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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회 몽골(蒙古)
함창석
- 1498
- 2019-09-09 22:28:54
산돌 함창석 장로
몽골의 정식 명칭은 몽골 올스(Монгол Улс) 즉 몽골국이다. ‘몽골 올스’에서 ‘몽골’(Монгол)은 ‘용감한’이라는 뜻을 가진 부족 이름에서 유래된 명칭으로 민족 이름을 뜻하고 ‘올스’(Улс)는 몽골어로 ‘나라’ 또는 ‘국가’를 의미한다. 직역하면 ‘몽골 민족의 나라’라는 뜻이 된다. 간혹 몽골을 몽고(蒙古)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몽고라는 표현은 오랫동안 몽골족에게 시달려왔던 중국인들이 우매할 몽(蒙)과 옛 고(古)를 조합하여 몽골족을 비하하기 위해 만든 단어다. 그러나 몽골 제국 원나라의 승상 메르키트 토크토아가 편찬을 주도한 요사에는 1차례, 금사에는 36차례, 송사에는 6차례 몽고(蒙古)의 용례가 확인된다. 몽골로 불리어 지는 것을 좋아한다.
몽골은 동북아시아 내륙에 있는 국가로 수도는 울란바토르다. 러시아,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세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낮은 나라 가운데 하나이다. 몽골은 평균 고도가 해발 1,585m에 이르는 고지대 국가이며, 고지대 초원, 준 사막, 사막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형적인 대륙성 기후를 보인다. 지형은 길쭉한 타원형이다. 몽골에서 가장 높은 산봉우리들이 있는 산맥은 알타이 산맥이다. 서쪽 끝에 위치한 알타이 산맥에 있는 해발 4,374m의 후이텐 봉이 가장 높은 산봉우리이다. 국토의 80%가 목초지로 이루어져 있어 방대한 가축 떼를 방목할 수 있다. 그 나머지 지역은 삼림과 황무지 사막이 반반이다. 아주 일부 지역에서만 농경이 가능하다.
몽골의 조상은 BC 3세기부터 1세기까지 중앙아시아에 살았던 훈족이었다. 단일한 몽골 봉건국가는 13세기 초에 이르러서야 유목 종족들이 모여 형성되었다. 13세기에 국가의 지도자, 칭기즈 칸과 그의 후계자들은 중국 및 러시아, 중앙아시아 대부분을 포함하는 거대 제국을 통치했다. 원나라 이후 중국인들의 지배를 받았다. 현대 몽골의 민족적 영웅인 담디니 쑤흐바타르는 1917년 러시아의 10월 혁명에서 큰 영향을 받았고, 후에 구소련의 지원을 받아 백러시아인과 중국인들을 몰아냈다. 쑤흐바타르의 군대는 1921년 7월에 권력을 획득했다. 몽골의 건국일이다. 1921년에 몽골은 중국으로부터 독립하였다. 현재 친 러시아, 친 미국 정책을 취한다.
그보다 더 북쪽의 한가이 산맥 북부에 있는 호르고 지역은 화산활동으로 생긴 수많은 호수가 있고, 중북부 국경 근처는 거대한 지하동굴들로 유명한 회브스괼 호가 있다. 국토의 약 1/3은 나무가 없는 반건조 지대인 고비 사막으로 덮여 있다. 몽골알타이 산맥의 빙하에서 발원하는 호브드(코브도)강은 북서부 지역을 흐른다. 몽골의 강들은 가끔 홍수의 위험이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상당한 수력발전의 가능성을 갖고 있다. 우브스 호는 면적이 거의 3,370㎢에 이르는 함수호이다. 회브스괼 호는 주요한 담수호(2,620㎢)이며, 수심이 240m가 넘는 가장 깊은 호수이다. 몽골은 지질활동이 활발해 때로는 엄청난 위력을 지닌 지진이 일어나기도 한다.
