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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을 얻는 믿음(요 6:41-51) 인간 예수? 영생의 주 예수?
최세창
- 1535
- 2019-09-24 02:35:58
안타깝게도 유대인들은 예수님이나 예수님의 말씀을 이성적인 차원에서만 이해하여, 【41】“자기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라 하시므로 유대인들이 예수께 대하여 수군거려 【42】가로되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제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로서 내려왔다 하느냐”라고 하였다.
“자기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라 하시므로”는 6:32-35의 주석을 보라.
“예수께 대하여 수군거려”의 동사는 에공귀존(ἐγόγγυζον: 과거 진행형)으로서 ‘불평하다’, ‘투덜대다’, ‘비평하다’, ‘혹평하다’, ‘비난하다’, ‘변론하다’를 의미한다.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제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로서 내려왔다 하느냐”가, 마가복음 6:3에는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로 기록되어 있다(참조: 눅 4:22).
이상근 님은 “저들은 예수의 고향 지방의 유대인으로 육적인 예수의 가문을 잘 아는 것이 탈이었다(마 13:55-57, 눅 4:22 참조).”라고 하였다. 바레트(C. K. Barrett)는 “이 주장은 출신지와 혈통이 알려져 있는 사람은 하늘에서 내려왔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만일 반대자들이 예수의 출생에 관한 진리를 알고 있었더라면, 그들은 그것이 그가 하늘로부터 왔다는 것과 양립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했을 것이다.…아무리 많은 정보일지라도-비록 정확한 정보라 해도-유다인들로 하여금 예수를 평가하고 또 그를 판단할 수 있게 해 주지는 못할 것이다(44절 참조).”라고 하였다. {黑崎幸吉은 “어떤 의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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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육으로서의 예수(고후 5:16)를 알고 있는 것은, 도리어 영적으로 예수의 진상을 파악하는 데 방해가 된다.”라고 하였다.}(막 6:3의 주석).
예수님의 주 되심은 성령을 통해서만 알고 믿을 수 있는 것이다( 고전 12:3 후반. 참조: 마 16:17, 고전 12:9). 어떤 눈으로 예수님을 보느냐 함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마 11:6)라고 하셨다.
예수님에 관한 것을 누구보다도 많이, 그리고 자세히 알았던 고향 사람들이 꼭 알아야 할 영적 사실, 즉 예수님이 메시아이시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여 배척했다는 것은, 예수님에 관해서 누구보다도 많이, 그리고 자세히 알고, 또 그분을 가르치는 신학자들이나 목사나, 그분을 배우며 찬미하는 교인들도 얼마든지 예수님을 배척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실제로 예수님은 현대 교회에 의해, 그리고 교인들의 생활 속에서 수없이 배척을 당하신다. 정말 예수님을 깊이 알고 구주로 믿는다면, 어떻게 저런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질 때가 많다.
그들이 수군거리는 것을 아신 예수님에 대해, 사도 요한은 【43】“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서로 수군거리지 말라”라고 경계하셨다.
당사자에게는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고, 서로 수군거리는 것은 비열한 사람들의 특징이다.
수군거리지 말라고 경계하신 예수님은, 【44】“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라고 말씀하셨다.
이 구절의 전반은 6:37의 주석을 보고, 후반은 6:39의 주석을 보라.
어거스틴(Augustine)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고 이끄시는 자는 어떤 악인이라 해도 믿지 않을 수 없다.”(in 이상근)라고 하였고, 칼빈(J. Calvin)은 “하나님께 복종하려는 의지까지라도 하나님이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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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야 한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말들의 문제는 믿지 않는 자들은 다 하나님께서 은혜도 주시지 않았고, 또 이끌어 주시지도 않았다는 뜻이 될 수도 있고, 또 하나님께 복종하지 않는 자들은 다 하나님께서 복종할 의지를 주시지 않았다는 뜻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그들의 불신앙과 불순종에 대해 그들에게 책임을 지울 수 없다는 문제가 생기게 된다. 실상,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의 불신앙과 불순종에 대해 문책하셨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결정적인 대답이 되는 몇 군데의 성경 구절을 들 수 있다. 본서 3:16-17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해당 주석을 보라.)라고 하였고; 마태복음 5:45에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심이니라”라고 하였고; 베드로후서 3:9에는,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①라고 하였고; 디모데전서 2:4에는,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②라고 하였다. 특히,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주신 의지를 악용한 가룟 유다에 대해,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마 26:24)라고 말씀하셨다.
