬 수 있는지를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진실로 주님의 이 말씀에 착념하지 않는 것은 우리의 심령에 그 만큼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가난한 심령이 되면 주님의 어떤 말씀도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용서 할 수 있고 이해하며 긍휼이 여기기도 합니다.
그에게 주님 안에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반면 가난한 심령이 되지 않으면 주님의 말씀이 어려워 지킬 수 없습니다.
주님의 계명이 어렵고 쉬운 것은 심령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심령을 가난하게만 하면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말씀이 생명처럼 여겨지며 그 말씀을 굳건히 잡게 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이 처음에 나왔다하여 팔복 중에서 가장 낮은 단계라는 것이 아닙니다.
심령의 가난은 기초가 되고 시작입니다.
심령이 가난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애통하게 됩니다. 그리고 온유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 이후의 말씀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이처럼 팔복의 말씀이 온전히 내 삶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오직 심령을 가난하게 할 때 입니다.
심령을 가난하게 하면 팔복의 복을 이루는 비밀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심령을 가난하게 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동안 내 생활에 얼마나 많은 문제들이 발생했는지 깨달아야 합니다.
가난한 심령은 밭의 비유에서 마치 옥토 밭과 같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난한 심령이 아니면 길바닥 같고 돌밭 같고 가시밭과 같으니 그 거침과 메마름 그리고 강퍅함이 넘쳐나게 됩니다. 그러한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삶으로 나아가게 되어 그리스도인의 능력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종종 거울을 보며 내 모습을 고치듯 심령을 가난하게 하기 위한 자아의 성찰이 절대적으로 요구되고 있습니다.
어느 목사님은 하루에 꼭 산상수훈의 말씀을 한 번씩 읽는다고 하는 고백을 들어 보았습니다.
저 또한 산상수훈의 말씀을 언제 대하여 봐도 도전이 되고 힘이 되는 것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정신이 번쩍 들기도 합니다.
나 자신을 주님께 바로 세우게 되는 것입니다.
심령을 가난하게 하지 못하는 것이 모든 문제의 근원입니다.
가난한 심령이 되지 못하면 무엇이든지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과 너무도 거리가 먼 생활로 빠지게 됩니다.
심령을 가난하게 하기 위해 언제나 기도와 말씀을 가까이하여 성령의 인도를 받은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