광활한 면적을 갖고 있는 몽골의 뚜렷한 대륙성기후는 강수량이 매우 적고 기온변화가 잦으며 기온차가 큰 것이 특징이다. 북부지역에 자라는 식물로는 시베리아낙엽송·시더·소나무류·자작나무류·가문비나무류 등이 있다. 북부 삼림에는 스라소니·큰뿔사슴·말코손바닥사슴·흰표범·멧돼지·담비와 아시아산 붉은사슴 등이 서식한다. 산간 분지의 초원과 강유역에는 마못과 몽골가젤영양이, 반사막지역에는 낙타·야생양·야생말·곰 등이 산다. 또한 광물 자원도 풍부하여 석탄·철광석·주석·구리·아연·몰리브덴·인회암·텅스텐·금·형석·준보석이 많이 매장되어 있으나 몽골에서 가장 중요한 천연자원은 목초지이다. 석탄·철광석·주석·형석·준보석이 많이 매장되어 있다.
2016년말 기준 국내총생산(GDP)은 약 110억 3천만 달러이며 1인당 GDP는 약 3,660 달러이다. 주요 지하자원은 석탄, 동, 몰리브덴, 텅스텐, 형석, 아연, 금, 석유 등이며, 세계 10대 자원부국에 속한다. 석탄은 몽골 전역서 채굴된다. 주요 탄광지역은 울란바토르 남동쪽에 있는 날라이와 다르한 남동쪽에 있는 샤린골이다. 다르한 남서쪽에 있는 거대한 에르데네트 광산 단지에서는 구리와 몰리브덴이 채굴된다. 주요 교역 상대국은 러시아이다. 울란바토르와 다르한을 잇는 도로와 북쪽 국경 근처의 일부 도로는 포장되어 있지만 지방도로는 대부분 비포장 흙길이다. 울란바토르는 모스크바 및 베이징과 철도로 이어져 있고 신 국제공항을 만들었다.
1940년대에 전통 몽골 문자를 러시아 알파벳의 키릴 문자에 기반한 새로운 문자로 교체한 것은 문화 및 사회 변화에 있어서 대단히 상징적인 것이었지만 1992년 사회주의 노선을 포기하고 이원집정부제 헌법을 채택한 이후 정치, 경제적 개혁을 단행했다. 1990~92년에 몽골은 공산당에 의한 정치적 권력의 독점을 완화한다. 자유로운 복수정당 선거, 연합정부, 새로운 헌법, 문화·종교적 자유로 옮겨갔다. 이러한 방향은 시장경제의 일부 요소들을 추구하는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몽골의 민족성을 강조하고 국제 관계에서 중립적 입장을 취하려는 의도였다. 학교에서는 전통 문자를 교육하였고, 상점 간판들에서는 키릴 문자와 전통 문자가 나타났다.
몽골의 인구는 자연증가율로 1970~2000년 사이 전체 인구가 2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인구증가율이 세계 평균증가율에 비해 높은 편이었지만, 1978년에 시작된 몽골 정부의 인구정책은 기존의 높은 출생률을 더 높이고 사망률을 낮추는 데 중점을 두었다. 2018년 기준 인구수는 312만 1,772명이고, 인구밀도는 2명/㎢이다. 15세 이하가 전체인구의 약 30%를 차지하고 있다. 몽골 정부는 시골에서 도시로 이주하는 것을 권장하고 있기에 오늘날에는 전체 인구의 약 3/4이 도시에 거주하고 있다. 울란바토르와 그 북서쪽에 있는 다르한이 가장 큰 도시이다. 공용어는 할하몽골어로 국민의 약 80%가 사용한다. 또 튀르크어·러시아어·중국어도 쓴다.
중앙아시아와 중국대륙을 지배하였던 후예 유목민으로 몽골의 문화생활은 수백 년 동안 내려온 전통과 새로 나타나고 있는 근대적 요소가 섞여 있다. 몽골의 전통축제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해마다 건국기념일인 7월 11일에 시작되는 나담 축제이다. 이 축제에서는 남자들을 위한 씨름·활쏘기·경마 등 3가지 경기를 벌인다. 몽골의 전통 문학에는 영웅서사시·전설·옛날이야기·유롤(행운을 비는 시)·마그탈(찬미하는 시) 등이 있다. 공연예술 분야에서는 국립극단·오페라단·발레단이 전통 및 고전 연극과 오페라·발레를 공연한다. 한국과 수교 이전에도 교류가 있었으며 수교 이후 인력 교류, 예술단 상호 교류 등 각종 분야에서 교류가 활발해지고 있다.