바클레이(W. Barclay)는 “그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끄심을 거절하였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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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예수님은 【45】“선지자의 글에 저희가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선지자들(프로페타이스, προφήταις)의 글에”는 이사야 54:12-13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와 같은 사상이 선지자들에게 공통적인 것이므로(렘 31:33-34, 욜 3:16, 17, 미 4:1-4) 복수형을 사용한 것이다.
“저희가 다”는 “이사야서에서는 이스라엘 전체를 뜻하고, 여기서는 하나님께 택함 받은 전체를 뜻한다.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는, 앞 구절에 언급된바 이끄시는 하나님을 따른 자들을 설명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이나 제사장들이나 선지자들이나 현자들을 통해서, 혹은 자연과 사건과 역사 등을 통해서 인간을 가르치신다. 그리고 영이신 하나님의 가르치심과 인간의 배움은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만 제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이성이나 의지나 감정 등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모든 것이 성령을 따를 때에 예수님을 믿고 추종하게 되는 것이다. 즉, 예수님을 믿고 추종하는 것은 성령을 통한 전인적 응답인 것이다.
예수님은 그들의 오해를 막기 위해, 【46】“이는 아버지를 본 자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았느니라”라고 설명하셨다.
“아버지를 본 자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는,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라고 한 것을 오해하지 않도록 덧붙여 말씀하신 것이다. 즉, 그 누구도 육안으로 하나님을 보면서 직접 배운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았느니라”는, 오직 하나님의 현존으로부터 오신 예수님 자신만이 성부 하나님을 보셨다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만이 성부 하나님을 나타내실 수 있다(1:18의 주석을 보라).
여기서 예수님은 자신이 신성을 지니셨기 때문에(골 2:9)③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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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들과 똑같은 존재가 아니라는 점(빌 2:7)④과 성자 하나님으로서의 선재(빌 2:6)⑤를 암시하시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47】“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라고 하셨다.
“진실로 진실로”는 1:51의 주석을 보라.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는 3:15의 주석을 보라.
이어서 예수님은 【48】“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는 6:35의 주석을 보라.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고 하신 예수님은 그들 유대인들이 놀라운 표적으로 내세우는 만나와 비교하여 설명하신다. 【49】“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50】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는 6:31의 주석을 보라.
반즈(A. Barnes)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첫째, 단순히 일시적인 필요를 채워 주는 하나님의 선물이 가장 값진 것은 아니다. 둘째, 가장 귀한 현세적인 축복들도 우리를 죽음으로부터 구원하지는 못할 것이다. 셋째, 단순히 현세적인 축복들보다 더 나은 무엇이 필요한 것이다.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는 6:32, 33, 35의 주석을 보라.
예수님은 계속해서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자 영생의 양식인 자신에 대해 말씀하신다. 이 점에 대해, 사도 요한은 【51】“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라고 하였다.
“산 떡”(ὁ ἄρτος ὁ ζών)은 ‘살아 있는 양식’, ‘산 빵’, ‘생명이 있는 양식’, ‘생명의 떡’ 등을 의미한다(6:35의 “생명의 떡”의 주석을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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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앞에 관사가 있어서 강조하는 성격을 띠고 있다.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는 6:32, 33, 35의 주석을 보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는, 예수님이 주실 생명의 양식이란 죽을 운명이며 멸망할 운명인 세상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한 예수님의 ‘육체’(사룩스, σάρξ)라는 뜻이다(마 26:26, 막 14:22, 눅 22:19, 고전 11:24). 이 말씀은 예수님 자신의 대속 죽음과 부활을 염두에 두신 것이다. 바로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분과 영적으로 연합하는 자는 영생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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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자의 베드로후서 3:9의 주석을 보라.
2) 저자의 디모데전서 2:4의 주석을 보라.
3) 저자의 골로새서 2:9의 주석을 보라.
4) 저자의 빌립보서 2:7의 주석을 보라.
5) 저자의 빌립보서 2:6의 주석을 보라.
출처: 최세창, 요한복음(서울: 글벗사, 2006, 1판 2쇄), pp. 257-262.
필자의 사이트 : newrema.com(T. 426-3051) 저서: 신약 전체 주석/ 설교집 27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다수의 논문들/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