인도에서 티벳으로 불교가 공식적으로 전래된 것은 7세기 송첸 캄포 왕(617∼698) 때이다. 이미 433년에 일련의 불경과 종교의식, 용구들이 전래되었으나 송첸 캄포 왕 때에 와서야 비로소 불교를 국교로 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티벳 불교의 시작은 송첸감포가 티벳을 통일하고 정신적 통일을 위해 불교를 수용하며 확장하였다. 몽골인의 주된 종교는 티베트 불교로 역사적으로는 티베트와의 관계가 아주 깊다. 하지만 1992년 선거로 민주화된 이후 개신교가 선교사들에 의해 유입되고 있으며, 그 이전부터 러시아의 영향으로 러시아 정교회 신자들이 소수 있다. 종교인의 분포는 티벳불교 53%, 이슬람교 3%, 토속종교 3%, 기독교 2%, 무종교 39%이다.
연경남 선교사의 2015년 몽골 선교의 현황과 평가에 의하면 몽골 전체 교회 수는 525개, 교인 수는 30,199명으로서 기존의 과거 나왔던 일부 통계와 정보는 오류가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조사 결과로 보아 그동안 발표되었던 몽골의 약600여개의 교회수는 비교적 큰 오차가 없지만 교인수가 몽골전체인구대비 1%, 30,199명으로 조사된 것은 큰 충격이다. 최근 2011년 몽골선교 20주년에 나온 통계는 몽골 교인이 인구의 약2.1%인 41,117명으로 보도 되었고 그때까지만 해도 2020년까지 계속 상승세를 보일 것 같이 대외적인 홍보를 하고 있지만 이번에 나온 자료가운데 2013년 통계를 보면, 이미 당시 교인이 31,762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몽골 교회 지도자의 43%가 여성이라는 것은 전체 성도의 다수가 여성이라는 것을 반영하고 그들의 참여가 교회의 많은 비중을 차지함을 보여준다. 지도자들의 교육정도는 전체 지도자의 35%가 학사 혹은 그 이상이고 나머지 65%는 단기 성경 코스를 수료한 것이기에 이는 지도자들이 교육을 더 많이 받아야 한다. 몽골 교회는 현재 여성 리더십이 매우 강세를 보이고 있다. 교회에 여성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몽골 여성의 적극적인 성격에 기인한 면이 많다. 지금도 몽골 여성 목회자들이 많이 배출되는 추이를 보건대 미래 몽골 교회에는 여성 목회자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큰 역할을 하리라 본다. 달리 말하면 남성 지도자들의 분발이 요구되고 있다.
몽골에 세워진 교회들 중 국가에 등록한 교회가 36%라는 것은 몽골에 있는 교회들이 대부분 국가 등록을 받을 수 없었음을 보여준다. 몽골복음주의연맹의 회원교회는 316개이다. 이번 조사로 볼 때, 몽골의 교회 64%는 국가에 등록하지 못하고 있다. 국가가 요구하는 기준을 구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가는 등록 기준을 설정해서 교회들을 통제하고 있고 그 기준을 수시로 달리하거나 임의로 조율해서 교회등록을 어렵게 하고 있다. 국가에서 인정한 교회 협의체인 몽골 복음주의 연맹은 국가 등록과 관계없이 원하는 교회들은 가입하여 회원이 될 수 있고 현재 316개로 밝혀져 있다. 따라서 몽골의 유일한 대표적 교회 기관은 몽골 복음주의 연맹이다.
2014년 8월 몽골 울란바토르와 아르바이르헤르지역을 선교 여행하던 중 몽골감리교신학교 장학회(성일장학회)를 조직하며 장학기금을 헌금하였고 교회 개척을 위한 헌금도 적립하게 되었다. 순교자 김성호와 우리 아들 함영일 이름 첫 글자를 차용하여 ‘성일’이라는 이름으로 장학회를 만들게 되었다. 2015년 10월 국립공원(테레지)입구 신도시인 날래흐구에 헌금하였던 기금으로 교회부지(160평)를 구입하고 2016년 5월 건축(40평)을 시작해 2016년 8월 봉헌하였다. 김동수 집사내외가 5,000여만 원을 헌금하였고 2018년 10월에도 3,000여만 원으로 선교센타(250평)를 위한 건물과 부지도 마련을 하였다. 사례비, 시탄, 교회행사를 지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